입력 : 2017.01.26 04:00
[노은주·임형남의 골목 발견] 일본 '교토 철학의 길'
'철학의 길'은 일본 교토 동쪽에 있는 작은 오솔길이다. 불교 사찰인 은각사(銀閣寺) 옆구리에서 시작해 남선사(南禪寺)까지 이어진, 2㎞ 정도 되는 길이다. 이름이 '철학의 길'이 된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일본의 대표적인 근대 철학자이며 교토대 철학과 교수였던 니시다 기타로(西田幾多郞·1870~1945)가 학교로 출퇴근할 때 다니던 길이었기 때문이란다. 헤겔과 하이데거 등이 거닐었다는 독일 하이델베르크 '철학자의 길'이 자연스레 떠오른다. 그 지역에 연고가 있는 유명인의 이름을 한사코 집어넣는 우리 지자체의 명소화 전략도 생각난다. 물론 평생을 1분도 어기지 않고 시계보다 더욱 정확한 시간에 거닐었다는 이마누엘 칸트의 고향 쾨니히스베르크 산책길도 생각난다.
이름에 대한 이런저런 허튼 생각들을 걷어내면 이곳은 정말 아름답고 편안하며 떨칠 수 없는 매력을 지닌 곳이다. 1968년 조성해 1972년부터 '철학의 길'이라는 이름으로 부르기 시작했다는데, 봄철에는 벚꽃이 장관이고 가을에는 그윽하게 단풍으로 물들어 사시장철 사람들이 몰린다. 물론 관광객의 입장에서 때맞춰 사진에 나오는 환상적인 풍경을 만나는 일은 그리 쉽지 않지만 말이다.
산책과 철학이라는 단어의 쌍은 아주 잘 어울리며 단어 간의 순응이 부드럽게 잘된다. 철학의 길뿐 아니라 교토라는 도시 자체가 산책하기 좋은 도시다. 그 도시는 걷는 속도로 보아야 제대로 보인다. 몇 집 걸러 사찰이 나오고 모퉁이를 돌면 정원이 나오는 역사 도시라는 의미도 있지만, 몇백 년 쉼 없이 이어진 교토 사람들의 생활과 자부심이 동네를 가로지르며 늠실거리는 실개천과 같은 속도로 흘러다닌다.
"그런 건 예전에 우리가 사는 서울에도 지천에 깔렸었지"라는 생각에 아쉬운 건 어쩔 수 없다. 우리는 실개천들을 오염시켰고, 냄새 난다고 피했으며, 길을 넓힌다고 아예 시멘트로 덮어버렸다. 우리의 정체성과 자존심도 그때 같이 묻혀버렸다.
교토에는 여기저기 오래전에 우리가 잊고 있었던 실개천이 흐른다. 철학의 길에도 걷는 내내 그 개천이 우리를 따라다니며 말을 건다. 그게 참 좋다. 졸졸졸 시냇물 소리가 들리는 정도로 고적하지는 않지만, 그렇게 많은 사람이 있으면서도, 전 세계에서 찾아오는 관광객을 겨냥한 많은 기념품 가게와 찻집들이 들어서 있으면서도 아주 조용하고 쾌적한 온도와 습도를 유지하고 있다.
나의 산책은 동네 작은 책방이지만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게이분샤(惠文社)가 있는 이치조지(一乘寺) 부근 한적한 주택가에서 시작된다. 전통 양식의 오래된 집들과 근대의 서양식 건물, 현대식 번쩍거리는 건물들이 마치 의좋은 형제들처럼 아무런 파열음을 내지 않고 만들어내는 풍경을 보는 것이 즐겁다. 은각사 입구에 다다라 고개를 왼쪽으로 돌리면 검은 돌에 '철학의 길'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고, 벚나무가 도열한 호젓한 길이 찻길과 평행하게 달린다. 철학의 길의 서곡이 그곳에서 시작된다. 나는 어쩌다 보니 그곳의 봄·여름·가을·겨울을 모두 보았다.
이름만 들어봤던 일본의 고도(古都) 교토에 처음 가게 된 때가 2014년이니 3년이 채 안 되는데, 일이 계속 생겨서 옆집 드나들 듯 자주 가게 되었다. 교토에는 갈 곳도 많고 볼 것도 많지만 나는 여러 번 가면서도 늘 가는 절만 가고 가는 정원에만 가는 아주 소극적이고 옹색한 방문객에 머물고 있다. 처음에는 버스를 타고 갔던 '명소'들이 걸어서도 그리 멀지 않은 거리에 있다는 걸 알게 되면서 그 지점을 연결하는 길들을 찾아내고 거니는 게 더 흥미로워졌다.
철학의 길 중간에는 차를 마실 수 있는 '요지야 카페'라는 곳이 있다. 중간에 한 번 쉴 겸 그 안에 들어가면 전통적인 일본 2층 가옥에 정원이 가지런히 가꾸어져 있다. 처음에 안으로 들어가니 사람들이 마치 어떤 안내선이라도 있는 것처럼 넓은 방에 줄지어 나란히 앉아 정원을 감상하고 있었다. 무릎을 꿇고 앉아서 풍경을 감상하고 차를 마시고 조용조용 이야기하는 사람들 사이에 엉거주춤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 있자니, 마치 물에 섞인 기름 덩어리처럼 생뚱맞게 둥둥 떠다니는 듯했다. 혹은 조용한 선정에 빠진 것 같기도 하고 깊은 물 속에 가라앉는 것 같은 묘한 느낌을 안고 걸쭉한 말차를 마셨다. 바깥에는 마치 그 말차를 바닥에 뿌려놓은 듯 이끼가 잔뜩 낀 정원의 녹색 바닥이 보였다.
길이 거의 끝나갈 무렵 어린아이들이나 젊은 여성들이 관심을 보이며 멈춰 서는 곳은 길고양이들이 모여 있는 장소다. 고양이들은 관심을 끌기 위해 아양을 떠는 사람들을 노련하고 여유 있는 몸짓으로 끌고 다닌다.
내리막이긴 해도 거의 평지로 구성된 철학의 길은 갑자기 오른쪽이 열리며 교토 시내가 내려다보이는 지점에서 끝난다. 특히 해 질 녘 붉은 황혼과 낮은 산의 흐름 안에 포근히 안겨서 깜빡거리는 오래된 도시의 저녁 풍경이 무척 푸근하다. 거기서부터 가파른 경사를 내려가 왼쪽으로 꺾어지면 아주 큰 절의 경내로 들어갈 수 있게 되는데, 바로 남선사다.
매번 나의 교토 산책길은 그렇게 이치조지 근처 숙소에서 철학의 길을 따라 내려가 남선사 주변, 특히 정원이 아주 좋은 무린안(無隣庵)에 가거나 거기서 조금 더 걸어서 기온(祇園) 쪽으로 가는 걸로 반복된다. 꽃이 피고 잎이 무성해졌다가 떨어지고 간혹 눈이 덮이는 계절의 변화와 상관없이 그 사이사이 피어난 작은 골목들과 언제나 단정하고 조용한 집들이, 늘 사분사분 이야기를 하고 겸손한 표정을 짓는 교토 사람들이 그곳의 전부라고 생각한다.
산책과 철학이라는 단어의 쌍은 아주 잘 어울리며 단어 간의 순응이 부드럽게 잘된다. 철학의 길뿐 아니라 교토라는 도시 자체가 산책하기 좋은 도시다. 그 도시는 걷는 속도로 보아야 제대로 보인다. 몇 집 걸러 사찰이 나오고 모퉁이를 돌면 정원이 나오는 역사 도시라는 의미도 있지만, 몇백 년 쉼 없이 이어진 교토 사람들의 생활과 자부심이 동네를 가로지르며 늠실거리는 실개천과 같은 속도로 흘러다닌다.
"그런 건 예전에 우리가 사는 서울에도 지천에 깔렸었지"라는 생각에 아쉬운 건 어쩔 수 없다. 우리는 실개천들을 오염시켰고, 냄새 난다고 피했으며, 길을 넓힌다고 아예 시멘트로 덮어버렸다. 우리의 정체성과 자존심도 그때 같이 묻혀버렸다.
교토에는 여기저기 오래전에 우리가 잊고 있었던 실개천이 흐른다. 철학의 길에도 걷는 내내 그 개천이 우리를 따라다니며 말을 건다. 그게 참 좋다. 졸졸졸 시냇물 소리가 들리는 정도로 고적하지는 않지만, 그렇게 많은 사람이 있으면서도, 전 세계에서 찾아오는 관광객을 겨냥한 많은 기념품 가게와 찻집들이 들어서 있으면서도 아주 조용하고 쾌적한 온도와 습도를 유지하고 있다.
나의 산책은 동네 작은 책방이지만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게이분샤(惠文社)가 있는 이치조지(一乘寺) 부근 한적한 주택가에서 시작된다. 전통 양식의 오래된 집들과 근대의 서양식 건물, 현대식 번쩍거리는 건물들이 마치 의좋은 형제들처럼 아무런 파열음을 내지 않고 만들어내는 풍경을 보는 것이 즐겁다. 은각사 입구에 다다라 고개를 왼쪽으로 돌리면 검은 돌에 '철학의 길'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고, 벚나무가 도열한 호젓한 길이 찻길과 평행하게 달린다. 철학의 길의 서곡이 그곳에서 시작된다. 나는 어쩌다 보니 그곳의 봄·여름·가을·겨울을 모두 보았다.
이름만 들어봤던 일본의 고도(古都) 교토에 처음 가게 된 때가 2014년이니 3년이 채 안 되는데, 일이 계속 생겨서 옆집 드나들 듯 자주 가게 되었다. 교토에는 갈 곳도 많고 볼 것도 많지만 나는 여러 번 가면서도 늘 가는 절만 가고 가는 정원에만 가는 아주 소극적이고 옹색한 방문객에 머물고 있다. 처음에는 버스를 타고 갔던 '명소'들이 걸어서도 그리 멀지 않은 거리에 있다는 걸 알게 되면서 그 지점을 연결하는 길들을 찾아내고 거니는 게 더 흥미로워졌다.
철학의 길 중간에는 차를 마실 수 있는 '요지야 카페'라는 곳이 있다. 중간에 한 번 쉴 겸 그 안에 들어가면 전통적인 일본 2층 가옥에 정원이 가지런히 가꾸어져 있다. 처음에 안으로 들어가니 사람들이 마치 어떤 안내선이라도 있는 것처럼 넓은 방에 줄지어 나란히 앉아 정원을 감상하고 있었다. 무릎을 꿇고 앉아서 풍경을 감상하고 차를 마시고 조용조용 이야기하는 사람들 사이에 엉거주춤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 있자니, 마치 물에 섞인 기름 덩어리처럼 생뚱맞게 둥둥 떠다니는 듯했다. 혹은 조용한 선정에 빠진 것 같기도 하고 깊은 물 속에 가라앉는 것 같은 묘한 느낌을 안고 걸쭉한 말차를 마셨다. 바깥에는 마치 그 말차를 바닥에 뿌려놓은 듯 이끼가 잔뜩 낀 정원의 녹색 바닥이 보였다.
길이 거의 끝나갈 무렵 어린아이들이나 젊은 여성들이 관심을 보이며 멈춰 서는 곳은 길고양이들이 모여 있는 장소다. 고양이들은 관심을 끌기 위해 아양을 떠는 사람들을 노련하고 여유 있는 몸짓으로 끌고 다닌다.
내리막이긴 해도 거의 평지로 구성된 철학의 길은 갑자기 오른쪽이 열리며 교토 시내가 내려다보이는 지점에서 끝난다. 특히 해 질 녘 붉은 황혼과 낮은 산의 흐름 안에 포근히 안겨서 깜빡거리는 오래된 도시의 저녁 풍경이 무척 푸근하다. 거기서부터 가파른 경사를 내려가 왼쪽으로 꺾어지면 아주 큰 절의 경내로 들어갈 수 있게 되는데, 바로 남선사다.
매번 나의 교토 산책길은 그렇게 이치조지 근처 숙소에서 철학의 길을 따라 내려가 남선사 주변, 특히 정원이 아주 좋은 무린안(無隣庵)에 가거나 거기서 조금 더 걸어서 기온(祇園) 쪽으로 가는 걸로 반복된다. 꽃이 피고 잎이 무성해졌다가 떨어지고 간혹 눈이 덮이는 계절의 변화와 상관없이 그 사이사이 피어난 작은 골목들과 언제나 단정하고 조용한 집들이, 늘 사분사분 이야기를 하고 겸손한 표정을 짓는 교토 사람들이 그곳의 전부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