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태진의 길 위에서] 꽃보다 장맛인 순창의 봄!
입력 : 2016.03.22 03:00
전북 순창 '전통 고추장 민속마을'… 내려가 醬 담그면 반 년후 보내줘
3년 지난 천일염, 물로 녹여내려 메주 독에 부으니 숨쉬기 시작
마음까지 녹이는 편안한 장맛에 올봄은 꽃보다 醬으로 열었네
![오태진 수석논설위원](http://image.chosun.com/sitedata/image/201603/21/2016032102973_0.jpg)
나직한 돌담 안에 홍매가 피어 내다본다. 작고 야무진 다섯 장 홑꽃잎을 막 열었다. 대문은 절 일주문처럼 높다랗다. '명인 전통 고추장'이라는 붓글씨 편액을 운치 있게 달았다. 한옥 마당 가득 백 스무 개쯤 장독이 들어찼다.
*
항아리들은 금줄을 둘렀다. 새끼에 숯과 고추, 솔가지를 끼워놓았다. 아기 낳은 집 대문에 내걸던 그 금줄이다. 삿된 것과 궂은 이는 가까이 오지 말라고 한다. 장독 배엔 창호지로 버선 본을 떠 코가 위로 가게 붙였다. 옛날 버선발로 벌레를 죽이곤 했기에 벌레들이 피한다고 한다. 거꾸로 붙인 것은 잡귀며 벌레가 기어오르다 버선코에 막혀 갇히라는 뜻이다.
항아리들은 금줄을 둘렀다. 새끼에 숯과 고추, 솔가지를 끼워놓았다. 아기 낳은 집 대문에 내걸던 그 금줄이다. 삿된 것과 궂은 이는 가까이 오지 말라고 한다. 장독 배엔 창호지로 버선 본을 떠 코가 위로 가게 붙였다. 옛날 버선발로 벌레를 죽이곤 했기에 벌레들이 피한다고 한다. 거꾸로 붙인 것은 잡귀며 벌레가 기어오르다 버선코에 막혀 갇히라는 뜻이다.
[형용사] 보기에 하는 행동이 개인적인 성질을 띠고 있다.
[형용사] 보기에 하는 행동이 바르지 못하고 나쁘다.
궂다2[발음 : 굳따]
활용 : 궂어, 궂으니-형용사
활용 : 궂어, 궂으니-형용사
2번째
- 1 . 비나 눈이 내려 날씨가 나쁘다.
- 2 . 언짢고 나쁘다.
- 좋으니 궂으니 해도 궂은일에는 부모 형제고 좋은 일에는 남이라 안 해요? 출처 : 박경리, 토지
- 궂은 일
- 그는 삼촌이 시키는 일이라면 아무리 궂은 일이라도 가리지 않고 했다.
- 그러고 보면 시니 날이니 달이니 해니 하여서, 게다가 육갑이니 음양 오행이니 붙여 가지고 좋고 궂은 것을 판단한다는 것은 모두 혹세무민하는 미신에 지나지 않은 것이요. 출처 : 한용운, 흑풍
- 내가 없으면 집안 꼴이 말이 아니니 이년의 팔자도 궂기는 어지간히 궂은 팔자다. 출처 : 한수산, 유민
- 내가 진 도독을 대해 보니 사람됨이 거만하고 성정이 사나우며 심술이 궂어, 자기 나라에서도 인화(人和)가 없다 하는 사람이라…. 출처 : 박종화, 임진왜란
- 억센 체격과 소탈한 성격 때문에 그는 아무리 궂은 일이라도 겁내는 일이 별로 없었다. 출처 : 홍성원, 육이오
- 운양 대감은 쓰다 궂다 내색함이 없이 담배만 묵묵히 빨아 대더니 나직이 말했다. 출처 : 현기영, 변방에 우짖는 새
- 팀의 막내인 그는 온갖 궂은 심부름을 도맡아 했다.
- 1 . 비나 눈이 내려 날씨가 나쁘다.
- 2 . 언짢고 나쁘다.
- 좋으니 궂으니 해도 궂은일에는 부모 형제고 좋은 일에는 남이라 안 해요? 출처 : 박경리, 토지
- 궂은 일
- 그는 삼촌이 시키는 일이라면 아무리 궂은 일이라도 가리지 않고 했다.
- 그러고 보면 시니 날이니 달이니 해니 하여서, 게다가 육갑이니 음양 오행이니 붙여 가지고 좋고 궂은 것을 판단한다는 것은 모두 혹세무민하는 미신에 지나지 않은 것이요. 출처 : 한용운, 흑풍
- 내가 없으면 집안 꼴이 말이 아니니 이년의 팔자도 궂기는 어지간히 궂은 팔자다. 출처 : 한수산, 유민
- 내가 진 도독을 대해 보니 사람됨이 거만하고 성정이 사나우며 심술이 궂어, 자기 나라에서도 인화(人和)가 없다 하는 사람이라…. 출처 : 박종화, 임진왜란
- 억센 체격과 소탈한 성격 때문에 그는 아무리 궂은 일이라도 겁내는 일이 별로 없었다. 출처 : 홍성원, 육이오
- 운양 대감은 쓰다 궂다 내색함이 없이 담배만 묵묵히 빨아 대더니 나직이 말했다. 출처 : 현기영, 변방에 우짖는 새
- 팀의 막내인 그는 온갖 궂은 심부름을 도맡아 했다.
어원 : 궂다<석보상절(1447)>
지난주 볕 좋은 날 전북 순창 '전통 고추장 민속마을'에 갔다. 대대로 장맛 이어온 마흔 몇 가구가 모여 산다. 한 달 전 조선일보에 이 마을 기사가 짤막하게 실렸다. 3월 5일 도시 사람들이 와 장을 담그면 년을 익혀 보내준다고 했다. 고추장 5㎏, 된장 6㎏, 간장 3.6L가 20만원이다. 아내 말로는 세 식구가 한 해 먹고도 남을 양이라고 한다. 값도 싸단다. 제대로 된 된장·고추장에 굶주려 있다가 눈이 번쩍 뜨였다.
기사에 실린 전화번호는 군청 것이었다. 전화를 건 아내에게 직원이 배정해준 집이 '명인 고추장'이다. 서둘러 예약했지만 정작 그날 가지 못했다. 이른 봄비치고는 호된 폭우가 쏟아져서다. 따로 편할 때 오라고 해서 다시 날을 잡은 게 지난주다.
'명인 고추장'은 고부(姑婦)가 순창군이 인정한 전통 장류 기능인이다. 한적한 마당에서 며느리 박현순씨가 부부를 맞았다. 여든세 살 조경자씨는 증손자를 등에 업어 어르며 지켜봤다. 읍내에 장 가게를 처음 연 게 1980년대 초였다고 한다. 1997년 군청 서쪽 3㎞ 백산리에 순창군이 고추장 마을을 만들자 옮겨 왔다.
![[오태진의 길 위에서] 꽃보다 장맛인 순창의 봄!](http://image.chosun.com/sitedata/image/201603/21/2016032102973_1.jpg)
할머니는 한 해 내내 손 멈출 새 없는 게 장(醬) 일이라고 했다. 메주 빚어 띄우고 장독에 담근 뒤론 아이 키우듯 해야 한다. 날 좋으면 뚜껑 열어 햇빛과 바람 쏘인다. 날 궂으면 물과 벌레가 생길까 속 끓인다. 간은 맞는지, 군내는 안 나는지 틈틈이 들여다본다. 가을 된장, 초겨울 고추장 빚으면 다시 메주 철이다.
고추장 마을은 순창에서 나는 콩과 고추만 쓰게 돼 있다. 개별 거래를 못 하고 마을이 한꺼번에 사들인다니 더 미덥다. 무엇보다 눈으로 보고 손으로 담그고 맛을 선택할 수 있어 좋다.
진열된 된장·고추장부터 찍어 맛봤다. 된장은 구수하게 맛 깊고 고추장은 달지 않고 칼칼하다. 됐다! 부부가 마주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며느님이 메주 대여섯 덩이를 꺼내 와 아내와 함께 일을 시작했다. 겨우내 잘 띄워 하얀 곰팡이가 피었다. 쿰쿰한 군내가 난다.
커다란 버킷에 체 걸쳐놓고 소금을 부었다. 3년 넘게 둔 천일염이라고 한다. 간수 잘 뺀 소금을 쥐면 달라붙지 않고 보송보송 새는데 딱 그렇다. 소금에 호스로 물을 뿌려 녹여 내린다. 소금물에 띄운 달걀이 500원 동전만 하게 드러나게 해 소금기를 맞춘다. 얼마나 깨끗한지 체에도 소금물에도 티끌 하나 없다.
메주에 붙은 먼지며 지푸라기를 솔로 닦는다. 메주를 장독에 넣고 소금물을 붓는다. 숯과 고추를 띄워 잡균과 잡맛을 잡는다. 뚜껑을 닫았다가 뒤늦게 대추를 넣으려고 열었다. 잠깐 사이 메주가 공기방울을 피워올리며 숨을 쉰다. 소금물도 그새 연노랑 빛을 띠었다. 항아리에 들어가자마자 생명을 얻었다.
장독에 아내 이름 써 붙이고 뒷정리 마치기까지 한 시간 조금 더 걸렸다. 생각보다 싱겁게 끝났다. 이제부턴 고부(姑婦)가 돌보며 자연이 익혀주는 일만 남았다. 5월 송홧가루가 마을 덮을 때 뚜껑 열어두면 맛이 한층 더 들 것이다. 원하면 9월에 메주 건져 치대 된장 빚을 때 와 함께해도 좋다고 한다. 아내는 신이 나서 11월 고추장 담글 때도 오겠다고 했다.
고추장 마을은 순창에서 나는 콩과 고추만 쓰게 돼 있다. 개별 거래를 못 하고 마을이 한꺼번에 사들인다니 더 미덥다. 무엇보다 눈으로 보고 손으로 담그고 맛을 선택할 수 있어 좋다.
진열된 된장·고추장부터 찍어 맛봤다. 된장은 구수하게 맛 깊고 고추장은 달지 않고 칼칼하다. 됐다! 부부가 마주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며느님이 메주 대여섯 덩이를 꺼내 와 아내와 함께 일을 시작했다. 겨우내 잘 띄워 하얀 곰팡이가 피었다. 쿰쿰한 군내가 난다.
커다란 버킷에 체 걸쳐놓고 소금을 부었다. 3년 넘게 둔 천일염이라고 한다. 간수 잘 뺀 소금을 쥐면 달라붙지 않고 보송보송 새는데 딱 그렇다. 소금에 호스로 물을 뿌려 녹여 내린다. 소금물에 띄운 달걀이 500원 동전만 하게 드러나게 해 소금기를 맞춘다. 얼마나 깨끗한지 체에도 소금물에도 티끌 하나 없다.
메주에 붙은 먼지며 지푸라기를 솔로 닦는다. 메주를 장독에 넣고 소금물을 붓는다. 숯과 고추를 띄워 잡균과 잡맛을 잡는다. 뚜껑을 닫았다가 뒤늦게 대추를 넣으려고 열었다. 잠깐 사이 메주가 공기방울을 피워올리며 숨을 쉰다. 소금물도 그새 연노랑 빛을 띠었다. 항아리에 들어가자마자 생명을 얻었다.
장독에 아내 이름 써 붙이고 뒷정리 마치기까지 한 시간 조금 더 걸렸다. 생각보다 싱겁게 끝났다. 이제부턴 고부(姑婦)가 돌보며 자연이 익혀주는 일만 남았다. 5월 송홧가루가 마을 덮을 때 뚜껑 열어두면 맛이 한층 더 들 것이다. 원하면 9월에 메주 건져 치대 된장 빚을 때 와 함께해도 좋다고 한다. 아내는 신이 나서 11월 고추장 담글 때도 오겠다고 했다.
갈수록 달고 기름진 음식이 득세하는 세상이다. 그래도 20년 넘게 고향 집 장맛이 밥상을 받쳐줬었다. 그러다 십여년 전 기력이 달려 더는 장을 못 담그겠다고 하셨다. 집 된장이 끊기면서 금단증상에 빠졌다. 어딜 가나 고추장은 달큰하고 된장은 깊은 맛 없는 날것이다. 어쩌다 '담근 된장'이 나오는 음식점을 만나면 주인에게 팔라고 사정하기도 했다.
왜 진작 순창을 생각하지 못했을까. 나서면서
'시-시조·신문.카페 등' 카테고리의 다른 글
[윤대현의 마음읽기] 詩的 소통이 뜬다 (0) | 2016.03.28 |
---|---|
부부-함민복 (0) | 2016.03.28 |
[ESSAY] 알츠하이머를 앓는 아버지 덕분에… (0) | 2016.03.23 |
[ESSAY] 섬진강의 봄 (0) | 2016.03.16 |
내 안에서 크는 산 (0) | 2016.03.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