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

'삼식이'가 아니라 '삼시 세끼 요리사'로…

최만섭 2016. 12. 3. 07:00

'삼식이'가 아니라 '삼시 세끼 요리사'로…

입력 : 2016.12.03 03:00

치매 걸린 90대 老母 9년째 모신 60대 늙은 아들 '애증의 비망록'
500여 요리 만들며 레시피 기록 "가고, 보내는 모습 담담히 담아"

'나는 매일 엄마와 밥을 먹는다'
나는 매일 엄마와 밥을 먹는다 | 정성기 지음 | 헤이북스 | 336쪽 | 1만3800원

이런 상황이라면 기자들은 일반적으로 인터뷰를 먼저 떠올린다. 60대 늙은 아들이 90대 치매 걸린 어머니를 돌본다, 그것도 별도의 작은 집을 구해 9년째 삼시 세 끼를 지어 먹이면서. 차마 아내에게 이 일을 맡길 수 없어, 스스로 앞치마를 두르고 '엄마를 위한 밥상'을 차리는 전직 광고기획사 임원 정성기(65)씨다.

'나는 매일 엄마와 밥을 먹는다'는 고개만 돌리면 밥 달라고 조르는 치매 노모를 '징글맘'으로 부르는 아들의 고백록이다. 그러니 오해하지 말 것. '효녀 심청'처럼 눈물 없이는 읽을 수 없는 감동의 문학이 아니라 고통과 소진(消盡)의 절규다. 혹은 그 소모적 일상 가운데서도 조각이나마 유머와 성취감을 찾으려는 '요리사 아들'의 밥상 일기다. 그러니 한번 더 오해하지 말 것. '징글맘'은 우리말 부사 '징글징글'에서만 온 것이 아니라, 딸랑대는 작은 방울 '징글벨'에서도 따온 애칭이다. "어느 년들도 내게 이런 거 만들어주지 않았어. 정말 니가 최고야"라고 셰프 아들을 칭찬하는 귀여운 '욕쟁이 엄마'. 엄살이나 허세 없이 진솔과 위트로 쓴 비망록을 보는 기분이랄까. 인터뷰가 아니라, Books의 서평으로 이 에세이를 소개하는 이유다.

시작은 소박했다. 부친의 임종을 지키지 못해 응어리진 마음이 채 가시기도 전에 모친이 받은 치매 진단. 의사는 '길어야 1년'이라 했고, 50대 중반의 아들은 '1년쯤이면'이라며 각오를 다졌다. 요양원에 모시지 않고 직접 간병을 결심한 것. 그렇게 휴직계를 내고 시작한 간병이 올해로 9년째다.

치매 노인의 간병이 어떤 경험과 풍경일지 우리는 이미 대략 알고 있다. "배고프다, 배고파! 밥 주라, 밥!' 숟가락을 내려놓은 지 한 시간도 채 안 되었는데, '징글맘'은 또 밥 타령을 열창한다." "옷 입은 채 배변을 하고는 하의도 거리낌 없이 벗어젖히니 아무리 아들이라도…." "새벽 4시. 한 시간 간격으로 자다 깨다 하니 머리는 깨질 것 같고 날카로운 바늘 100개가 박혀 있는 양 신경이 뾰족."

'삼식이'가 아니라 '삼시 세끼 요리사'로…
/김성규 기자
잘 드시던 연어 회와 값비싼 간장게장도 비린내 난다고 물리고, 조금만 짜거나 싱거우면 거부하니, '취사병 아들'에게는 매일매일이 고난의 행군. 인내가 한계에 도달하면 "어여 그 강을 건너가세요. 아버지께 가세요"라고 폭발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하지만 어느 밤 잠깐 정신이 돌아온 엄마가 늙은 아들 춥지 말라고 이불을 덮어주고 토닥거릴 때, 너무 오래 살아 죄스러우니 하루빨리 데려가라며 기도할 때, 아들은 다시 마음을 붙잡는다.

2014년 2월 노인장기요양인정서를 받은 뒤에는 그나마 숨통이 트였다고 했다. 평일에는 서너 시간씩 요양보호사가 집으로 찾아와 노모를 맡아준다는 것. 아들은 그 시간 동안 자전거 도로를 '질주'하며 스트레스를 날려 보내고, '징글맘'에게 해 드린 요리 레시피도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다. '할배'의 요리라고 무시하지 말 것. 그동안 칼에 베이고 끓는 물에 데면서 직접 요리하고 기록으로 남긴 레시피만 500여 종이고, 네티즌의 주목을 받아 특별 코너에 선정된 것도 40종에 이른다고 했다. 타락죽, 도토리묵밥, 고등어스테이크 등 특별히 노모를 위해 만들었던 46종의 레시피는 이 책 안에 녹여 넣기도 했다.

어쩌면 바로 그 대목일 것이다. 어렸을 때 엄마가 나를 위해 요리를 만들어준 것처럼, 이번에는 내가 엄마 가시는 날까지 맛난 요리를 만들어 드리겠다는 목표. 그리고 요리할 때의 '몰입'과 만족하게 했을 때의 '행복'. 효심도 분명 큰 몫을 차지했겠지만, 이 매일매일의 작은 몰입과 행복과 그에 대한 기록이 이 9년을 지탱해 준 것은 아닐까.

아들은 "우리의 생로병사가 오로지 아름답기만 할 것이라고 믿는 것은 거짓이고 위선이며, 그렇다고 해서 지친 영혼들의 비극처럼 보이게 하는 것도 우스운 일"이라면서 "나는 단지 엄마와 함께 지낸 지 난 시간의 이야기를 통해서 인간의 탄생과 죽음 그리고 가족이라는 관계 속에서 가는 사람과 보내는 사람의 모습을 담담하게 남기고 싶었을 뿐"이라고 했다.

'삼식이' 소리 들어가며 살 수 있던 사람이, 지금은 오히려 '삼시 세 끼 요리사'다. 나이 칠십에 백세 부모와 함께 산다는 게 큰 과장이 아닌 시대. 그가 먼저 깨달은 '인생의 맛'을 한번 경험해 보시기를.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6/12/02/201612020289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