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 개혁

금융권 연봉 반납은 쇼다

최만섭 2015. 10. 9. 17:14

데스크에서] 금융권 연봉 반납은 쇼다

이진석 경제부 차장 사진

"회장님들이 연봉을 반납할 게 아니라 삭감해야 합니다."

한 은행 임원은 잔뜩 찌푸린 얼굴로 이렇게 말을 꺼냈다. 요즘 유행하는 금융권 회장님과 행장님들의 연봉 반납이 저녁 자리의 주제였다. "삭감은 근로계약서를 고쳐서 연봉 자체를 줄이는 겁니다. 반납은 연봉은 그대로지만, 일시적으로 덜 받겠다는 겁니다. 소나기를 피하고 보자는 데 불과해요."

청년 고용을 늘리라고 정부가 등을 떠밀고 있으니, 5억~6억원을 웃도는 거액 연봉 일부를 헐어 신입 직원을 더 채용하겠다는 것인데 임시방편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한두 해, 길면 이 정부가 끝날 때까지 연봉을 덜 받겠다는 것이지, 회장님과 행장님들의 연봉 수준을 낮추겠다는 얘기는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윤종규 KB금융지주 회장, 한동우 신한금융그룹 회장, 김정태 하나금융그룹 회장의 연봉 30% 반납 선언 이후 금융권에서 비슷한 일이 꼬리를 물고, 박수를 받고 있지만 누구도 삭감을 말하진 않았다.

정부는 청년 고용 문제를 풀 방법으로 임금피크제를 내세운다. 무슨 만병통치약처럼 야단스럽게 굴고 있지만, 고용 확대를 위한 근본적 문제를 풀기에는 한참 부족하다. 고(高)임금 구조를 뜯어고쳐야 일자리를 늘릴 수 있다. 대표적 고임금 업종이 은행 등 금융업이다.

지난해 기준으로 우리나라 은행원 평균 연봉은 1인당 국민소득(GDP)의 2배를 넘었다. 1인당 GDP가 2만8486달러인데 은행원은 연봉을 평균 5만7941달러 받았다. 미국은 은행원 평균 연봉이 5만4760달러로 1인당 GDP(5만4412달러)와 비슷했다. 소득 수준을 감안하면 평균적으로 한국 은행원은 미국 은행원의 2배를 받는다는 얘기다. 독일·영국·프랑스 등 유럽 주요국 어디도 은행원 평균 연봉이 1인당 GDP의 2배를 넘는 곳은 없다.

번듯한 대기업은 거의 모두 미국 등 선진국의 임금 체계인 연봉제로 전환했지만, 우리나라 은행은 거의 모두 호봉제를 여전히 유지하고 있는 것도 고임금 체계의 주된 원인이다. 매년 호봉이 올라가니 임금도 해마다 높아지기 때문이다. 호봉제에서는 매년 임금 인상률만큼 모든 직급 호봉이 올라간다. 맨 아래에 있는 신입 직원들의 임금도 덩달아 올라가게 된다. 이러다 보니 주요 시중은행의 대졸 군필 남자 신입 직원의 첫해 연봉이 5000만원에 이른다. 은행에 입사하는 것과 동시에 근로소득자의 월급 순위에서 상위 15%에 들어가게 된다. 첫해에는 지급되지 않는 연월차수당이 나오는 2년 차 연봉은 5400만원이 넘는다. 다른 업종과 비교할 바가 못 된다. 이런 고임금 구조가 은행 직원 4명 가운데 1명을 1억원 이상 받는 억대 연봉자로 만들었다.

회장님과 행장님들이 임금 20~30% 반납이 아니라 삭감을 논의했으면 한다. 그래야 금융권의 고임금 구조를 바꿀 실마리가 생길 듯하다. 은행권의 호봉제를 연봉제로 고치자는 말도 나올 때가 됐다. 임금 체계를 근본적으로 논의할 때도 됐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