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파고, 이세돌에 승리-2016년3월9일

[시론] 이세돌 9단이 보여준 건 우리의 미래다

최만섭 2016. 3. 12. 10:41

[시론] 이세돌 9단이 보여준 건 우리의 미래다

  • 김대식 KAIST 전기 및 전자과 교수

입력 : 2016.03.12 03:00

김대식 KAIST 전기 및 전자과 교수 사진
김대식 KAIST 전기 및 전자과 교수

결국 또 지고 말았다. 처음엔 변명이 가능했다. 기계는 인간을 잘 알지만, 이세돌 9단은 처음 기계와 대결한 것이라고, 적응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하지만 두 번째 대국은 달랐다. 이세돌 9단은 침착했고 잘 두었다. 그렇지만 역시 지고 말았다.

알파고를 만들어낸 딥마인드사는 이미 2015년 2월 아타리 비디오 게임 중 하나인 '벽돌 깨기'를 기계 학습으로 풀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 바 있다. 그리고 불과 1년 후 딥마인드는 프로기사 수준의 바둑 프로그램 알파고를 선보였다. 놀랄 만한 사실이었다. 하지만 첫 충격은 바로 안심으로 변했다. 알파고가 무너뜨린 유럽 챔피언 판후이는 우리나라 프로기사와 비교하기에는 너무나도 약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판후이에게 이긴 알파고 역시 그다지 강해 보이지 않았다. 판후이보다 조금 더 뛰어나니, 아무리 빨리 진화한다 해도 이번 대국의 승리자는 당연히 이세돌이라는 예측이었다.

하지만 우리의 예측은 빗나갔다. 알파고는 단순히 판후이보다 조금 더 뛰어났던 것이 아니다. 1국에서의 이세돌은 평상시 그의 수준에 못 미쳤지만, 2국에서의 이세돌은 우리가 아는 이세돌이었다. 침착하고 창의적으로 잘 둔 판이었다. 그러나 알파고는 두 번 모두 승리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놀라운, 아니 조금 섬뜩한 결론을 내릴 수 있다. 바로 알파고의 진정한 실력은 아직 아무도 모른다는 사실이다. 알파고는 매번 상대방을 겨우 이길 만큼만 잘한다. 약한 판후이보다 조금 더 잘했고, 약한 이세돌보다 조금 더 잘했으며, 드디어 강해진 이세돌보다도 역시 조금 더 잘했다. 마치 세계에서 가장 빠른 우사인 볼트가 초등학생과의 달리기에선 초등학생보다 조금 더 빨리 달리고, 프로 육상 선수와의 레이스에서는 상대방 선수보다 조금 더 빠르게 달리듯 할 것이다.

인간은 감정의 동물이다. 우리에게 승리는 쾌감이고 패배는 굴욕이다. 하지만 자아가 없는 알파고는 승리도, 패배도 느낄 수 없다. 이기도록 프로그램되어 있기에 그냥 가장 효율적으로, 딱 이길 만큼만 잘하면 된다. 더 큰 차이의 승리는 낭비다. "통쾌하게 크게 이긴다"라는 짜릿함은 기계에겐 무의미하다. 알파고의 실질적 개발을 담당한 딥마인드의 데이비드 실버 박사조차도 이번 대결의 승부를 50 대 50으로 예측했었다. 어쩌면 알파고의 진정한 실력은 '그의 아버지'조차 정확히 파악하지 못할 수도 있다.

알파고의 놀라운 실력에 당황하는 이세돌 9단의 얼굴에서 나는 우리 모두의 미래를 봤다. 머지않은 미래에 변호사들은 '변호사 알파고'를 경험할 것이고, '기자 알파고'는 수많은 기자를 당황하게 할 것이다. 그리고 물론 나 역시 언젠간 '교수 알파고'와 경쟁해야 할 것이다.

이제 판도라의 상자는 열렸다. 딥마인드의 다음 프로젝트는 헬스케어이고, 실리 콘밸리 기업들은 딥러닝 인공지능 기술을 기반으로 자동차, 금융, 제조, 물류 산업에 뛰어들고 있다. 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인공지능 중심의 4차 산업혁명은 시작됐다. 만반의 준비가 필요하다. 인공지능 시대에 무엇이 변하는가를 묻지 말고, 인공지능 시대에도 변치 않는 것을 생각하는 게 더 빠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지금 이 세상이 대부분 바뀔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