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고전적(古典的) 가치(價値)의 부활(復活)

최만섭 2016. 9. 6. 09:52

제목 : 고전적 가치의 부활


1. 부활 

일전에 모 신문사에서 벌인 설문조사에서 이 세상에서 제일 살기 좋은 나라로 아일랜드가 선정되었다. 많은 사람이 아일랜드를 선택한 이유는 아일랜드에는 고전적 가치와 현대적 문명이 조화롭게 공존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가톨릭 국가인 아일랜드의 고전적 가치는 기독교 윤리를 근간으로 진실하고 도덕적이며 정의로운 삶을 추구하는 것이다. 톨스토이의 부활(復活)은 이러한 고전적 가치의 중요성을 진지하게 설명하고 있다. 19세의 순박한 청년 ?네흘류도프는 한여름을 시골 고모네 집에서 보내면서 두 가지 뜻깊은 경험을 하게 된다.


첫 번째는 난생처음 스스로 인생의 모든 아름다움과 중요함을 깨닫고, 사람에게 주어진 사명의 참뜻을 이해하며, 자기와 온 세계의 끝없는 완성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완성에 도달할 수 있다는 강력한 희망과 완전한 믿음으로 완성(完成)의 길에 들어설 때 느끼게 되는 감동을 경험한 것이고, 두 번째는 카츄사라는 하녀와 정신적 사랑을 하게 된 것이다.


카츄사를 만난 후부터 그는 진정한 의미의 행복을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은 주관적이면서 자연적으로 느껴지는 정신적인 감동이었다. 카츄사가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도 그의 가슴은 기쁨과 환희로 가득 찼으며, 그에게 카츄사는 풀 수 없는 수수께끼처럼 신비함으로 느껴져서 감히 그녀를 육체적 사랑의 대상으로 상상조차 할 수 없을 만큼 고귀한 사랑에 대한 감정을 경험한 것이다.


13년 후 네홀로도프는 세련된 이기주의자가 되어 카츄사 앞에 다시 나타난다. 그가 그렇게 변한 것은 선()을 실행하려는 그의 모든 노력이 현실주의자들에 의하여 무산되었기 때문이다. “()이란 신심(信心)이다. 경건한 마음으로 신이 내리는 계시에 귀를 기울이고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양심의 소리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다.” “()이란 어떤 행동의 결과에 대한 평가가 아니라 선()에 대한 의지 없이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다.” 그가 생각하는 선()과 악()을 이렇게 진지하게 설명하면 주위의 귀족 친구들은 그를 마귀라고 조소하면서 미운 오리 취급을 했다. 마침내 그는 모든 문제 타인의 결정에 맡기는 타인 의존형의 인간이 되었다. 주관과 희망을 잃고 생각 없는 사자가 된 그는 정욕의 대상으로 카츄사를 짓밟고 그녀의 가슴에 100루블짜리 지폐를 남긴 채 그녀의 곁을 떠났다. 10년 후 배심원으로 법정에 출두한 네홀로도프는 법정에선 여 죄수 마슬로바가 바로 자신이 짓밟았던 카츄사이며, 그녀가 자신의 아이를 뱄었고 그 때문에 고모네 집에서 쫓겨나 창녀로 전락해 끝내는 살인누명까지 쓰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심한 양심의 가책을 받는다. 그리고 그는 카츄사를 구원하고 갱생시키고자 모든 노력을 기울인다. 그는 유형수가 된 그녀의 뒤를 쫓아 시베리아로 떠난다. 네홀로도프는 유형 도중에 사귀게 된 많은 정치범으로부터 농노제도의 모순과 기독교의 부패에 대한 실상을 듣는다.


소수 귀족의 즐거움과 만족을 보장하고자 수백만 농민은 굶주림의 고통을 감내해야만 했다. 타락한 귀족들은 화장품 같은 사치품을 수입하려고 부족한 식량을 수출하는 만행을 서슴지 않고 저질렀다. 부패한 목회자들은 진실을 외면한 대가로 평생 호의호식할 부를 귀족들에게서 받았다. 그들이 드리는 기도는 양심의 가책 없이 또 다른 만행을 저지르기 위한 수단에 불과했다.


농노제도를 의심한던 톨스토이는 토지는 공기와 물과 같이 개인의 소유가 아닌 하나님의 것이라는 생각에 이른다. 혹자는 그를 사유재산을 부정하는 사회주의자라고 부르지만, 그는 인간은 누구나 기아에서 해방될 권리를 갖는다고 느낀 휴머니스트다. 어느 날 밤 여관 방에서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말씀에 몰두하던 네홀로도프는 복음서속에서 자신과 카츄사의 갱생의 길잡이를 발견하게 된다. 사랑과 용서를 바탕으로 다음의 계명을 철저히 지키며 사는 것이다.

1. 살인하지 마라. 형제에게 화를 내서도 안 되고 누구든지 보잘 것 없다거나 어리석다고 생각해선 안 된다.

2. 간음하지 마라.

3. 무슨 일에서도 맹세를 하고 약속하지 마라.

4. 복수하지 마라.

5. 원수를 사랑하고 도우며 그들을 위하여 봉사하라.


우리가 타인을 용서해야만 하는 까닭은 죄 없는 사람은 없고, 따라서 벌을 주거나 바르게 가르치거나 할 수 있는 그러한 사람도 없어서 언제든지 누구나 용서하며 몇 번이고 끝없이 용서해야만 하는 것이다. 갱생의 길을 찾은 네홀로도프는 성인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처음에는 야릇한 일, 역설, 농담처럼 여겨진 생각이 차츰 실생활 속에 확증을 찾아내게 되고 그러는 동안에 갑자기 아주 단순한, 의심할 수 없는 뚜렷한 진리로서 보이게 되는 것을 경험한 것이다. 네홀로도프의 삶은 아이에서 사자로, 사자에서 아이로, 아이에서 성인으로 다시 태어났다. 성인은 아이에게 버거운 현실이라는 수레를 대신 끌어주는 마음이 따듯한 마부다. 마부의 마음은 종심소욕(從心所欲)이나 불유구(不踰矩)”가 아닐까? (자신의 마음이 하고자 하는 바를 좇아도 법도에 어긋나지 않는다.)


2. 루터와 칼뱅

15171031일 비텐베르크 신학 대학교수였던 마르틴 루터는 교황 레오 10세가 발부한 면죄부의 부당성을 폭로하는 95개조의 반박문을 비텐베르크 교회 정문에 내다 걸었다. 이 통상적인 관례 행위가 신교인 프로테스텐트(Protestant/저항하는 사람이란 뜻) 태동의 계기가 될 줄은 루터 자신을 포함한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쿠텐베르크가 발명한 인쇄술로 그의 반박문이 삽시간에 독일 전역으로 퍼져 정국이 걷잡을 수 없는 소용돌이 속에 빠진 것이다. 그의 중심사상은 성서 중심주의, 평등주의 및 기존 교회의 부정 등이었다. 루터는 우리의 생각과는 달리 가톨릭의 부패가 독일 정치의 발전을 저해하므로, 독일의 주권을 로마의 교권에서 독립시켜야 한다는 신념을 지닌 정치 개혁가였다. 그는 연방군주의 비호를 받으면서 위로부터의 개혁을 역설했다. 그는 독일 귀족들에게 독일을 로마로부터 해방하고 교회의 재산과 토지를 접수하라고 호소했다.


1524년 독일 슈튈링 백작 령에 농민전쟁이 발생했다. 농민들이 농노제 폐지와 봉건제도의 타파 등을 요구하자 루터는 귀족들에게 농민을 가혹하게 진압할 것을 권고했다. 이로 말미암아 2년 동안 10만여 명의 농민이 죽임을 당해야 했다. 루터는 민중이 세상의 주인이 되는 것을 단호하게 거부한 냉정한 현실주의자이었다. 루터를 계승한 프로테스턴트의 황제라고 불리는 장 칼뱅(1509-1564)은 순수한 종교개혁을 주장하였다. 칼뱅은 가톨릭이 부패한 이유를 상층(교회)에서는 도덕이, 하층(시민)에서는 규율이 무너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도덕을 부활하려면 타락한 성직자를 교회에서 훈련과 교육을 통해 거듭나게 하여야 한다면서, 이를 전담하기 위한 교회기구로 장로제를 주창하였다.


칼뱅은 현실에서의 참된 신앙생활을 신의 뜻과 의지로 해석하는 이른바 예정설을 주장하였다. 그는 세상과 교회를 구분하여 보는 것보다는 세상에 참여해서 변혁시키는 기독교적 책임을 강조하였다. 고전적 가치는 칼뱅이 말하는 참된 신앙생활이다. 즉 도덕과 규율을 바탕으로 우리가 사는 세상을 아름답고 깨끗하게 정화하려는 의지와 노력인 것이다. 나는 시장과 광장에서 수많은 루터를 만날 수 있었다. 그러나 불행히도 단 한 명의 칼뱅도 만나지 못했다. ? 이 땅의 종교인들은 그들의 사명은 부패한 세상에서 승리하는 것이 아니라 타락한 세상을 정화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을까?


3. 희망

우리는 고전(古典)이 죽어가는 슬픈 시대에 살고 있다. 보신과 탐욕만을 생각하는 편집증 환자들은 톨스토이와 칼뱅은 더는 필독해야 할 고전이 아니라고 외치고 있다. 나의 꿈은 고전적 가치가 부활하는 것이다. 이 시대를 짓누르는 절망과 공포, 이 땅에 난무하는 패륜과 부패는 고전적 가치의 부재에서 기인하기 때문이다.


고전적 가치의 부활은 생각하는 삶을 사는 성인이 부르는 희망이라는 행진곡이다. 희망은 나와 이웃, 나와 자연과의 상생이다. 현실주의자 들이 사자의 서식처를 선호하고 이상주의자들이 하나님의 나라를 동경하듯이 나는 성인의 초라한 집을 사랑한다.


내가 생각하는 성인은 진리와 신념을 지키고자 냉혹하고 부패한 현실과 맞서는 칠순의 건장한 노인이며, 내가 꿈꾸는 부활은 강남대로에서 톨스토이와 칼뱅을 만나는 것이다.

 

2005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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