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파고, 이세돌에 승리-2016년3월9일

윤평중 칼럼] 알파고가 할 수 없는 것들 윤평중 한신대 교수·정치철학

최만섭 2016. 3. 11. 22:03

윤평중 칼럼] 알파고가 할 수 없는 것들

  • 윤평중 한신대 교수·정치철학-입력 : 2016.03.11 11:01

윤평중 한신대 교수·정치철학
충격적인 사태다. 전 세계가 주시한 세기의 대결, 즉 인간과 기계의 바둑 5번기 대결 1, 2차전이 기계의 파죽지세(破竹之勢)다. 현존하는 최고의 바둑기사 이세돌 9단과 구글의 딥 마인드가 만든 바둑용 인공지능(AI) 알파고가 겨뤄 이세돌이 완패했다. 이세돌이 누구던가. 12살에 입단, 1000번 이상 공식 대국에서 승리했고 세계 대회에서 18번 우승한 바둑 천재다. 명실상부한 세계 바둑계 일인자다. 3번의 대국이 남아 있지만 지금의 결과만으로도 경이로운 일이다.

19줄×19줄 바둑판에 두 대국자가 둘 수 있는 경우의 수는 무한대다. 그 숫자가 전 우주에 존재하는 원자 수보다 많다. 바둑 팬들이 바둑을 우주와 인생살이의 축소판이라고 칭찬하는 까닭이다. 경우의 수가 훨씬 적은 체스에서 IBM의 수퍼컴퓨터 딥 블루가 세계 챔피언 카스바로프를 이긴 게 1997년임에도 이세돌·알파고 대결 전까지 최고 수준의 바둑은 인공지능에는 넘기 어려운 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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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파고에게 2연패를 당한 이세돌 9단이 10일 오후 서울 종로구 포시즌스 호텔에서 '구글 딥마인드 챌린지 매치'를 마친 뒤 경기 소감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알파고 2연승 했지만 바둑 두는
근본 이유 이해하지 못해

인공지능 발전해도
인간만의 영역 분명히 있어

서로 보완하면
멋진 신세계 가능할 것


알파고가 중요한 건 그 함의가 총체적이기 때문이다. 일자리를 포함한 우리네 삶 전체와 인류의 미래가 함께 걸려 있다. 인공지능은 데이터를 연산(演算)해 추론하고 문제를 푸는 '약한 인공지능' 수준에서 궁극적으로는 스스로 공부하고 판단하는 '강한 인공지능'으로 발전해 갈 것으로 예측된다. 옥스퍼드 대학 연구팀은 인간 수준의 강한 인공지능이 2040년은 되어야 출현할 것으로 보았는데 알파고는 그걸 10년 이상 앞당겼다. 힘들거나 복잡하거나 위험한 일을 모조리 기계가 대신하는 시대가 가까이 왔다. 무인 비행기·자율주행 자동차·전투로봇 등의 약한 인공지능은 이미 운행하고 있거나 실험 중이다. 인공지능에 의한 원격 진료나 금융 투자 등도 곧 현실화한다.

결국 인간이 해오던 전통적 직업 대부분을 기계가 대체하는 흐름은 불가역적이다. 이는 세계경제를 이끄는 경영인·학자 등 수천 명의 전문가가 모여 지구적 현안을 다루는 2016년 다보스 포럼의 진단이다. 포럼 핵심 의제인 '4차 산업혁명에 대처하기'가 정확히 이 지점을 짚고 있다. 3차 산업혁명인 정보기술 혁명이 많은 중간관리직 일자리를 없앤 데 이어 인터넷과 인공지능이 연결된 4차 산업혁명의 초(超)연결 지능 시대에는 수많은 전문직이 사라지게 된다. 옥스퍼드대 연구에선 미국 일자리의 47%가 10년 내 없어질 것이라고 본다. 실업이 폭증하고 양극화가 심화할 4차 산업혁명의 여파가 한국 사회를 강타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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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 포시즌호텔에서 열린 세기의 대결 '이세돌-구글 알파고 대국' 2국에서 이세돌 9단과 알파고를 대신한 구글 딥마인드 리서치 사이언티스트 아자 황 박사가 바둑돌을 놓고 있다. /구글 제공
하지만 이번 '알파고 사건'의 최대 도전은 강한 인공지능이 궁극적으로 인류 자체를 위협할 수 있다는 데서 온다. 자의식과 자기복제 능력을 갖게 된 인공지능이 인류의 보조자를 넘어 경쟁자로 떠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인간의 일방적 5연승을 자신하던 이세돌 9단과 프로 기사들은 최고수처럼 수를 읽고 판세를 짜는 알파고의 능력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인공지능이 인간을 노예처럼 부리거나 파괴하는 공상과학영화가 현실이 되는 시나리오가 성큼 눈앞에 다가온 것이다. 따라서 자의식을 지닌 최초의 강한 인공지능이 인간을 적대하지 않도록 하는 게 인류에게 절체절명의 과제가 되었다.

알파고는 삶의 지도를 송두리째 바꾸는 시발점이다. 그러나 미래는 우리가 만들어가기 마련이다. 역대 산업혁명의 도전에 성공적으로 응전해 온 인류의 역사가 그걸 증명한다. 인간과 인공지능이 공존함으로써 인간의 잠재력을 극대화하는 '멋진 신세계'는 한낱 공상(空想)이 아니다. '알파고가 할 수 없는 것들'을 상기해 보면 더욱 그렇다. 충격적인 1차전 패배에 놀라면서도 '아름답고 좋은 경기인 바둑을 즐겁게 두었'고 한 이세돌 9단의 마음을 알파고는 이해할 길이 없다. 아름다움과 선함과 기쁨을 알파고는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프로 기사가 매해 1000판씩 40년을 둔다 해도 평생 4만 번에 불과한 데 비해 한 달에 100만 개의 기보(棋譜)를 학습하는 알파고지만 본질적으로 할 수 없는 게 있다. 인공지능과 인간을 가르는 결정적 지점이다. 즉 1202개의 뇌(CPU·중앙처리장치)로 세계 바둑계 최고수가 되었건만 알파고는 자신이 바둑을 두는 이유 자체를 모른다. 그렇다. 인공지능은 인간을 훨씬 능가하는 지능을 갖게 되겠지만 그런 자신이 살아가는 존재 이유는 결코 알지 못한다. 삶을 진정으로 빛나게 하는 사랑과 우정, 연민과 공감을 인공지능은 실행할 수 없다. 인간이라면 모두 알고 있는 그 삶의 의미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