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 기술, 어디까지 왔나 고임금고숙련 노동 가리지 않아… 특정 분야 넘어 각 분야 동시다발
자동화 흐름은 거스르기 어려워… '기본 소득' 보장 등 안전망 준비를
로봇의 부상ㅣ마틴 포드 지음ㅣ이창희 옮김ㅣ세종서적ㅣ480쪽ㅣ2만원
이세돌과 알파고 대결의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인공지능(AI)이 쓴 소설이 문학상 예심을 통과했다는 소식이 이번 주 일본에서 들이닥쳤다.
마틴 포드의 '로봇의 부상(Rise of the Robots)'은 인공지능의 현주소에 대한 생생한 보고서이자, 자동화가 빼앗을 인류의 미래에 대한 건조한 묵시록(默示錄)이다. 뉴욕타임스·파이낸셜타임스·포브스·NBC 등 2015년 미국 신문과 방송의 '올해의 경영서' '주목할 만한 과학기술서'를 휩쓸었다. 국내 번역된 이 분야 저술로는 가장 넓고 치밀하게 'AI 쇼크'와 미래의 실직 위협을 과장 없이 소개했다는 평이다.
'묵시록'으로 명명한 이유가 있다. 컴퓨터공학과 경영학을 두루 전공한 포드는 25년 경력의 소프트웨어 개발자이자 성공한 실리콘밸리 사업가. 공포를 조장할 마음은 없지만, 포드가 예상하는 미래는 암울하다.
우선 저임금 미숙련 노동 사례부터.
#1. 미국 섬유산업은 중국·인도 등 저임금 국가로 생산 기지가 이동한 1990년대 이후 와해됐다. 20년간 무려 120만명 해고. 그런데 최근에는 본토 생산이 가파른 상승세다. 2012년 수출액은 3년 전 대비 30% 증가한 230억달러. 저임금 국가 근로자에게도 가격 경쟁력 있는 자동화 기술 덕이다. 문제는 '고용 없는 유턴'이라는 점. 노동력은 30년 전보다 93% 줄었다. ('제1장 자동화의 물결')
그렇다면 고임금 고숙련 노동은 안심할 수 있을까.
#2. 모니터 앞에는 두 개의 버튼만 있다. '유관'과 '무관'. 한 시간에 대략 80건 정도의 문서를 읽고 기계적으로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법무법인 소속도 아닌, 아웃소싱 대행사의 '저임금 변호사'들이 법적 소송과 관련한 대기업의 방대한 서류를 확인하는 중이다. 로스쿨 졸업생이지만 변호사 거품의 피해자인 이들은, 설 법정도 없고 직업인으로 성장할 기회도 없으며 버튼 누르기의 반복만 있을 뿐이다. 때려치우고 싶지만 제대로 된 일자리가 없다. 그나마 이 일마저도 딥러닝 기법으로 무장한 AI 변호사가 곧 대체한다.('제2장 화이트칼라의 충격')
#3. 일상의 질병을 진단하는 1차 진료 의사에게 미래가 있을까. '저임금 의학 도우미'가 미국 일부 지역에서는 이미 업무를 시작했다. 의사는 아니지만, 환자를 접촉하고 관찰하며 여기서 얻은 정보를 표준화된 진단 및 치료 AI 시스템에 입력한다. 빅데이터를 바탕으로 정확하고 신속하게 처방전이 곧바로 제시된다. ('제6장 의료시장의 분화')
내 직업과 관련 없다며 가슴을 쓸어내릴지 모른다. 포드는 유감이지만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인공지능의 특징은 '범용성'에 있다. 반복적이고 예측 가능한 직업은 예외가 없다. 이제까지의 자동화 기술은 특정 부분에 한정되어 있어서 한 분야에만 영향을 미쳤다는 것. 덕분에 근로자는 일자리를 잃어도 새롭게 부상하는 타 업종으로 전직한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새로운 산업도 구상 단계부터 강력한 노동 절약 기술을 장착하고 등장한다.
미래를 낙관하는 일부 전문가들은 '특이점(singularity)'을 인용하기도 한다. 블랙홀 주변을 설명하는 이 천체물리학 용어는, AI 분야에서는 인류 진보의 불연속점을 의미한다. 어떤 일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무엇이 일어날지조차 알 수 없는 지점. 이런 일도 가능하다. 뇌에 임플란트를 삽입해 인간의 지적 능력을 비약적으로 상승시키고, 첨단 기술로 생물학적 신체를 보존하며, 컴퓨터나 로봇에 마음을 업로드해 불멸까지도 이른다는 것.
하지만 포드는 숫자와 현실 이론으로 뒷받침할 수 없는 미래에 대해서는 유보적이다. 특이점이 과연 올지도 알 수 없지만, 올 때까지 인간이 겪어야 할 현실은 가혹하다는 것.
인공지능의 투입으로 생산성은 올라갔지만, 생산성 향상에 별 기여한 바 없는 인간 근로자에게 돌아올 몫은 많지 않다. 이익은 인공지능 소유자와 자본가에게 집중되고 양극화와 불평등은 심화된다. 예전에는 교육으로 이 위기를 돌파했지만, 이제는 교육으로 해결 가능한 분야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정부가 개입하면 이 자동화 흐름을 막을 수 있지 않을까. 포드는 부정적이다.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여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데, 전능한 시장이 이를 방해하는 정부의 개입을 방치할 리 없다는 것.
포드는 우리가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고 제안한다. 이 압도적 자동화 흐름을 막을 수는 없으며, 대신 정부가 이 흐름에 적응하지 못한 대부분의 국민을 보호해야 한다는
것. 그의 제안은 '기본소득'이다. 자동화로 일자리를 잃게 된 사람들에게 일정 수준의 소득을 보장하는 일. 자금의 누수(漏水)와 불필요한 중간 관리자를 양산하는 푸드 쿠폰, 후생 주거비 지원, 의료 지원을 최소화하고, 대신 직접 '기본소득'을 지원하자는 것이다.
분명 즐겁지 않은 독서지만, 인류와 당신의 미래 행동 계획을 위해서는 불가피한 독서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