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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칼럼] 국회의원, 숫자가 아니라 質이 문제다

최만섭 2015. 10. 20. 11:25

[김대중 칼럼] 국회의원, 숫자가 아니라 質이 문제다-조선일보

  • 김대중

    발행일 : 2015.08.04 / 여론/독자 A30 면 (ww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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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회의원 숫자를 늘릴 것인가, 비례대표를 얼마나 더 늘릴 것인가-어처구니없게도 지금 우리는 이런 논쟁에 말려 있다. 지난 세월 온 국민의 지탄 대상이었던, 그래서 '국회(國會)'가 아니라 '국해(國害)'라고까지 비아냥을 받아온 국회가 오히려 의원 숫자를 늘리는 문제를 국민 앞에 내걸다니 국민의 약을 올려도 유분수다.

    우리가 '국회 무용론'을 거론할 때 그 본질이 숫자에 있었던가? 아니다. 본뜻은 숫자에 있지 않고 국회의원의 질(質)에 있었다. 국회가 국정을 논하고 정부의 정책을 거들거나 견제하는 등 본래의 기능을 수행하기는커녕 눈만 뜨면 싸움질이고 틈새만 보면 상대방을 찔러 대는, 그래서 국정은 정지되고 민생은 하염없이 떠도는, 어찌 보면 필요악 같은 존재로 비판받아 온 지 오래다. 과거 권위주의 시절에는 정부가 무소불위였고 그래서 상대적으로 국회는 정부의 독주를 막아온, 민주정치의 제도적 보루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회가 없었다면 과거 누가 청와대와 정부 집권층의 독존적 행태를 견제했을까.

    하지만 시대는 변하고 있다. 그런데도 국회 그리고 국회의원은 여전히 과거의 역할과 기능에 심취해 있는 듯하다. 선출직이라는 자부심이 자만심으로 둔갑해 자기들만이 곧 '국민의 대표'인 듯 거들먹거리고 자기들을 뽑아준 국민에게까지 안중에 없는 듯 군림하고 있다. 국회의원이 이처럼 유권자를 우습게 여기는데도 유권자는 자기들이 뽑아준 국회의원의 처신에 둔감해지고 그런 사람들을 또 국회의원으로 뽑아주는 이상한 악순환의 게임이 이 땅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국회의원들은 안다. '당신(국민 또는 유권자)들이 아무리 우리를 비난하고 헐뜯어도 선거가 오면 또 우리를(또는 나를) 찍어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적어도 그렇게 믿는다. 국민이 국회와 국회의원을 비판하는 것은 총론적 얘기이고 지역구에서 의원과 유권자의 관계는 '너와 나'의 구체적·현실적 각론의 얘기라는 것이다. 거기에는 지연·학연·혈연·금연(金緣) 같은 끈끈한 요인들이 도사리고 있다. 투표소 안에 들어가면 비판이고 저질이고 다 달라진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과 관계, 이런 사고(思考)와 시스템을 고치지 않는 한 국회의 존재감은 회복 불가능이고 국회의원의 질적 향상을 통한 의회민주주의의 제도적 정착은 요원하다.

    우리에게도 과거 총선 때 총선시민연대라는 것이 있어서 특정 인사들의 낙천과 낙선을 유도하는 운동을 벌인 적이 있다. 국회의원 바로 뽑기라는 명분 아래 출발했으나 그것이 특정 인사, 특정 이념, 특정 정파의 배척이라는 또 다른 정치적 복선을 노정하면서 지연·학연·이념 지향이라는 벽을 넘는 데는 실패했다. 국회의원 바로 뽑기, 또는 국회의원의 질(質) 높이기는 그런 캠페인 식(式)으로 해서 될 일이 아니라는 교훈을 줬다. '운동'의 주체가 누구냐, 자금은 어디서 나오는가도 문제였다. 거기에 온갖 '잡새'들이 날아들어 본뜻이 흐리게 되고 그것이 오히려 국회의 질 높이기에 역행하는 결과를 가져다 줄 뿐이었다.

    답(答)은 우리 국민의 시민의식과 민주역량을 높이는 일이다. 국민 각자가 저런 사람은 안 뽑겠다는 투철한 인식과 의지를 가져야 되는 일이다. 미국의 경우, 지역신문에는 출신 의원의 의회 내 투표 성향 즉, 법안별 찬반 표시 내용이 그대로 보도돼 각 유권자의 개별 심판이 그때그때 이뤄진다. 우리처럼 당론대로 움직이는 로봇 투표에서는 불가능한 일이지만 그래도 우리도 시도해볼 만하다. 일부에서 이미 하고 있지만 의원들 관계 기사에 출신 선거구와 비례대표 여부를 반드시 괄호 안에 넣어 지역주민의 감시 기능을 촉발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한마디로 개개 의원의 활동과 일거수일투족을 구체적 기록으로 제시하고 심판하는 것이다.

    이것은 시간이 걸리는 일이다. 그래도 우리 국회는 결국 우리 국민이 고치는 것이고, 국회의원의 질 향상은 국민의 몫이다. 교과서적인 말처럼 들리지만 우리가 주권을 행사하는 일은 교과서대로 해야 한다. 무슨 야당 '투사'라고 '세월호'에 편승하려는 사람, 무슨 거물이라고 아무 데나 깃발 꽂는 인사, '한 건' 했다고 하루아침에 의원 되는 사람, 막말의 정도를 넘어 욕지거리를 일삼는 사람-이런 사례, 이런 인사들을 노상 개탄하면서도 때가 오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또 찍어주는 관행적·관습적 투표 행위가 지속되는 한 우리는 삼류 민주주의를 벗어날 수 없다. 그런 유권자는 국회의원을 비난할 자격이 없다. 국민은 결국 그 국민의 수준에 맞는 국회를 가질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