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

당뇨·치매 환자도 운전 중 돌발상황 맞을 수 있다

최만섭 2016. 8. 2. 05:23

당뇨·치매 환자도 운전 중 돌발상황 맞을 수 있다

입력 : 2016.08.02 03:00

당뇨환자 400만명 추산… 치매 앓는 65세 이상 22만명이 운전
운전前 혈당 측정, 어지러울 땐 운전 중단 등 안전수칙 지켜야

저혈당 오면 갑자기 의식 잃을수도
치매 진단 받은 사람 중 절반이 "진단 후에도 1년간 운전했다"
교통당국 "사고 낼 위험 크다고 운전 자체를 제한하기는 어렵다"

서울의 한 대학병원 내분비내과 A 교수는 최근 자신이 치료하는 당뇨병 환자 얘기를 듣고 깜짝 놀랐다. 당뇨병을 20여 년 앓았다는 60대 중반의 이 환자는 양발에 말초신경병증이 생겼다. 당뇨병 후유증으로 발가락과 발바닥의 말초 신경이 손상돼 감각이 크게 둔해진 것이다. 두 발이 뜨거운 것에 닿아도 느낌이 없어 화상을 입을 수 있는 수준이었다. 이에 A 교수는 "자동차 브레이크나 액셀러레이터를 밟는 감각이 떨어질 수 있으니 가능한 한 운전을 하지 않는 게 좋겠다"고 권고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환자 직업이 개인택시 운전기사여서 "손으로 작동하는 페달을 사용하라"고 권고했지만 이 환자는 "개인택시 운전기사 신체검사 항목에 그런 제한이 없다. 오랜 운전 경력으로 감(感)으로 잘할 수 있다"고 했다는 것이다. A교수는 "환자에게 운전을 한사코 말렸지만 운전면허 관리에 당뇨병에 대한 규정이 없어 별도리가 없었다"고 말했다.

◇저혈당 운전, 안전사고 위험 커져

부산 해운대구에서 17명 사상자를 낸 교통사고는 운전자 김모(53)씨의 뇌전증(간질)이 원인인 것으로 경찰 조사 결과 드러났다. 뇌전증뿐 아니라 당뇨병으로 인한 저혈당 증세와 치매 환자 등도 순간적으로 의식을 잃어 대형 사고를 일으킬 위험이 크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이 같은 '환자 운전자'들은 교통사고 가해자이면서 자신도 피해자가 될 수밖에 없어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재 국내 당뇨병 환자는 약 400만명으로 추산된다. 대한당뇨병학회 발표에 따르면 우리나라 성인 100명 중 12명(12.4%)이 당뇨병을 앓고 있다. 비만·운동부족 등으로 당뇨병 환자는 해마다 늘어 2030년에는 500만명을 넘을 것으로 학회는 보고 있다.

이 과정에서 당뇨병으로 인한 저혈당 증세도 늘어 각종 안전사고 위험이 커지고 있다. 저혈당 증세에 일단 빠지면 운전자가 갑자기 의식을 잃거나 혼미해지기 때문에 자동차는 통제할 수 없는 도로 위의 폭탄으로 돌변하게 된다. 실제로 지난해 2월 당뇨병을 앓던 시내버스 운전기사가 운전 중 저혈당 쇼크에 빠져 사고를 내 마주 오던 화물차 운전자가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당시 차량 블랙박스 영상을 보면 당뇨병 버스 기사는 의식이 혼미한 상태에서 버스를 이리저리 '갈지(之)자'로 몰았다. 인슐린 주사를 맞는 당뇨병 환자가 식사를 건너뛰거나, 많이 걷고 뛰는 등 운동량이 많을 경우 저혈당 증세에 잘 빠지게 된다.

국내 통계는 없지만 미(美)연방자동차안전국 연구에 따르면 당뇨병 환자는 일반인에 비해 교통사고를 일으킬 위험이 12~19% 더 큰 것으로 조사됐다. 당뇨 합병증으로 시력에 문제가 있거나, 페달 조작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는 말초신경염 합병증이 있어도 운전 사고 위험은 커진다. 서울대병원 내분비내과 조영민 교수는 "당뇨병성 망막병증으로 레이저 시술을 받은 환자들은 어두운 곳에서는 시야 장애가 생겨 운전 중 터널 속으로 들어가면 옆 차량을 포함해 갑자기 주변에 아무것도 안 보이게 된다"면서 "당뇨병 환자의 증상에 따라 운전을 제한하는 대책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아주대병원 내분비내과 김대중 교수는 "운전면허가 있는 당뇨병 환자는 저혈당 증세 예방과 대처 교육을 받도록 제도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치매 환자 절반이 "진단 후 1년간 운전"

지난해 3월 대구시내 도로 한복판을 달리던 승용차가 갑자기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더니 길가 안전펜스를 뚫고 인도로 올라가 상가 유리창으로 돌진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내가 왜 사고를 냈는지 잘 모르겠고 기억이 나질 않는다"고 경찰에 진술한 운전자 강모(85)씨는 조사 결과 인지 기능이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2월엔 73세 운전자가 대형 마트 주차장에서 브레이크 대신 액셀러레이터를 밟아 행인을 치어 숨지게 한 사고가 일어나기도 했다.

경찰청은 2015년 기준으로 국내 65세 이상 성인 약 22만2000명이 치매를 앓는 상태로 운전 중인 것으로 보고 있다. 국내 65세 이상 인구 662만4000명 가운데 치매 환자가 64만8000명으로 9.7%에 달하는데, 이 비율을 65세 이상 운전면허 소지자 229만명에 대입한 추정치다. 이 때문에 경찰은 지난해 65세 이상 운전자가 낸 교통사고 2만3063건(전체 교통사고의 9.9%) 가운데 노인들의 '치매성' 사고가 적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인하대 의대 신경과 조사로는, 치매 진단을 받은 환자의 54%가 그 이후에도 1년 동안 운전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에선 단순히 치매를 앓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운전을 금지하는 규정은 없다. 교통 당국은 "교통사고를 낼 위험이 크다는 이유로 운전 자체를 제한하기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다만 건강보험공단 등 9개 기관에서 치매나 알코올 중독 등으로 6개월 이상 치료 전력이 있으면서 운전장애 판정을 받은 사람에 대한 정보를 알려오면 이들에 대해 운전 가능 여부를 다시 심사하는 정도다.

분당서울대병원 신경과 김상윤 교수는 "일본에서는 치매 운전자들이 고속도로를 역주행하는 사고가 빈번해 사회 문제가 되고 있다"면서 "우리나라도 치매 상태를 평가해 그에 따른 운전면허 관리 대책을 세울 시점이 됐다"고 말했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