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 개혁

아 터지기 직전에야… 정부 마음대로 기업 운명 결정

최만섭 2015. 10. 21. 09:28

곪아 터지기 직전에야… 정부 마음대로 기업 운명 결정

  • 이진석 기자
  • 윤주헌 기자

     

  • 입력 : 2015.10.21 03:06

    [7년 미뤄온 기업 구조조정 on] [3·끝] 정부 입김 줄이자

    금융 공기업 수수방관 속 회생 가능성 있는 기업들, 쫓기듯이 워크아웃 선택
    은행들이 공동출자한 구조조정회사 주도로 전환, 정부 간섭 배제해야 성공

    동부그룹 핵심 계열사였던 동부제철은 지난 19일 제 발로 워크아웃(기업 개선 작업)에 들어갔다. 작년 10월부터 산업은행 등 채권단의 공동 관리인 자율 협약이 진행 중이었지만, 2조7000억원으로 불어난 부채를 견디지 못해 "아예 워크아웃에 넣어달라"고 채권단에 요청했기 때문이다.

    '자율 협약'은 해당 기업과 채권단이 일종의 신사협정을 맺고 구조조정과 자금 지원을 실시하는 것이고, '워크아웃'은 기업구조조정촉진법의 적용을 받는 강제적 구조조정이다. 워크아웃은 자율 협약으로 관리하는 상태보다 더 악화됐다는 뜻이나 마찬가지여서 대외 신용도 등에 치명적일 수 있다. 이런데도 자율 협약을 마다하고 워크아웃을 신청한 것은 금융 공기업인 신용보증기금과 관련이 있다.

    신용보증기금이 관여하는 일종의 페이퍼 컴퍼니들이 동부제철에 빌려준 2000억여 원은 자율 협약에서 빠져 있기 때문에 이자 감면 등에서 제외된 것이 문제였다. 워크아웃에 들어가면 신용보증기금도 채권단에 들어가게 되고, 채권단의 75%가 찬성하면 무조건 이자 감면 등 지원을 해야 한다. 동부제철 안팎에서는 "신용보증기금이 워크아웃을 통해 이자 감면을 해주도록 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워크아웃을 신청했다"는 말이 나온다. 은행 등 민간 금융회사들이 기업 회생을 위해 지원에 나서는데, 금융 공기업은 수수방관하는 상황이 동부제철을 워크아웃으로 밀어넣었다는 것이다.

    법원에 파산 신청한 기업 추이 그래프
    금융 당국은 입버릇처럼 '시장 주도의 상시적 기업 구조조정 시스템을 갖추겠다'고 말하지만, 갈 길이 멀다. 동부제철처럼 정부의 영향권에 있는 금융 공기업들이 뒷전에 서 있거나, 반대로 정부 과잉 개입의 일방통행식 구조조정이 반복되고 있다. 정부가 내년 초 이른바 '좀비(zombi·살아 있는 시체) 기업'을 대대적으로 퇴출시켜서 기업 구조조정에 속도를 내겠다고 밝혔지만, 이런 구조적 문제점부터 뜯어고쳐야 제대로 된 구조조정이 가능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금융 당국의 일방통행식 구조조정

    그동안 우리나라 기업 구조조정은 ①곪아서 터지기 일보 직전에 ②청와대 서별관 회의(비공개 경제·금융 점검 회의)에서 ③금융 당국의 일방적 결정으로 처리됐다는 공통점을 보였다. 현 정부에서도 STX그룹, 동양그룹 처리마다 판박이 같은 모습이 되풀이됐다. 한 은행 임원은 "한국의 구조조정은 당국이 '어디는 워크아웃, 어디는 법정관리' 이렇게 정해주는 것이나 다름없어 채권 은행 등이 당국의 지침만 기다리게 돼 뒷북 처리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금융 당국이 컨트롤타워 역할을 해야 하지만, 채권단 결정에 지나치게 개입하는 것도 문제다. 대우조선해양이 숨겨온 3조원대 부실 처리 방안을 예로 들 수 있다. 지난 7월 중순 청와대 서별관 회의에서 대주주인 산업은행은 "대주주인 만큼 자금 지원에 나서겠지만, 다른 은행들도 5000억원 정도는 맡아줘야 산은이 부담을 덜 수 있다"고 했지만, 금융 당국 생각은 달랐다. "산은이 최대 1조7000억원 정도 유상증자를 해서 급한 불을 끄자"는 결론을 내려놓고 있었다. 산은 관계자는 "정부는 매번 '이럴 때 산은이 역할을 하지 않으면 어떻게 하겠다는 거냐'는 말만 반복한다"면서 "산은이 조선업 분야에 진출하려고 대우조선해양 대주주가 됐느냐. 정부가 떠안겼고, 사장 인사도 좌지우지했으면서 부실은 산은에만 넘긴다"고 말했다.

    기업 구조조정 전문 회사 방식, 정부 입김 배제될까

    금융 당국도 이런 문제점을 개선하겠다는 방침이긴 하다. 현행 구조조정 체제를 개편하기 위한 밑그림을 내놓은 상태다. 금융 당국이 채권단을 지휘하는 방식이 아니라 기업 구조조정 전문 회사를 앞세운다는 것이다. 은행들이 공동 출자해 설립한 부실채권 처리 회사인 유암코(연합 자산 관리)를 확대 개편해 이 역할을 맡기기로 했다. 채권단이 갖고 있는 채권을 유암코에 넘겨서 유암코가 전권을 쥐고 기업 회생을 추진한다는 것이다. 이럴 경우 동부제철처럼 일부 채권단이 기업 회생에 뒷짐을 지는 일이 없어질 수 있다. 채권단 75%의 찬성이 있어야 하는 의사 결정 구조도 유암코 단독 결정으로 바뀌면서 신속해질 수 있다. 기대를 모으고 있지만, 일부에서는 회의적 시각도 있다. 금융연구원 기업부채연구센터 이명활 박사는 "유암코가 필요한 자금 지원을 해서 기업 회생에 성공, 새 주인에게 매각해야 구조조정에 성공했다고 할 수 있는데, 지속적으로 수익을 내서 계속 굴러갈 수 있는 모델인지 의문이 든다"고 지적했다.

    또 유암코를 활용하더라도 부실 기업의 최종적 생살여탈권을 정부가 계속 쥐고 있다면 그동안의 기업 구조조정과 달라질 게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은행 관계자는 "기업 구조조정이 '시장의 평가'가 아니라 정부의 잣대에 좌우되면 기업 구조조정이 해당 산업의 경쟁력 강화로 이어지기 어려울 수도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