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양적 완화-'공짜 점심 아니다'

최만섭 2016. 5. 6. 11:04

[경제포커스] 한국판 양적 완화, '공짜 점심' 아니다

김홍수 경제부 차장
김홍수 경제부 차장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다."

사람들이 흔히 인용하는 말인데, 그 유래를 아는 이는 많지 않다. 미국 서부 개척 시절 술집에서 술을 여러 잔 마시면 공짜 점심을 준 데서 비롯됐다고 한다. 당장은 공짜인 듯 보이지만 술값에 다 반영돼 있고, 공짜 점심에 현혹돼 과음하다 보면 몸까지 상해 결국 '공짜'는 없다는 것이다. 이 말을 권위 있는 금언으로 격상시킨 이가 화폐경제학의 대가, 밀턴 프리드먼(1912~2006)이다. 그는 이스라엘 정부의 경제 고문 시절, 한 정치인이 경제 전반을 통하는 제1 원칙이 뭐냐고 묻자 이 답을 내놨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그의 지론은 "화폐량 증가는 반드시 인플레이션을 수반한다"는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한국은행이 발권력을 동원해 기업 구조조정에 필요한 자금을 대는 '한국판 양적 완화'에 나서기로 했다. 사안의 시급성을 감안하면 이 방법 외에 대안을 찾기 어렵다. 남은 과제는 실행 방안을 치밀하게 짜는 일이다.

4일 첫 모임을 가진 '국책은행 자본확충 태스크포스'의 실무진이 우선 명심해야 할 점은 발권력 동원이 '공짜 점심'이 되게 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기업 구조조정을 위해 한은이 새 돈을 찍어내면 그 비용을 전 국민에게 n분의 1로 분담시키는 것이다. 모든 국민이 십시일반으로 수술대에 오른 대기업의 수술비를 대는 셈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국민 지원을 받을 기업은 임직원들이 높은 임금과 복지를 누려온 이 땅의 대표 기업들이다. 이런 작업이 국민 지지를 얻어 속도감 있게 진행되려면 이 자금을 국민의 혈세로 여기고, 양적 완화의 혜택을 받을 기업, 채권단, 주주들에게 확실한 비용 청구서를 내밀어야 한다.

외환위기 당시 대기업 연쇄 부도 여파로 위기에 빠진 은행을 살리기 위해 168조원의 공적자금이 투입됐다. '손실의 사회화' 덕에 살아남은 은행원들은 '우물 안 개구리' 수준의 실력으로 억대 연봉을 누리며 이익을 사유화해 왔다. 이번에 국민적 지원 덕에 살아남을 대기업 임직원들이 이런 길을 답습하게 해선 안 된다. 기업 경영이 정상화되기까지 임직원들은 인력 감축, 임금 삭감 등으로 고통을 분담해야 한다. 경영 정상화 이후엔 국민주 형태로 기업을 공개하거나, 이익의 일정 부분을 공익기금으로 내놓게 해 구조조정에 따른 이익을 일반 국민도 누릴 수 있게 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

무능, 무책임으로 부실 규모를 더 키운 채권단에도 책임을 엄중히 물어야 한다. 대우조선 대주주인 산업은행 임직원들은 조선사 호황기 때 2600억원의 배당을 받으며 호의호식해왔다. '신의 직장'으로 불리는 산은 직원들의 평균 연봉은 9000만원이 넘는다. 대우조선이 애물단지가 돼 천문학적인 구조조정 자금을 수혈해야 한다면 산은 임직원들은 한은에 먼저 손 벌릴 게 아니라 임직원 임금 삭감, 자산 매각 등의 자구노력부터 해야 마땅하다 .

특정 산업 경쟁력이 떨어져 국민경제를 주름지게 할 정도라면 선제적 산업 재편으로 문제를 푸는 책임은 정부에 있다. 국민에게 손 벌리는 상황을 초래해 놓고도 정부 고위 당국자가 "국민적 공감대가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고 시치미를 떼는 것은 부적절한 일이다. 대주주에게 경영권 박탈로 책임을 추궁하는 것처럼 복지부동했던 정책 당국자들도 철저히 문책해야 한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