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하는 피 검사
피 검사로 알츠하이머 조기 진단, 국내외 연구진 개발… 현재 기술 상용화 진행 중
'피'는 생명의 결정체이다. 핏속의 적혈구가 몸속 구석구석에 산소를 공급하고, 백혈구는 침입자를 막으며 생명을 유지한다. 피가 없으면 숨을 쉬고 살 수도 없고 질병을 이겨내지도 못한다. 질병을 찾아내는 데도 피가 중요하다. 우리 몸의 상태를 그대로 보여주는 지표이기 때문이다. 과학자들은 조금이라도 더 적은 피를 이용해 더 많은 질병을 조기에 진단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알츠하이머 등 난치병을 조기에 진단할 수 있는 기술이 개발됐고, 우울증 치료제가 환자에게 적합한지 피를 통해 알아낼 수 있는 기술도 등장했다. 암이 얼마나 퍼졌는지도 피가 말해준다.- ▲ 피 검사를 이용해 다양한 질환을 진단하는 기술이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영상 촬영이나 의사와의 상담을 통해서만 진단이 가능했던 알츠하이머 치매도 조기에 진단할 수 있는 피 검사 기술이 국내외에서 개발됐으며, 우울증 치료제 효과도 피 검사를 통해 미리 알아볼 수 있다. /제너레이션오퍼튜니티 재단 제공
올 상반기 미국 실리콘밸리 최고의 화제는 '신데렐라'로 불렸던 엘리자베스 홈스(32)의 몰락이었다. 홈스는 19세에 스탠퍼드대 화학과를 중퇴하고 바이오기업 테라노스를 세웠다. 홈스는 피 한 방울로 암을 비롯한 수백 가지 질환을 15분 안에 진단할 수 있는 '에디슨'이라는 진단기기를 선보였다. 테라노스의 기업가치는 2014년 90억달러(약 10조6020억원)까지 올랐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지난해 10월 에디슨의 기술이 과대 포장됐다는 의혹이 제기됐고, 조사에 나선 미국 연방 보건당국은 지난 4월 테라노스의 퇴출을 결정했다.
상식적으로 테라노스의 몰락은 피를 이용한 진단 기술에 대한 불신을 키워야 한다. 하지만 과학자들과 의사, 제약기업들은 여전히 피에 대해 굳건한 믿음을 나타내고 있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김영수 박사는 "테라노스가 주목받은 것은 피를 연구하는 학자들이 언젠가는 실현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기술이기 때문"이라며 "실제로 피를 이용한 진단 기술은 이 순간에도 발전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영수 박사는 지난해 간단한 혈액 검사를 통해 알츠하이머를 진단하고 병의 진행 정도까지 알아낼 수 있는 기술을 개발했다. 지금까지 알츠하이머는 영상기기를 이용해 뇌를 촬영하거나, 의사의 문진을 통해 알아냈다. 하지만 이런 진단법은 알츠하이머가 상당히 진행된 뒤에야 정확한 판단을 내릴 수 있었다. 알츠하이머는 완치는 어렵지만, 조기에 발견하면 진행 속도를 늦출 수 있다. 조기 진단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이다. 김 박사팀은 알츠하이머에 걸린 환자는 면역체계 이상 단백질인 '인터류킨'의 농도가 정상인과 다르다는 점을 발견했다. 피검사를 통해 인터류킨의 농도를 측정하면 알츠하이머를 조기 진단할 수 있다는 것이다. 100여 명의 환자를 대상으로 진단의 정확성도 입증됐다. 현재 이 기술은 중견 기업에 이전돼 상용화가 진행 중이다.
미국 로완대 연구진도 피를 이용한 알츠하이머 진단 기술을 개발했다. 이들은 알츠하이머 환자의 피가 혈관을 빠져나와 뇌로 침투하면서 특정한 항체를 만들어낸다는 점에 주목했다. 이 항체가 피검사에서 나오면 알츠하이머가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판단할 수 있다. 연구팀은 "236명의 환자의 피를 채취해 항체를 측정한 결과 100% 정확한 검사 결과를 얻었다"고 말했다. 연구 결과는 지난 9일 국제학술지 '알츠하이머와 치매'에 실렸다.
◇우울증도 피검사로 진단
우울증 치료제가 환자에게 잘 듣는지도 피검사를 통해 알아낼 수 있다. 우울증 환자 중 절반은 일반적인 항우울제가 효과가 없다. 하지만 실제 투약하기 전에는 미리 알아낼 방법이 없다. 몇 달간 항우울제를 먹어본 뒤에야 본인에게 맞는 약인지 아닌지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영국 킹스칼리지런던 연구팀은 지난 7일 발간된 국제학술지 '국제신경정신약리학 저널'에 "피에 '대식세포이동저지인자(MIF)'와 '인터류킨(IL-1) 베타'가 일정 수준 이상 포함된 환자는 일반적인 항우울제가 듣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연구를 이끈 안나마리아 카타네오 박사는 "이 두 가지 지표는 새로운 뇌세포의 생성, 뇌세포의 연결 등과 관련이 있다"면서 "약을 투여해보지 않고도, 사전에 환자에게 적합한 항우울제를 선별할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국 벤처기업 '가든트 헬스'는 최근 피를 이용해 암을 진단하고 암세포의 전이 과정을 추적하는 기술을 공개했다. 회사 측은 "암세포가 어떤 종류인지, 얼마나 퍼졌는지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종양에서 직접 조직을 떼어내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라며 "하지만 피에서 암세포 유전자를 뽑아내면, 이 유전자의 변화를 관찰해 적절한 암 치료법을 결정하고, 전이 과정을 추적할 수 있다"고 밝혔다. 회사 측은 이 검사법을 통해 50가지에 이르는 암세포를 확인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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