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돌 9단의 놀라운 1승… 인간의 저력·위대함 증명 알파고를 만든 원동력도 굴하지 않는 인간의 도전정신 최종 대국서 누가 이기든 인류의 승리로 기록될 것
인류를 한마음으로 묶어 일희일비하게 만든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바둑 대결에서 마침내 이세돌 9단이 첫 승을 따냈다. 3번의 패배로 승부는 갈렸지만 어제의 1승이라는 극적인 반전으로 이세돌은 인간의 저력과 위대함을 감동적으로 증명했다.
처음 1국에서 이 9단이 패하자 '컴퓨터가 인간을 꺾은 역사적 순간'이라며 충격에 빠졌다가 패배가 계속되자 이 대국은 처음부터 불공정 게임이었고 이 9단의 패배가 필연적이었다는 결과론적 분석도 제기됐다. 한 달 전 이 9단의 패배를 예측한 한 변호사는 알파고가 광케이블로 인터넷에 연결돼 무제한의 훈수꾼과 함께 바둑을 두는 것이라 애초에 경쟁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한국기원도 이번 대결이 정보의 불균형 때문에 공정하지 않다고 항의했다.
하지만 패배를 패배로 인정하는 것이 승부사의 자세다. 이세돌은 변명하지 않았다. 3국에서 진 뒤 "많은 기대에도 무력한 모습을 보여 죄송하다"며 깨끗하게 패배를 인정했다. 그러면서도 이것은 이세돌의 패배이지 인간의 패배는 아니라고 덧붙였다. 인간의 패배가 아니라는 그의 말은, 패배했지만 떨치고 일어서서 재도전해 이기겠다는 다짐이었고 결국 스스로 증명했다.
어제의 대국을 보면서 상식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인간의 정신력에 감동하지 않은 사람이 있었을까. 그는 막판 초읽기에 몰린 벼랑 끝 상황을 50분이나 견디며 혼신의 힘을 다해 불가능한 승리를 거뒀다. 우리는 알파고의 3연승을 지켜보면서 전대미문의 기발한 착상과 엄청난 계산 실력에 전율을 금할 수 없었다. 이제 바둑에서 인공지능은 인간의 수준을 넘어섰고, 더 이상 인간과 인공지능의 바둑 대결이 무의미한 것 아닌가 생각했을 정도였다.
사실 바둑은 신체 활동에 기반한 스포츠고 강한 체력이 필요하다.대한민국 법률상 '스포츠'는 건강한 신체를 기르고 건전한 정신을 함양하며 질 높은 삶을 위하여 자발적으로 행하는 신체 활동을 기반으로 하는 사회문화적 행태다(스포츠산업진흥법 제2조). '큰 근육 활동'을 수반하지 않기에 바둑을 체육으로 볼 수 없다는 주장도 있었지만 정신 활동은 뇌에서 엄청난 에너지를 사용한다.
바둑이 강한 체력과 정신력을 요구하는 '스포츠'라면 알파고와 인간 이세돌의 대결은 처음부터 이상했다. 누가 영화 '리얼스틸'의 강철 로봇 '아톰'과 권투를 하겠는가? 인간이기에 피할 수 없는 약점도 많다. 사람이기에 잠자야 하고 화장실도 가야 한다. 돌봐야 할 가족, 술 먹자는 친구도 있다. 질 게 뻔한 승부를 이어가야 하는 스트레스는 상상조차 하기 어렵다. 감정적 동요나 두려움 없이, 1202개의 CPU로 구축돼 과학자 100여명의 돌봄을 받으며 24시간 바둑만 공부하는 알파고와는 입장이 다르다.
이런 상황에서 이세돌은 이겼다. 연이은 패배에도 좌절하지 않고 오히려 패배를 통해 배우며 철옹성 같던 알파고의 약점을 분석해서 이룬 성과라는 점에서 그것은 '인간의 승리'였다.
미국의 과학소설가 아이작 아시모프가 제안한 '로봇공학의 삼원칙'은 '로봇은 인간을 해칠 수 없고, 인간의 명령에 복종하며, 스스로를 보호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중에 3원칙보다 앞선 0번째 법칙이 추가됐는데 '로봇은 인류에게 해를 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알파고는 이번 대국에서 이 원칙을 지켰을까? 그랬다면 이 9단과 우리는 이번 대국으로 소중한 것을 얻었을 것이다. 세계 최고의 기사들이 알파고와의 대국을 꺼리던 상황에서 과감하게 맞붙은 이 9단의 용기는 놀랍다. 불굴의 도전 정신이야말
로 인류의 소중한 덕목이고 오늘날 알파고를 만든 원동력이다.
이제 마지막 대국이 남았다. 지친 이 9단에게는 힘든 승부가 될 것이다. 하지만 구글 회장 에릭 슈밋의 말대로 누가 이기든 인류의 승리다. 오늘도 알파고는 계속 바둑을 연구하겠지만 이 9단은 가족과 함께 편히 쉬고 위로받으면서 인간의 불리함을 만끽하기 바란다. 그런 뒤 내일 최선을 다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