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7.01.27 03:11
역사소설과 역사드라마의 역사 왜곡 문제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사극이 방영되면 드라마 주인공을 다룬 역사소설도 다투어 나온다. 극본의 원작 소설이 재출간되고, 방영에 맞춰 급히 쓴 책이 나오기도 한다. 최근에는 '화랑'이 그렇다. 과거 연개소문(淵蓋蘇文)과 선덕여왕(善德女王)과 대조영(大祚榮)도 그랬다.
역사소설이든 사극이든 역사 대중화에 기여한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우리 역사를 널리 알리고 자부심을 고취하는 면에서 긍정적 현상이기도 하다. 그러나 역사적 실체를 작가가 자의적으로 해석해 왜곡해서는 안 된다. 역사소설은 역사책이 아니므로 상상력이 끼어들 여지가 있지만, 상상력이 지나쳐서 있었던 사실은 없었던 듯, 없었던 사실도 있었던 듯 실체를 비틀어서야 될 일인가.
고구려 대무신왕(大武神王)을 주인공으로 한 역사소설을 읽다가 어처구니가 없었다. 부여 장수가 신분을 밝히라고 하자, "나, 대무신왕!"이라고 대꾸하는 장면이다. 대무신왕이란 사후에 바쳐진 존호이지, 생전에 짓고 부른 칭호가 아니다. 또 어떤 역사소설에서는 '다음 주에 보자'는 말이 나온다. 일주일이란 단위는 기독교가 들어온 뒤의 이야기이다. 이순신(李舜臣) 장군을 주인공으로 한 어떤 소설에서는 이순신이 삼도수군통제사에서 파면당해 서울로 잡혀갈 때 체포해간 사람을 금부도사라고 한 대목을 보았다. 금부도사가 아니라 선전관이었다. 이런 정도는 지엽적 실수랄 수도 있겠지만 기본 사료인 '선조실록'을 보았다면 범하지 않았을 잘못이다.
이처럼 소설이 고증을 하지 않으니 사극의 역사 왜곡은 말할 나위도 없다. '불멸의 이순신'에서는 거북선이 진수식 당일 스스로 침몰한 것으로 그려져 기가 막혔다. 몇 해 전 방영된 '여인천하'에서는 문정왕후(文定王后)의 동생 윤원형(尹元衡)을 오라비로 둔갑시킨 적도 있다. 남의 족보까지 뜯어고치고는 제작 책임자가 '드라마를 재미있게 만들기 위해서'라고 말하는 것을 보고 어이가 없었다.
예를 들자면 많다. 연개소문이 김유신(金庾信) 집 종살이를 했다거나, 이미 늙어 죽은 미실궁주(美室宮主)가 여전한 미모를 과시하며 나온다거나, 태어나기도 전인 대조영이 연개소문 집에서 종노릇을 했다는 설정은 날조에 불과하다.
이런 날조의 극치는 '바람의 화원'이다. 어엿한 남성 신윤복(申潤福)을 남장 여자로 둔갑시킨 것이다. '화랑'에서도 젊은 시절의 진흥왕(眞興王) 삼맥종(�麥宗)이 또래들과 어울리며 서라벌 안팎을 돌아다니는데, 진흥왕은 7세에 즉위했고 18세가 될 때까지 어머니 지소태후(只召太后)가 섭정했다. 또 가야사를 다룬 역사소설 가운데 '우리나라에서는 18세기까지 그 어떤 수레도 사용한 적이 없다'는 대목이 나오는데 참으로 황당무계하다. 수많은 고구려 고분 벽화에 그려진 그 많은 수레를 작가는 정말 한 번도 보지 못한 것일까.
이렇게 기본 상식에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