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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대현의 마음읽기] 詩的 소통이 뜬다

최만섭 2016. 3. 28. 10:56

[윤대현의 마음읽기] 詩的 소통이 뜬다

  • 윤대현 서울대병원 강남센터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입력 : 2016.03.28 03:00

은유를 이용한 詩的 소통이 논리적 화법보다 잘 통하기도
女心 사로잡는 카사노바도 은유적 표현의 달인
뇌 안의 '마음 컴퓨터' 활용해 논리를 넘어 마음을 움직여

윤대현 서울대병원 강남센터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윤대현 서울대병원 강남센터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쏟아지는 논리적인 소통과 설득에 우리 마음이 지쳐서일까, 덕담에도 이유 모를 저항감이 생길 때가 있다, "힐링하세요"란 권유를 받은 내 마음이 "너나 하세요"라고 답하니 말이다. 논리적인 소통이 있다면 시적(詩的) 소통도 있다. 때론 우리는 긴 조언보다 짧은 시에서 뭉클한 감동과 위로를 받는다. 실제로 시적 소통, 즉 메타포(metaphor) 커뮤니케이션이 심리 치료에 활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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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포-[ metaphor음성듣기 ]

은유. 어원적으로는 전이()의 뜻이며 ‘숨겨서 비유하는 수사법이라는 뜻이다. ‘A는 B와 같다’는 식의 비유가 아닌, 오히려 ‘~같다’는 비교를 직접적으로 명시하지 않는 ‘A는 B다’는 식의 어법을 말한다. 어떤 언어표상을 그 본래의 의미와는 별도로, 전화()된 의미로 사용함으로써 본래 표현되어야 할 내용을 간접적으로 명시하는 것이다. 즉 ‘인생은 여행이다’ 등과 같은 표현이 그것이다. 이러한 표현은 이질적인 것의 동일화가 느닷없이 이루어지는 까닭에 매우 강렬한 비유 효과를 지닌다. 은유가 성립되기 위해서는 우선 비교되는 두 대상이 서로 다른 범주에 속해 있지 않으면 안되고, 그 비교에 어느 정도 연상적인 타당성과 설득력, 그리고 의외성의 긴장감이 있어야 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메타포 [metaphor] (세계미술용어사전, 1999., 월간미술)


메타포, 즉 은유는 원관념의 속성을 보조관념을 이용하여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이런 시적 소통이 논리적 소통보다 때론 더 쉽게 내 생각을 상대방 마음에 전달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인생이 무엇인지 질문을 받았을 때 대답하기가 쉽지 않다. 인생이란 단어가 추상적이어서 어렵기 때문이다. 논리적으로 풀면 길어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인생은 여행이다'라고 인생을 원관념, 여행을 보조관념으로 표현하게 되면 여행이란 한 단어에 인생의 윤곽이 그려지는 느낌을 받는다. 여행이 인생이란 단어보다 더 손에 잡히고 눈에 잘 그려지기 때문이다. 시작과 끝이 있고, 수많은 필연과 우연한 만남이 존재하는, 그런 여행의 특징이 인생에도 존재함을 느끼게 된다.

은유를 사용할 수 있는 것은 뇌 안에 논리 언어로 작동하는 논리 컴퓨터 외에 상징체계를 쓰는 마음 컴퓨터도 함께 있기 때문이다. 논리 컴퓨터는 우리 통제하에 있고 내용도 잘 들여다볼 수 있지만 마음 컴퓨터란 녀석은 잘 보이지도 않고 말도 잘 듣지 않는다.음이 불안할 때 불안하지 말라 명령하면 불안감이 더 커지기 일쑤다. 하지 말라는 명령 자체에 마음이 공격받는 느낌을 받아 더 불안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마음 컴퓨터가 자신을 드러낼 때가 있는데 꿈이다. 자신의 꿈이 술술 해석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내 머리 안에서 만들어낸 영화인데 내가 이해가 안 되니 사실은 황당한 일이다. 어떤 예술 영화보다도 상징으로 가득 찬 어려운 영화를 만드는 컴퓨터를 내가 갖고 있는 것이다. 잘난 알파고도, 딥러닝을 통해 직관과 유사한 결정 능력을 보이고 있지만 꿈을 꾸지는 못한다. 불가능할 것 같지만, 만약에 꿈을 꾸는 인공지능이 나온다면 그건 정말 무서운 이야기다.

과거 연애편지로 사랑을 고백할 때 사랑 시 한 편을 먼저 인용하고 다음에 자신의 마음을 담는 경우가 많았다. 시적 소통이 프러포즈의 성공 확률을 올린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알았던 것 아닐까. 고전 영화에 나오는 여심을 사로잡는 카사노바 캐릭터는 대부분 은유적 표현의 달인이다. '당신의 밝은 미소 뒤에 숨어 있는 슬픔을 내가 위로해 줄게요'가 한 예다. 요즘 먹힐 멘트는 아니지만 과거엔 효과가 있었다는 것인데 사실 논리적으로 생각하면 마음에 슬픔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은유적 표현은 논리를 넘어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

일주일에 하루, 가족과 함께 시 읽기를 권해드린다. 마음이 지쳤을 때 힘을 내라고 논리적으로 명령하는 것보다 시 한 편을 읽는 것이 더 촉촉하게 내 마음을 충전시킬 수 있다. 가족 소통을 원활하게 하는 데에도 좋다. 좋은 마음을 갖고 이야기를 하려고 해도 논리적 소통을 나누다 보면 듣는 사람 입장에선 결국 잔소리처럼 되기 십상이다. 온 가족이 시 한 편을 읽으며 그 느낌을 나누는 것을 꾸준히 하다 보면 자녀에게 은 유적 소통 능력을 키워줄 수 있고 가족 간 관계도 좋아진다.

최근 함민복 시인의 시 '부부'를 읽다가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긴 상이 있다/ 한 아름에 잡히지 않아 같이 들어야 한다/…/ 다 온 것 같다고/ 먼저 탕 하고 상을 내려놓아서도 안 된다/ 걸음의 속도도 맞추어야 한다.' 시 한 줄 읽었을 뿐인데 갑자기 아내의 존재가 더 소중하게 느껴졌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