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족 노조

최순실에 분노해 촛불 들었는데...웬 노동개혁 반대?

최만섭 2016. 11. 9. 10:15
최순실에 분노해 촛불 들었는데...웬 노동개혁 반대?
'노동개혁·구조조정 반대' 최순실과 엮으려는 노동계
이슈 묻힐까봐 도리어 최순실 이슈에 편승하려는 의도

등록 : 2016-11-08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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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국 기자(24pyk@dailian.co.kr)

▲ 시민단체들이 5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최순실 국정농단'사태를 규탄하며 박근혜 대통령의 하야를 요구하는 촛불시위를 벌이고 있다.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반정부 분위기가 확산되며 이를 노동개혁과 구조조정 등 노동계 이슈와 연관시켜 ‘투쟁 동력’을 얻으려는 노동계의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다.

재계에서는 최순실 사태가 성과연봉제, 임금피크제 등 노동개혁 핵심 사안과 일부 업종의 당면 과제인 구조조정 추진 동력을 약화시키는 요인이 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8일 노동계에 따르면 민주노총 등 각계 사회단체가 참여하는 민중총궐기투쟁본부는 오는 12일 오후 2시부터 서울광장, 서울역, 청계광장, 대학로, 서울역사박물관 등 서울 도심에서 각 단체별 집회를 가진 후 오후 4시부터 서울광장에서 집중대회를 열 계획이다.

여러 단체들이 참여하는 집회인 만큼 최순실 사태와 관련된 정치적 사안 외에 노동개혁 반대, 민주노총 위원장 석방, 쌀값 보장,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등 다양한 요구사항들이 등장할 예정이다.

이번 ‘민중총궐기 집회’는 최순실 사태가 본격화되기 이전부터 계획돼 있었다. 민주노총 등은 지난 9월 20일 민중총궐기투쟁본부를 발족하고 일찌감치 오는 12일로 집회 일정을 잡았다.

그러던 중 최순실 사태가 터지며 주말인 지난 5일 20만명이 참여하는 대규모 촛불집회가 열렸고, 두 번째 주말 집회가 그 다음 주인 12일로 연결되며 민중총궐기 집회와 겹치게 된 것이다.

이에 따라 재계에서는 단지 최순실 국정농단에 분노해 촛불을 들고 나온, 노동계 이슈와 무관한 시민들까지 졸지에 ‘노동개혁 저지, 구조조정 반대’ 시위에 휩쓸리게 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투쟁본부 측은 출범 당시에는 없었던 ‘최순실 게이트 규탄’ 등의 구호를 추가하며 집회 참가자들을 노동개혁 저지 등의 이슈로 끌어들이는 촉매제로 최순실 사태를 활용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노동계는 그동안 최순실 국정농단을 규탄하는 시국선언에서도 기존 노동계 이슈와 최순실 사태를 연계시키려는 모습을 보여 왔다.

금속노조 한국지엠지부는 지난 3일 시국선언을 통해 “비선실세 최순실에게 비자금을 몰아 준 전경련과 대기업은 노동자들을 더욱 착취할 무기인 임금피크제, 성과연봉제, 저성과자 퇴출제 등의 알짜배기 선물을 요구했다”면서 “노동자들의 목숨 줄을 담보로 한 타락한 정권과 자본의 거래는 명확한 특정경제범죄 위반”이라고 주장했다.

대기업들을 대변하는 전경련이 이번 최순실 게이트에 연루된 것을 빌미로 그동안 전경련이 주장해온 노동개혁 관련 사안도 ‘범죄’로 규정한 것이다.

▲ 현대중공업 노조 소식지 '민주항해'가 오는 12일 민중총궐기 참여를 독려하는 소식을 싣고 있다. 이 소식지에는 최순실 및 박근혜 대통령을 비난하는 구호와 함께 노동개혁 반대를 주장하는 구호가 포함돼 있다.ⓒ현대중공업노동조합
현대중공업 노조도 자체 소식지 ‘민주항해’를 통해 최순실의 국정개입을 비난하며 “12일 민중총궐기에서 박근혜 정부 퇴진과 조선산업 구조조정에 대한 우리의 분노와 국민의 힘을 보여주자”고 언급했다. 최순실이 조선산업 구조조정까지 개입했다는 정황은 전혀 나온 바 없지만 두 사안을 엮은 것이다.

그동안 노동계의 대규모 집회 때마다 비난 성명을 내며 노동계의 불법 행위에 대한 정부의 엄정 대응을 촉구하던 경제단체들도 이번엔 목소리를 내기 힘든 상황이다.

미르·K스포츠재단 강제모금 의혹에 연루돼 수사를 받고 있는 전국경제인연합회는 말할 것도 없고, 다른 경제단체들도 전 국민적 분노를 불러일으키고 있는 최순실 사태와 관련된 집회를 잘못 언급했다가는 감당할 수 없는 역풍을 맞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최순실 규탄 집회’의 울타리 안에서 노동개혁·구조조정 반대를 외치는 노동계를 따로 분리해서 비난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경제단체들은 입을 닫고 있을 수밖에 없다.

재계 한 관계자는 “노동계 이슈가 최순실 이슈에 묻히느냐, 아니면 최순실 이슈와 연관시켜 더욱 부각되느냐의 문제인데, 노동계는 당연히 후자의 방향으로 유도하려고 할 것”이라며 “아무래도 조직력이 강한 노동단체들이 (12일) 집회를 주도할 가능성이 높은데, 그러다 보면 전혀 이해관계가 없는 일반 시민들까지 노동개혁 반대를 외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우려했다.

또 다른 재계 관계자는 “정부가 추진한 몇 가지 사업이 최순실에 농락당한 정황이 드러나고 있지만, 그렇다고 정부가 그동안 추진해온 모든 일이 잘못됐다고는 할 수 없다”면서 “특히 노동개혁은 기업 환경 개선 측면에서 이번 정부의 가장 큰 업적 중 하나인데, 이번 사태로 그 추진 동력이 상실되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지적했다.[데일리안 = 박영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