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국내 원전 생태계 숨통 트였다… 체코·폴란드 수출도 ‘파란불’

최만섭 2022. 8. 26. 05:17

국내 원전 생태계 숨통 트였다… 체코·폴란드 수출도 ‘파란불’

벼랑끝 몰렸던 원전, 해외 수출로 기지개
에너지 위기에 세계 원전 건설붐
글로벌 원전시장 주도하던 러시아
우크라戰으로 배제 가능성 높아져
“중동지역서 물량 대거 쏟아질 것”
국내 중소기업들도 모처럼 활기

입력 2022.08.26 03:27
 
 
 
 
 

한국수력원자력이 이집트 엘다바 원전 프로젝트에서 터빈 등 건설 계약을 체결한 것은 지난 5년간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 탓에 고사 상태였던 국내 원전 생태계에 ‘가뭄 끝 단비’와 같다는 평가가 나온다. 2009년 이명박 정부 당시 186억달러(약 25조원) 규모의 아랍에미리트(UAE) 원전 수주와 비교하면 계약 규모나 수주 내용에서 차이가 있지만, 최근 원전 확대라는 글로벌 추세에 맞춰 한국 원전의 존재감을 드러냈다는 의미가 있다. 2000년대 이후 미국·프랑스 등 서방 원전 강국이 경쟁력을 잃고, 그 자리를 러시아·중국이 차지해가는 상황에서 경제성과 안전성을 갖춘 한국 원전 수출에도 청신호가 켜졌다는 분석이다.

◇”붕괴 직전 한국 원전 업계에 단비”

25일 이집트 엘다바 원전 4기 건설 사업에 한수원이 3조원 넘는 기자재 공급, 터빈 건설 계약 체결 소식이 전해지자 한 원전업계 관계자는 “촘촘하게 발주가 이어진다면 신고리 5·6호기 이후 2년 넘게 일감이 끊어졌던 기자재 업계가 체력을 회복할 시간을 벌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경남 창원에 있는 한 원전 부품 업체 대표도 “(문 정부 때 건설이 중단된) 신한울 3·4호기 공사가 2024년 재개되고, 엘다바 물량까지 나오면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한국수력원자력이 25억달러(약 3조3000억원) 규모 기자재 공급·터빈 건물 시공 사업을 수주한 이집트 엘다바 원전 조감도. 러시아 ASE가 올해부터 오는 2030년까지 1200㎿(메가와트)급 4기를 건설한다. /한국수력원자력

업계에서는 한수원이 맺은 엘다바 계약 금액 25억달러(약 3조3000억원) 중 현지 인건비와 자재 등을 제외한 60~70% 정도가 국내 시공·기자재 업체 매출로 이어질 것으로 예상한다. 정부가 원전업계를 살리기 위해 예비품 등 1306억원 규모의 긴급 일감을 발주하기로 한 가운데 엘다바 원전 기자재가 추가로 발주되면 탈원전 5년 동안 벼랑 끝에 몰렸던 원전 산업 생태계가 되살아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한 원전 업계 관계자는 “이번 계약은 원전의 핵심인 원자로가 아닌 보조기기 분야라 대기업보다 중소기업이 제작한 일반 기자재 비중이 크다”며 “경영난을 겪는 중소기업들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엘다바 원전 건설에는 기계·배관·전기·계측 등 국내 100여 개 원전 기자재 업체가 참여할 것으로 예상된다.

 
 

문재인 정부에선 신한울 3·4호기를 포함해 신규 원전 건설을 백지화하고, 최초 설계수명이 끝난 원전에 대한 계속운전 허가까지 막으면서 원전 기자재 업계는 일감이 ‘제로(0)’인 상황이 수년째 이어졌다.

◇체코, 폴란드 등 수출 기대 커져

엘다바 계약을 계기로 한국 원전 수출도 속도를 낼 것으로 예상된다. 그동안 원전 건설 경쟁력을 높이 평가하면서도 탈원전 정책에 대한 의구심으로 불안해하던 원전 발주국에 이번 계약이 새 정부의 ‘탈원전 폐기’를 공식적으로 확인해주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것이다.

이집트 엘다바 원전 건설 프로젝트

우리나라는 체코의 1200㎿(메가와트)급 원전 1기 입찰을 두고 미국·프랑스와 3파전을 벌이고 있다. 원전 6기 건설을 계획 중인 폴란드에서는 미국과 협력해 수주를 노리고 있다. 이집트와 가까운 사우디아라비아의 2기와 UAE가 추가로 건설 예정인 바라카 5~6호기 수주도 기대해볼 수 있다. 원전 업계에서는 다음 달 UAE 고위층이 잇따라 방한하는 것을 두고 원전 추가 발주 가능성을 예상한다. 정동욱 중앙대 교수는 “지금까지 사막에 원전을 지은 나라는 우리밖에 없다”며 “앞으로 중동 지역에서 대거 물량이 쏟아질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이번 수주가 좋은 선례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특히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국제 사회 제재를 받는 러시아가 앞으로 국제 입찰에서 배제될 가능성이 큰 것은 우리에게 유리한 대목이다. 러시아는 자금력을 바탕으로 인도·터키·방글라데시 등에 원전을 수출하면서 최근 글로벌 원전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우리나라 원전의 경제성과 안전성이 돋보일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WNA에 따르면 한국형 모델의 건설 단가는 미국의 65%, 러시아와 프랑스와 비교하면 50%대다. 1978년 고리 1호기 상업 운전 이후 40여 년간 꾸준히 원전을 건설·운용해온 것도 강점으로 꼽힌다.

정범진 경희대 교수는 “한국형 원자로 수출은 아니어서 아쉬운 점이 있다”면서도 “앞으로 원전 르네상스가 기대되는 시점에 이번 계약을 계기로 산업 생태계를 빨리 회복시켜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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