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송희영 칼럼] 심판받지 않는 不況

최만섭 2016. 4. 10. 10:23
[송희영 칼럼] 심판받지 않는 不況
  • 송희영 주필-입력 : 2016.04.09 03:20

청년 실업 사상 최악이라는데 불황 이슈 총선서 부각 못 돼
더민주·국민의당 경제팀 허약… 불황 '호재' 살릴 줄 몰라
여당에도 경제통 인사 드물어… 불황의 공포 뒤늦게야 깨달을까

송희영 주필
송희영 주필
몇 가지 경기 지표가 좋아졌다고 한다. 선거를 앞두고 정부나 여당에는 희망의 촛불로 보이는 모양이다.

소비자심리지수를 보면 2014년 1월 최고점을 찍은 뒤 회복되지 않고 있다. 설비투자는 작년에 0.7% 감소했다. 5년 전 29.7%나 증가한 이래 착 가라앉았다. 경기동행지수는 2011년 8월 수준으로 되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짧게 보면 지난 2년, 길게 보면 지난 5년이 경기 하강기였다고 보는 게 맞다.

독일 최대 보험 회사가 한국을 떠났다. 사업이 잘 굴러갔다면 손을 털고 일어섰을 리 없다. 국제 무대에서 한국 경제의 위상도 흔들릴 수밖에 없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본사 주최로 아시아 지역 대표자 총회를 열면 중국·일본 다음엔 한국 법인이 보고를 했죠. 지금은 인도, 베트남에 밀립니다. 잘하면 6번째나 8번째에 브리핑 순서가 돌아옵니다." 어느 글로벌 금융회사 한국 대표의 말이다. OECD 회원국 가운데 경제 실적이 상위라고 자랑했던 대통령은 뜬구름을 좇는 것인가.

청년 실업이 사상 최악으로 나왔다. 극단적인 통계를 모두 지우더라도 나라가 불황에 빠져 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불황은 선거판의 인기 메뉴가 되지 못하고 있다.

우선 유권자들부터 조용하다. 유승민 세력을 찍어 낸 대통령을 탓하고 돌아온 친노(親盧) 세력을 비난할지언정 불황에는 입을 다문다. 우리 청년들은 아직 참을 만한 모양이다. 1960년 4·19혁명, 1987년 민주화 운동을 주도했던 젊은이 집단과는 확연하게 다르다. 부모 세대가 벌어놓은 자산으로 생활을 보장받으며 '불황에 길들여진 세대'라는 말인가.

야당은 더 지리멸렬이다.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애초 경제 심판론을 내세웠지만 흥행이 부진하다. 이번 불황에는 땅콩 회항, 혼외자, 형제의 난, 운전사 학대 같은 총수 일가의 추태가 유독 이어졌다. 야당은 야당대로 김 대표는 김 대표대로 재벌을 때리며 경제 민주화 메뉴를 한껏 마케팅할 수 있는 기회였다. 하지만 공천파동에 파묻혀 재벌 이슈는 뜨거워지지 않았다.

도리어 더민주는 삼성그룹의 자동차 관련 신사업을 광주에 유치하겠다고 공약했다. 삼성은 곧 부인했지만, 만약 삼성이 이 사업을 시작하면 정치인으로서 평생 재벌 개혁을 브랜드로 삼았던 김 대표로서는 삼성 측에 손을 내밀어 부탁을 해야 할 처지다. 더민주는 경제민주화라는 자신들의 대표 상품에 스스로 생채기를 냈다.

더민주나 국민의당은 내부 경제팀부터 허약하다. 경제 전문가 숫자부터 적고 거시경제를 아는 사람이 드물다. 그러다 보니 불황이라는 호재도 살릴 줄 몰랐다. 야당에게는 지금처럼 공격 소재가 많을 때도 없었다. 경기 침체는 깊어지고 대통령이 애지중지하는 창조 경제는 호사스러운 사무실 외에는 그럴듯한 열매가 보이지 않는다. 부양책을 되풀이하고서도 재정 적자만 급증했다. 야당은 정부·여당이 저지른 이런 실패와 예산 낭비 사례들을 그대로 내다 버린 꼴이다.

중앙은행의 발권력을 동원해 구조조정을 하자는 한국형 양적 완화 공약도 사실 야당이 냈어야 한다. 불황 돌파구를 찾지 못하는 정부·여당을 공박하는 무기로 써먹을 만한 아이디어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도 돈을 찍어내 최대의 제조업체 GE와 GM 같은 자동차 회사들을 살려냈다. 유럽도 사업성이 유망한 프로젝트에는 중앙은행이 직접 자금을 지원해주는 프로그램을 운용하고 있다.

야당이 답답한 정부를 상대로 이런 제안을 앞세워 선수를 칠 만했다. 하지만 더민주는 자기 당에서 3선을 했던 강봉균 전 장관을 잃고 정책 아이디어마저 놓쳤다. 나중에 '완전 허수아비' '집에 있어야 할 노인'이라고 강 전 장관을 인신공격했으나 한국판 양적 완화는 이번 선거의 정책 이슈 가운데 최대 화제로 떠올랐다.

이걸 통해 여당은 그나마 대안을 제시할 능력이 있다는 인상을 준 반면 야당들은 비판만 내놓았다. 그러지 않아도 4년 동안 경제·민생 법안 처리를 미루면서 발목 잡기의 달인이라는 평가를 달고 살았던 야당이다. 이번에 또다시 그 악명 높은 정치 기술의 특허권자라는 사실만 확인해 주었다.

이번 총선 결과 여당이 다수당이 된다고 해서 경제가 장기 불황에서 빠져나갈 수 있을 것 같지도 않다. 새누리당에도 경제라면 유능한 통역관을 두어야 겨우 말이 통하는 사람이 태반이다. 경제를 좀 안다는 의원도 기껏 제조업 공장 몇 곳을 둘러봤거나 연구원에서 경제지표를 살펴 본 정도이다. 경기 흐름을 시차(時差) 없이 피부로 느끼는 여당 인사는 정말 드물다.

한국식 양적 완화만으로 되살아날 경제가 아니다. 온갖 규제를 쥐고 있는 공무원 집단의 철밥통을 깨지 않는 한 장기 불황에서 탈출할 수 없다. 우리 정치는 불경기의 쓴맛을 한참 더 맛본 뒤에야 불황의 공포를 깨달을 성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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