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

[Why] 시력 잃은 아내, 남편 손 잡고 500㎞ 마라톤 완주… 美 횡단 꿈꾸는 '울트라 부부'

최만섭 2016. 6. 25. 06:25

[Why] 시력 잃은 아내, 남편 손 잡고 500㎞ 마라톤 완주… 美 횡단 꿈꾸는 '울트라 부부'

울트라 마라토너 부부 김미순·김효근 씨

김미순·김효근
사진을 찍기 전 남편 김효근씨는 “이 옷과 신발이 더 예쁘다”며 아내 김미순씨를 챙겼다. 아내는 “나 경기 뛸 때 입는 옷, 신는 신발?” 하며 남편 말대로 갈아입었다. 남편은 늘 색깔이나 생김새를 아내에게 설명해줬다. /고운호 객원기자
1988년 입 주변에 난 종기 때문에 찾아간 병원에서 김미순(당시 27세)씨는 의사에게서 "10년 안에 실명(失明)할 가능성이 높다"는 말과 함께 베체트병 진단을 받았다. 희귀병인 베체트병은 최악에는 눈 안에 염증이 생겨 시력을 잃는 병이었다. 3년 뒤인 1991년부터 실제로 눈이 나빠지기 시작했다. 두 살짜리 딸을 뒀던 김씨는 집 안으로 숨어들었다. 혹시라도 앞이 잘 안 보여 발을 헛디딜까 봐, 부은 얼굴을 보고 사람들이 손가락질할까 봐 집 밖으로 나가는 횟수가 점점 줄었다. 곧 실명할 것이라는 공포와 '설마 아니겠지' 하는 희망이 매일같이 교차했다. 그리고 1999년 김씨는 전혀 앞을 볼 수 없는 1급 시각장애인이 됐다.

김씨를 다시 세상 밖으로 불러낸 사람은 남편이었다. 남편은 "집에 혼자 놔둘 수 없다"며 매일 아내 손을 잡고 출퇴근했다. 2002년 김씨가 마라톤을 시작할 수 있었던 것도 가이드이자 페이스메이커가 되어 준 남편 덕이 컸다. 14년이 지난 지금도 두 사람은 여전히 함께 달린다. 500㎞ 넘는 거리를 달리는 울트라 마라토너 부부 김미순(54)씨와 김효근(54)씨를 지난 20일 두 사람의 일터인 인천 옥련동 카센터에서 만났다.

결혼 직후 찾아온 '失明'

아내 김씨가 운동을 시작한 건 '살기 위해서'였다. 치료차 간 중국 난징에서 의사는 "운동하지 않으면 상태가 더 나빠진다"고 했다. 마침 그때 우리나라에서 마라톤 열풍이 불고 있었다. 처음엔 아내만 달리기를 시작했다. 2002년 남동생 손을 잡고 10㎞ 코스를 완주했다. 김씨는 "아픈 뒤로는 마라톤을 하며 처음으로 성취감을 느꼈다"고 했다. 남편 김씨가 아내의 달리기에 합류한 건 그로부터 1년 후였다.


마라톤 대회에 나가려면 꾸준히 연습해야 했고, 연습 파트너로는 남편만 한 사람이 없었다. 처음엔 두 사람이 다니던 성당에서 연습을 도와줬지만 가족이 아닌 사람에게 '화장실에 데려다 달라' 같은 말을 꺼내기가 쉽지 않았다. 결국 매일같이 손잡고 뛰어줄 사람이 남편뿐이었다.

1년 가까이 함께 달리는 연습을 했다. 끈으로 서로 손목을 묶고 11㎞ 길이 대부도 다리를 왕복했다. 남편은 왼쪽으로 뛰려고 하는 아내 손을 계속 잡아끌었다. 시각장애인은 본능적으로 심장이 있는 왼쪽으로 몸이 기운다고 한다. 연습 끝에 처음 함께 나간 풀코스 마라톤이 2005년 춘천마라톤이었다. 남편은 앞이 보이지 않는 아내를 위해 "단풍이 빨갛게 물들었어" "코스모스가 봉오리를 터뜨렸어"라며 끊임없이 말을 건넸다. 첫 마라톤 완주에는 4시간 40분이 걸렸다. 두 사람은 "그날의 행복했던 기억이 마라톤에 빠지는 계기가 됐다"고 했다.

해마다 마라톤 대회에 나가던 부부는 2007년 울트라 마라톤을 시작했다. 울트라 마라톤은 풀코스인 42.195㎞보다 훨씬 더 먼 거리를 달리는 마라톤이다. 울트라 마라톤 대회 중 강화~강릉 308㎞, 부산~임진각 537㎞, 해남~고성 622㎞ 세 코스를 완주하면 울트라 마라톤 그랜드슬램을 달성하게 된다. 두 사람은 두 번이나 이 그랜드슬램을 해냈다.

"처음 500㎞가 넘는 코스를 뛸 때 남편은 자신이 없다고 했어요. 그런 남편에게 제가 꼭 뛰고 싶다고 우겼죠. 그런데 막상 출발선 앞에 서니까 '남편 잡는 것 아닌가' 하는 걱정이 되더라고요. 남편이랑 둘 중 한 명이라도 힘들면 바로 깔끔하게 포기하자고 약속했어요."

잠도 거의 자지 않고 6박 7일을 뛰었다. 해가 지고 달이 뜨는 걸 계속 말해주던 남편이 어느 순간 말했다. "아녜스(김미순씨 세례명), 저기 앞에 마지막 언덕이 보여." 그 언덕을 올라갈 때 아내 김씨는 하염없이 눈물을 쏟았다고 했다. 김씨는 "스스로가 기특하고 남편한테 고마워서 가슴이 벅차올랐다"고 했다.

울트라 마라톤 그랜드슬램 2회 달성

김효근·김미순
2012년 7월 김씨 부부는 부산에서 임진각까지 537㎞ 거리를 달리는 울트라마라톤을 함께 완주했다. /김효근·김미순씨 제공
두 사람은 등산 동호회에서 처음 만났다. 남편이 아내 사진을 몇 장 찍어줬고 사진을 인화해주겠다는 핑계로 연락처를 받아 갔다. 2년 연애 끝에 결혼하고 이듬해 딸을 낳았다. 딸은 지금 영국에서 유학 중이다. 김미순씨는 "자식에게 늘 미안한 마음이 있다"고 했다.

"언젠가 딸이 '엄마, 난 사춘기가 없었던 것 같아' 그러더라고요. 아이를 낳고 얼마 안 돼 베체트병 진단을 받으면서 제대로 신경 써주지 못했어요. 딸한테 엄마가 필요하던 시기에 엄마 역할을 못 해준 것에 대한 응어리가 아직도 마음에 남아 있어요."

김미순씨는 "차라리 베체트병 진단을 받고 바로 눈이 멀었더라면 좋았을 것"이라고 했다. "그랬더라면 실명(失明)을 더 잘 받아들였을 것 같아요. 전 10년 동안 내 눈이 더 나빠질지 아닐지 걱정하며 시간을 허비했거든요. 헛된 희망과 싸우느라 정신이 무너졌죠. 그때 애쓰지 말고 내가 장애인이 되는 걸 받아들였으면 좋지 않았을까 후회가 돼요. 눈이 조금이라도 보일 때 장애인으로 살 수 있는 준비를 해야 했는데…. 저는 아직 점자도 못 읽거든요. 후천성 시각장애인은 손 감각이 발달하지 않아서 점자 배우기가 쉽지 않아요. 문맹인 셈이죠." 그는 그래서 건강이 지금보다 나빠지지 않을까 걱정하지도 않는다고 했다. "처음에 미리 걱정만 하다 병을 키웠잖아요. 어차피 미리 걱정해봤자 해결되는 건 하나도 없으니까 괜히 고민하지 말자는 거죠."

가톨릭 신자인 그는 "하느님이 나를 시각장애인으로 살게 하는 대신 착한 딸과 남편을 주셨다"고 했다. "딸이 고등학교 졸업하자마자 운전면허를 따더라고요. 엄마 마트 갈 때 자기가 태워주겠다고요." 김미순씨에게 지금 행복하냐고 물으니 "그럼요" 하며 깔깔 웃더니 "적어도 불행하진 않다"고 했다. "제가 장애인인 게 행복하진 않아요. 사실은 지금도 힘들어요. 가끔은 눈이 안 보이는 게 너무 답답하죠. 그래도 눈이 안 보이는 대신 다른 걸 얻었잖아요. 그래서 불행하진 않아요.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맞춰 사는 법을 알게 되더라고요."

마라톤으로 장애 청소년 돕기도

두 사람은 24일 몽골에서 열린 울트라 마라톤에 참가 중이다. 이 때문에 열흘간 가게 문을 닫는다고 했다. 가게 앞에 '마라톤 참가 때문에 문을 닫는다'는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1년에 10번 이상 짧게는 하루, 길게는 2주씩 가게 문을 닫는다고 한다. 자영업을 하는 사람에겐 큰 손실일 수밖에 없다. 마라톤 대회에 나가는 데도 돈이 든다. 울트라마라톤은 50만원 넘는 참가비를 내야 한다. 그간 치료비로도 2억원 가까이 썼다고 했다.

"아직까지는 쪼들리는 편이지요. 그렇지만 '돈이 없으면 어떡하지' 하고 걱정하지 않고 '나중에 또 벌 수 있겠지' 하고 생각해요. 울트라 마라톤을 나갈 때 5박 6일씩 가게를 비우거든요. 급한 손님은 다른 카센터에 가고 급하지 않은 손님은 우리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려줘요. 자주 문을 닫아서 손님이 떨어질 것 같은데 또 이상하게 안 그렇더라고요."

부부는 지난해부터 장애인 청소년을 후원하고 있다. 1㎞를 뛸 때마다 후원사인 인천가스공사에서 1000원씩 적립해준다. 500㎞ 울트라 마라톤을 한 번 완주하면 후원금 50만원이 생기는 셈이다. "몇 년 전부터 뛰는 일이 다른 사람에게도 도움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가게 손님 중에 가스공사 직원이 있었는데 '내가 이런 걸 하고 싶은데 도와줄 수 있느냐' 물어본 게 운 좋게 바로 후원으로 연결됐죠. 그 뒤로 뜀박질이 더 재밌어졌어요."

마라토너로서 부부의 마지막 꿈은 미국을 달리기로 횡 단하는 것이다. 총 5060㎞를 뛰는 데 4개월 정도가 걸린다. 경비도 1억원 넘게 든다. 두 사람은 "가게를 팔아서라도 꼭 해보고 싶다"고 했다. "처음에 달리기를 시작할 땐 완주만 하자 했는데 결국 해냈어요. 그다음엔 울트라 마라톤을 하고 싶었는데 해냈고, 누군가를 돕고 싶다고 생각했더니 그것도 되더라고요. 그러니 미국 횡단도 언젠가는 되겠죠."(웃음)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