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차 산업혁명 정점, 低성장 지속"… "기술 혁신으로 돌파 가능"
[경제교실] 글로벌 경제학계 저성장 논쟁
3차 혁명, 2000년대초 효과 끝나 - 금융위기 없었어도 저성장 돌입
기술혁신 속도, 과거만큼 안 빨라 노동시장·교육도 경제성장 방해
저성장은 필연 아니다 - 로봇·인공지능·신소재·의료 등
새로운 혁신 분야 여전히 많아… 대규모 인프라 건설도 대체 처방
- ▲ 성태윤·연세대 경제학부 교수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전(全) 세계적으로 경기(景氣) 불황이 지속되면서 글로벌 경제학계에선 '고(高)성장 시대가 저물고 저(低)성장이 필연으로 자리 잡았는가'에 대한 갑론을박이 한창입니다.
최근에는 미국 노스웨스턴대 경제학과 교수로 함께 재직하고 있는 로버트 고든(Gordon)과 조엘 모키르(Mokyr) 두 석학(碩學) 간 논쟁이 뜨겁습니다.
◇고든 "3차 산업혁명의 종언과 함께 저성장에 돌입했다"
고든 교수는 '저성장 필연론'의 대표 주자입니다. 그는 "주목할 만한 경제성장이 이뤄진 시기는 1750년에서 2000년대 초까지 250년 정도"라며 "이때가 인류사에서 예외적인 시기"라고 말합니다. 경제성장은 20세기 중반 정점(頂點)을 찍었고 이제는 내려가는 길밖에 없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250년간의 이례적 경제성장은 어떻게 가능했을까요. 고든 교수는 기술혁신에 따른 세 차례의 산업혁명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제1차 산업혁명은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 초반까지로, 증기기관과 철도산업이 주도했던 시기입니다. 경제성장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던 제2차 산업혁명은 19세기 후반 내연기관, 전기, 화학, 정유, 통신 등의 혁신에 기인합니다. 제3차 산업혁명은 컴퓨터, 인터넷, 휴대전화에 기초한 혁신이 일어난 1960년대부터 최근까지입니다. 고든 교수는 "제3차 산업혁명은 2000년대 초반 효과가 끝났다"며 "금융 위기가 없었더라도 세계경제는 저성장에 돌입할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그의 주장은 1987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로버트 솔로(Solow) MIT 교수와 같은 맥락입니다. 솔로는 1956년 성장의 기초이론을 제시했습니다. 공장시설을 갖추고 인력을 투입해 경제를 성장시킬 수 있지만 이것이 계속되면 자본의 수익률이 떨어지며 새로운 투자를 이끌어 낼 수 없어 경제성장은 결국 한계에 부딪힌다는 이론입니다. 그런데 솔로는 기술혁신이 있으면 새로운 투자·고용이 일어난다는 돌파구를 제시했습니다.
◇모키르 "혁신 영역은 고갈되지 않았다"
모키르 교수는 "저성장은 필연이 아니다"란 입장입니다. 과거 과학 발전과 기술 변화가 경제성장의 동력으로 작용했듯, 미래에도 그럴 것이란 주장입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기압(氣壓)에 대한 과학적 해석이 증기기관이라는 공학 발전을 가능케 했고, 현미경 기술이 세균 이론과 의학적 진보로 이어져 새로운 투자와 고용을 만들어냈다는 겁니다. 모키르 교수는 "현재도 기술 발전으로 삶의 질을 개선하며 경제성장을 만들어 낼 혁신의 영역은 고갈되지 않았다"며 "로봇, 인공지능, 신소재·물질, 자료와 통계 처리, 생명 시스템과 의료 등이 새로운 혁신 분야"라고 예시하고 있습니다.
모키르 교수의 주장은 엘하난 헬프만(Helpman) 하버드대 교수 등이 제시한 '일반목적기술(General Purpose Technologies)' 이론과 유사합니다. 헬프만 교수 등은 "경제성장에 중요한 혁신은 증기기관, 내연기관, 전기, 화학, 컴퓨터, 바이오 및 나노테크놀로지처럼 노동 시간과 삶의 형태를 획기적으로 변환시키면서 일반적으로 사용될 수 있는 기술"이라며 "이를 통해 경제 시스템을 전환시키는 과정에서 새로운 투자와 고용이 이루어지며 성장을 견인했다"고 했습니다.
모키르 교수의 주장에 대해 고든 교수는 재반론을 제기합니다. 과거처럼 기술혁신 속도를 빠르게 유지하기 어려우며, 만약 새로운 기술혁신이 가능해도 노동시장, 교육, 불평등, 가계 및 정부 부채 등으로 과거 같은 경제성장은 힘들다는 겁니다. 고든 교수는 "특히 소득 분포 상위 1%를 제외한 대다수 계층에서 소득과 소비 부진 문제가 발생하면서 저성장에서 벗어나기 어렵다"고 반박합니다.
고든 교수의 비관론은 사회적 변화상에 대한 고찰에서 나온 겁니다.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가 계속되고, 청년과 중·장년층은 제대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는 현실 때문에 지속적인 성장이 어렵다는 겁니다. 또 대학 졸업자 상당수가 전공과 상관없는 일자리로 내몰리고, 많은 숫자가 대학 학자금대출로 어려움을 겪는 등 노동 시장과 교육 시스템의 문제점이 경제성장을 저해한다는 주장입니다.
◇서머스 "구조적 장기 침체 도래…대규모 인프라 건설로 타개해야"
고든이 지적한 불평등과 부채 문제는 기술혁신의 결과에 대한 수요와 관련해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불평등이 심하거나 대중이 부채에 눌린 경제에서는 새 기술이 나와도 이자 부담과 가처분소득 부족으로 기술혁신을 성장으로 연결하는 안정적인 소비 수요를 만들어내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신제품이 나와도 이를 구매해 줄 소득과 수요가 부족하다면 기술혁신의 동력도 약화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는 래리 서머스(Summers) 하버드대 교수(전 미국 재무장관)의 '구조적 장기침체(Secular Stagnation)' 이론과 맥락(脈絡)이 닿아 있습니다.
'구조적 장기 침체' 이론의 핵심은 '소득이 늘어날수록 저축이 증가해 전체 소득 대비 소비·투자 비중 감소로 경제가 장기적으로 침체에 들어간다'는 겁니다.
그의 이론대로라면 소득 불평등이 심한 사회일수록 전반적으로 소비가 감소해 구조적으로 침체에 들어갈 가능성은 커지게 됩니다. 이 점에서 서머스의 주장은 '21세기 자본'의 저자인 토마 피케티(Piketty) 파리경제대 교수의 문제의식과 비슷합니다.
기술혁신은 결국 새로운 제품을 만들어 소비를 증가시키고 그런 제품을 만들기 위한 투자를 늘려 '구조적 장기 침체'를 막는다고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서머스는 "현재 미국은 새로운 대규모 투자를 유도할 기술혁신이 이루어지지 않아 만성적인 수요 부족과 과잉 저축에 시달리고 있다"며 "기술혁신을 기다리고 있기보다는 대규모 인프라 건설 같은 대체 처방이 필요하다"고 강조합니다.
최근 세계 경제학계에서 벌어지는 '경제 저성장' 관련 논의는 '저성장의 저주'에서 탈출할 수 있는 처방전(處方箋)을 찾아내려는 치열한 고민의 증좌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필자가 보기에 그 해법은 끊임없는 기술혁신과 소득 불평등 해소, 부채 부담 감소입니다. 만약 기술혁신이 이뤄지기 어려운 상황이라면 수요를 창출해 낼 수 있는 대체적인 거시 정책 수단을 적극적으로 찾아 행동으로 옮겨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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