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

[전문기자 칼럼] 대통령 주치의는 王朝의 어의가 아니다

최만섭 2016. 11. 29. 07:22

[전문기자 칼럼] 대통령 주치의는 王朝의 어의가 아니다

입력 : 2016.11.29 03:08

김철중 의학전문기자·전문의
김철중 의학전문기자·전문의
현재 국내 대표적인 국립·사립 대학병원 원장에게 공통점이 있다. 둘 다 박근혜 대통령 주치의 출신이고, 산부인과 교수다. 서창석 서울대병원장과 이병석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장이다. 최순실 사태로 이들은 뉴스 인물이 됐다. 박 대통령이 주치의나 청와대 의무실을 거치지 않고 최순실씨와 민간 병원 의사를 통해 국민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비급여 주사제를 지속적으로 맞아온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두 대학병원은 최순실 단골 의사와 공동 연구도 벌인 것으로 나타나 구설에 오르고 있다.

서창석 전 주치의는 청와대가 왜 그렇게 많은 마취제와 미용 주사제를 구비했는지 몰랐다고 했다. 의무실에서 알아서 결정한 사안이며, 자신은 보고받은 바 없다고 했다. 이병석 전 주치의도 비선 의사가 박 대통령에게 무슨 진료를 했는지 몰랐고, 나중에야 알았다고 했다. 세월호 발생 당일에 대해서도, 당시 주치의로서 의료 관련 내용을 보고받은 바 없다고 했다. 둘 다 비선 진료와 비상식적 의료에 무관하다는 입장이다.

박근혜 대통령 전 주치의인 서창석 서울대병원장이 2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병원 암병원에서 긴급 기자간담회를 열고 취재진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뉴시스
대통령 주치의 자리라는 게 뭔가. 우선은 대통령의 건강을 잘 관리해 국정 수행에 차질이 없도록 돕는 것일 게다. 질병이 생기면 어떻게 치료할지 자문 의사의 의견을 들어서 결정한다. 그러나 대통령 주치의에게는 이보다 더 중요한 임무가 있다. 이를테면 이런 것들이다. 대통령이 뇌졸중으로 의식이 불분명해졌을 경우, 대통령 주치의는 국군통수권을 잠시 국무총리에게 넘겨야 할 정도의 상황인지 결정해야 한다. 수술해야 할 경우 일정 시간 의식이 사라지는 수면 마취나 전신 마취가 필요한지에 대한 결정도 주치의 몫이다. 대통령이 약물 중독이나 수면제 남용 상태여서 명확한 판단을 못 할 것이 우려되면, 그걸 제지할 사람은 대통령 주치의밖에 없다. 이처럼 국가적으로 중대한 역할을 맡기 때문에 대통령 주치의를 차관급으로 대우한다.

두 대통령 주치의는 정체불명의 비선 진료가 그렇게 많았음에도, 마취제 의약품이 과도하게 비치됐음에도 그게 국정에 미칠 영향에 대해 적극적으로 알아보지 않았다. 의료 행위로 대통령의 의식이 명료하지 않거나 부작용이 발생할 개연성이 높음에도 관심을 두지 않았다. 서창석 원장은 주치의를 하다가 서울대병원장 선거에 나가느라, 그 자리가 한 달간 공석이 되기도 했다.

새로운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의료계에는 듣기에 보기에 거북한 장면이 나온다. 신임 대통령 주치의가 임명되면 신문과 방송은 '어의(御醫)'라는 표현을 써가며 의사의 최고 자리인 양 치켜세운다. 서울대병원과 세브란스병원이 대통령 주치의 자리를 놓고 신경전을 벌이고 로비전을 펴는 것도 정상은 아니었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대통령 주치의제를 바꿔야 한다. 미 국은 현직 군의관을 대통령 담당 의사로 임명한다. 직함도 '백악관 닥터(White House Doctor)'다. 개인 주치의 개념보다 더 강한 공적 성격을 띤다. 왜 미국 대통령은 백악관 근방에 있는 세계 최고 병원 존스홉킨스대 병원을 놔두고, 육군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겠는가. 다음 정부에서는 국군 통수권자에 합당한 공적 의무 체계를 제대로 갖췄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