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경제포커스] '代물림' 않는 오너들

최만섭 2016. 2. 17. 09:56

[경제포커스] '代물림' 않는 오너들-입력 : 2016.02.17 03:00

송의달 산업1부장
송의달 산업1부장
국내 1위 가구 회사인 '한샘'의 창업주 조창걸(77) 명예회장은 여러모로 특이하다. 먼저 지난해 3월 자신이 보유하고 있던 시가 4600억원어치의 한샘 주식을 '한샘드뷰연구재단'이란 싱크탱크에 기부하기로 했다. '2020년까지 대한민국 3대 브랜드'라는 목표를 정해놓고 매출의 4~5%를 디자인 연구개발(R&D)에 매년 투자하는 것도 남다르다. 1994년부터는 대표이사직을 전문경영인에게 맡기고 일상적 회사 경영에는 거의 관여하지 않고 있다. 세 딸의 '한샘' 지분을 다 합해도 3% 미만으로 경영권 승계에 턱없이 부족하다. 그런데 2008년 5000억원이던 한샘의 매출은 지난해 1조7000억원대로 늘었다. 지난해에는 국내에 진출한 글로벌 가구 공룡인 스웨덴 '이케아'의 공세를 이겨내고 두 자릿수 성장을 했다.

하지만 조 명예회장처럼 소유와 경영을 분리하고 승승장구하는 경우는 우리 재계에서 매우 드물다. 맨손에서 시작해 수십조원이 넘는 글로벌 기업을 일군 일본의 창업 오너들이 약속이나 한 듯 "자식들에게 회사를 물려주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것과 대비된다. 야나이 다다시 유니클로 회장, 나가노리 시게노부 일본전산 회장 등이 그렇다.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은 아예 지난해 중반 생판 '남'인 인도인(印度人) 니케시 아로라를 후계자로 지명했다. 혼다자동차의 창업주인 혼다 소이치로는 '가족 입사 금지'라는 사내 규정을 명문화했다.

기업의 주식(株式)도 재산이다. 따라서 오너 가문의 재산 상속에 따라 경영권이 옮겨가는 것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정당한 일이다. 그런데도 일본 기업인들이 경영권 '대(代)물림'을 자제하는 것은 가문의 영화(榮華)보다 기업의 영속성과 종업원을 포함한 공동체의 번영을 더 중시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를 통해 해당 기업과 기업인에 대한 평판과 신뢰도를 높이고 피고용자들이 기업 성장에 헌신토록 하는 효과도 얻고 있다.

자본주의 역사가 우리보다 훨씬 긴 일본과 한국 현실을 동일한 잣대로 비교하는 것은 무리이다. 그러나 국내외 경제가 극도의 침체·혼돈 국면에 빠져들고 불확실성이 증폭되는 요즘일수록 재산 상속과 경영권 이전(移轉)을 구분해야 할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더욱이 오너 3~4세의 일탈·비리와 형제간 경영권 분쟁이 끊이지 않는데도 일부 대기업은 능력이 검증되지 않은 젊은이를 입사시켜 초고속 승진을 거쳐 경영을 맡기는 관행을 되풀이하고 있다. 20세기에나 유효했던 이런 방식은 반(反)기업 정서와 경제민주화론을 부추기는 주범(主犯)으로 기업 생존력까지 약화시킬 위험이 높다.

관건은 과감·신속한 결정과 책임 경영을 기조로 하는 한국식(式) 오너 경영의 장점을 살리면서 새로운 상황에 맞게 업그레이드하는 일이다. 독일 머크 그룹이나 스웨덴 발렌베리처럼 최소 5~10년 이상 다른 회사에서 근무해 경험과 실력을 쌓는 것을 자체 필수 기준으로 정하거나 여러 형제를 상대로 경쟁 등을 거쳐 한 명 정도만 경영을 맡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해볼 만하다.

두 회사는 이런 원칙을 꾸준히 실행함으로써 각각 349년, 160년째 오너 경영을 유지하고 있다. 이런 노력이 활발해질 때 '한샘'같은 성공 사례는 물론 국민적 사랑과 존경을 받는 대기업들이 줄을 이을 것이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