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태평로] 임성기의 도전과 박현주의 野性

최만섭 2016. 2. 19. 16:41

[태평로] 임성기의 도전과 박현주의 野性

입력 : 2016.02.19 03:00

조중식 산업2부장
조중식 산업2부장
최근 주요 기업들의 작년 성적표가 줄줄이 공개되고 있다. 우리 경제를 이끌어온 간판급 대기업의 성적표는 참혹할 정도다. 이익이 줄었다는 것은 걱정할 축에도 못 낀다. 조(兆) 단위 적자를 낸 기업이 한둘이 아니다. 포스코는 창사 이래 처음 적자를 냈다. 더 심각한 문제는 매출이 주는 것이다. 삼성전자·LG전자·포스코·SK이노베이션·현대중공업·GS칼텍스·두산중공업 등 매출액 상위 기업들이 모두 매출이 줄고 있다. 매출 축소는 조직 축소, 고용 축소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실제로 이 기업들에서 '비상경영'이란 명분으로 감원이 진행된 곳이 많다. 한국의 주력 산업, 주력 기업들이 동시다발적으로 후진하고 있는 초유의 일이 지금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작년 보기 드문 성과를 올린 기업이 있다. 그중에서도 한미약품과 미래에셋은 단연 큰 성취를 이룬 기업으로 꼽을 만하다.

신약 개발은 엄청난 돈이 들어가지만 성공 확률이 높지 않다. 한미약품은 그 도전에 나섰다. 아니나 다를까 수년간 적자를 봤고, "저러다간 망한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회의가 들고 두려움을 느낄 만한 상황이었지만 그것을 이겨낸 집념의 투자로 작년 한 해 무려 8조원이 넘는 신약 기술 수출 계약을 체결했다.

미래에셋증권은 작년 대우증권 인수 후보가 됐다. 작년 증권업계는 8000명을 감원할 정도로 몸집 줄이기에 바빴다. 그런데도 미래에셋은 2조4000억원을 베팅해 자기보다 덩치가 훨씬 큰 증권사 인수에 나섰다. 인수 절차를 마무리하면 압도적인 1위 증권사로 도약한다.

두 기업은 임성기, 박현주 창업자가 이끄는 기업이다. 우연일까. 아니라고 본다. 창업자는 모험과 도전을 결행한 사람이다. 상속받은 기업과 경영권을 지켜야 하는 2·3세 경영인과 DNA가 다르다. 박현주 회장이 미래에셋이 대우증권 인수 후보로 선정된 뒤 한 말이 있다. "(기업과 기업인이) 도전과 투자를 두려워하는 풍조가 퍼져 있다. 한국이 위기인 것은 야성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너무 길들여져 있다."

창업 기업이라고 뭐가 다를까 하겠지만, 각국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고 신산업을 개척해나가는 역할을 하고 있다. 미국의 구글과 아마존, 테슬라, 우버가 대표적이다. 중국에도 알리바바와 텐센트, DJI가 있다. 중국은 이미 전자상거래, 인공지능, 드론 분야에서 막강한 경쟁력을 갖고 있다. 우리 현실은 어떤가. 기존의 기업, 기존의 산업이 줄줄이 고꾸라지고 있는데, 새롭게 고개를 치켜드는 기업과 산업이 보이지 않는다.

최근 블룸버그가 조사한 세계 400대 부자를 보면 65%가 창업 기업인이었다. 일본은 5명이 모두 창업자였다. 그런데 한국은 5명 모두 상속자였다. 한국에선 창업자가 크게 성공하기 어렵다는 말이다. 전혀 새로운 시도와 도전을 하는 창업 기업이 성장하기엔 진입 장벽이 너무 높고, 발목을 잡는 규제가 많기 때문이다. 기존 업체의 이권 보호에 유리한 경제
시스템이라는 말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엊그제 "신산업의 성장을 가로막는 규제로 의심되면 일단 모두 물에 빠뜨려 놓고 꼭 살려야만 할 규제만 살리도록 하겠다"고 했다. 이 말이 빈말이 되지 않도록 철저하게 챙겨야 할 것이다. 창의성과 야성을 가진 기업인들이 활개를 치고 도전할 수 있는 환경을 빨리 만들지 않으면 경제가 결딴날 수 있다는 절박감이 있어야 한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