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 나간 은행… 이자도 못낼 부실기업에 수천억 신용대출
입력 : 2015.10.20 03:05
[7년 미뤄온 기업 구조조정 on] [2] 좀비기업 양산하는 은행
상반기 부실 대출 21조원… 부실 우려 알고도 빌려줘
자구 노력하는 기업에선 반대로 대출 회수하기도
3년 연속 적자·자본잠식 부실기업 60%를 '정상' 판정… 건전성 악화로 발등 찍기도
A 시중은행은 지난 2012년 초 재계 50위 안에 드는 에너지 전문 B 기업에 공장 증설 자금으로 1900억원(3년 만기·연 4.8%)을 빌려줬다. 이 정도 큰 규모의 자금은 은행이 통상 공장이나 토지를 담보로 잡아야 하지만, A 은행은 "신용등급이 좋으니 굳이 담보가 필요 없다"며 신용대출로 취급했다. 연초부터 사업 전망이 불투명해 적자가 우려된 B 기업은 실제 그해 적자를 냈고, 2014년까지 3년 연속 수천억원 적자를 내며 경영에 적신호가 켜졌다. 금융 당국은 지난해부터 A 은행이 담보도 없이 신용대출을 해주는 행태를 지적하면서 "B 기업이 이자비용도 갚을 수 없을 만큼 어려워졌기 때문에 부실을 관리하라"고 통보했다. 그럼에도 올 초 만기가 돌아온 대출에 대해 B 기업의 집요한 요청을 거절하지 못하고 A 은행은 대출금의 20%(380억원)만 상환받고 연 3%의 낮은 금리로 만기를 2년 연장해준 것으로 확인됐다. B 기업은 지난해 핵심 계열사가 기업 회생에 돌입하는 등 적자 경영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 은행이 거액을 떼일 가능성이 높다.은행들이 강력한 자구 노력을 통해 경영난을 헤쳐나가는 기업한테서는 대출을 회수하면서, 반대로 살아나기 힘든 좀비 기업에는 대출을 이어가는 나태한 기업 관리로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은행들이 기업에 빌려줬다가 부실화된 대출은 2009년 13조7000억원에서 올 상반기 21조6000억원으로 57% 증가했다. 문제는 기업의 부실 징후를 사전에 파악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고도 이를 의무적으로 이용하지 않아 부실을 포착하지 못하거나, 부실 우려를 알면서도 막대한 대출금을 집행하는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가 벌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3년 연속 자본 잠식 기업의 신용등급을 높여줘
국내 18개 은행은 3가지 장치로 기업 부실을 관리한다. ▲기업의 신용등급을 1년마다 의무적으로 평가하는 신용위험평가시스템 ▲6개월 뒤 기업의 부실 징후를 사전에 파악하는 조기경보시스템 그리고 ▲우발채무 등 분식 가능성을 점쳐볼 수 있는 분식회계 적출시스템이 그것이다. 그러나 금감원 검사에서 상당수 은행이 이 같은 시스템을 느슨하게 운영하다 적발돼 올해 제재를 받았다.
은행들은 매출이나 이익 같은 실적(70%)과 사업전망(30%)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기업의 신용등급을 올려야 한다. 그런데 D 은행은 단순히 매출이 늘어날 것만 예상해 신용등급을 100% 올릴 수 있도록 내부지침을 만들어 운영해오다 적발됐다. 그런가 하면 수년째 자본잠식·적자가 발생한 기업 수십개에 대해 주의기업으로 선정하지 않은 은행도 있었다.
◇부실한 기업 관리로 은행 부실도 눈덩이
기업 재무 상황이 어려워지면서 기업 임직원들의 집단적인 분식회계 위험이 도사리고 있지만, 1~5등급(분식 위험이 가장 높음)으로 분류하는 분식회계 적출시스템도 의무적으로 사용하지 않는다. 일부 은행은 직원 개인 판단으로 기업 분식 가능성을 분석하는데, 점검 여부를 전산으로 기록하지도 않았다.
최근 3조원의 부실이 드러난 대우조선해양의 경우에도, 산업은행이 분식회계 적출시스템을 이용해 사전에 분식을 솎아내야 하는데 그러지 않아 올해 국정감사에서 지적을 받았다. 정부가 지분을 가진 기업은 분식회계 적출시스템을 활용하지 않아도 된다는 조항 때문이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매년 거의 똑같은 은행들의 부실 관리 실태가 지적되고 있다"면서 "지방은행으로 갈수록 기업을 평가하는 능력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은행들이 이처럼 '눈 가리고 아웅'하는 식으로 기업을 관리하는 바람에 은행들의 부실 대출이 늘어나 건전성이 악화되고 있다. 수출입은행의 경우 지난 4년간 중형 조선사인 성동조선해양에 2조6000억원을 투입했지만, 경영 정상화를 하지 못해 수은의 부실 채권 규모는 2011년 5797억원에서 지난해 2조1492억원으로 불어났다. 수은은 1조원 넘게 정부에 손 벌려야 하는 처지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부실 징후가 있는 기업을 가려내는 기업 구조조정도 금융 당국이 나설 수밖에 없다. 기업이 부도나기 전에 미리 워크아웃 등을 통해 회생 기회를 잡아야 하는데, 은행들은 한사코 워크아웃이나 법정관리에 들어갈 기업 숫자를 줄이려고만 하기 때문이다. 신성환 금융연구원장은 "은행이 기업의 미래 전망에 대해 훨씬 더 엄격하게 판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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