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물가 위기… 대통령부터 월급 깎아 재정개혁 선도해야”

최만섭 2022. 8. 25. 05:31

“물가 위기… 대통령부터 월급 깎아 재정개혁 선도해야”

[김기훈 전문기자의 Special Report] 대통령들의 재정 개혁

입력 2022.08.25 03:00
 
 
 
 
 

전 세계 물가 위기의 원인인 국제 유가와 곡물 가격 상승세가 주춤하고 있지만, 고물가·고금리·고환율이라는 3고(高) 악재가 여전히 한국 경제를 짓누르고 있다. 유가 상승으로 올해 1~7월 무역수지 적자액(150억2500만달러)도 66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 대외 전선에도 빨간불이 켜진 상태다.

이에 맞서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 후 100일이 넘는 기간 서민층 생활 지원을 강화하고 근로자 세금을 낮춰주는 카드를 꺼냈다. 또 정부 지출을 줄이겠다고 선언했다. 역대 대통령들의 고물가 대책에 비추어 볼 때 제대로 대응하고 있을까?

소득세 인하한 박정희

1973년 10월 1차 오일쇼크(석유 파동)가 발생했다. 국제 유가가 순식간에 4배나 올랐고, 이듬해 한국 소비자 물가도 연 20%나 폭등하는 위기 상황이었다. 박정희 대통령은 1974년 1월 14일 ‘국민 생활 안정을 위한 대통령 긴급조치’를 발표했다. 김용환 청와대 경제수석은 서민층 소득세를 대폭 감면하는 조치를 시행했다. 그 여파로 세금 수입이 줄어들 상황이 됐다.

박 대통령은 1월 18일 연두기자회견에서 “소비 절약과 자원 절약에 정부가 앞장을 서겠다. 그래서 정부는 이번에 세출 예산에서 약 500억원을 절감하겠다”고 선언했다. 1974년 GDP(국내총생산) 대비 국가 채무 비율은 지금의 절반도 안 되는 19%였지만, 정부는 빚을 더 늘리지 않고 자신의 씀씀이를 줄이면서 서민들의 가용 자금을 늘려주는 방식을 썼다.

정부 예산 대수술한 전두환

전두환 대통령은 물가 안정에 가장 업적이 많은 대통령이다. 그는 1980년 집권 후 30년 만성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을 잡겠다고 결심했다. 특히 박정희 대통령 말기에 중화학공업 육성을 위해 정부의 재정 지출이 많았고, 1978년 12월에 2차 오일쇼크도 발생한 상태였다. 1980년의 소비자 물가 상승률은 28.7%, 도매 물가 상승률은 42.3%였다.

전 대통령은 1982년에 국회 심의를 이미 통과한 그해 예산을 항목별로 필요성을 원점(zero base)에서 다시 검토해 불요불급한 예산을 대폭 삭감하는 ‘예산 혁명’을 했다. 동시에 근로자 임금 상승을 억제하고 정부가 농민에게 사들이는 쌀값도 인상률을 낮췄다. 근로자와 농민도 고통 분담을 해야 한다는 취지였다. 초고강도 긴축 조치가 시행되던 와중에 국제 유가가 하락하며 물가가 안정 기미를 보였다.

하지만 전 대통령은 한발 더 나아갔다. 1983년에는 이듬해 정부 예산을 전년과 같은 규모로 동결해 편성했다. 자신이 군 출신인데도 국방 예산을 전년보다 줄였다. 경상 GNP(국민총생산)가 연간 20%씩 늘어나는 상황에서 예산 동결은 실질적으로는 삭감이었다. 문희갑 경제기획원 예산실장이 실무 작업을 맡았다. 덕분에 이듬해 세수 흑자가 나면서 이후 정부 재정이 장기간 튼튼해지는 초석이 만들어졌다. 김재익 경제수석은 소비자 물가가 안정세를 보이자 인플레이션 기대 심리마저 차단하려 1년 만기 정기예금 금리를 12%에서 8%로 끌어내렸다. 한 자릿수 물가 상승률과 금리에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자,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자가 경탄했다.

재정 개혁 단행했던 역대 경제 참모 3人 - 사진 왼쪽부터 박정희 정부의 김용환 대통령 경제수석, 전두환 정부의 김재익 경제수석과 문희갑 경제기획원 예산실장.

청와대 식단 줄인 김영삼

김영삼 대통령은 재정은 튼튼했지만 물가가 높아 골치였다. 전두환 대통령 말기인 1987년 3.0%였던 소비자 물가 상승률은 노태우 대통령 시절 5년간 민주화 바람을 타고 5.7~9.3%로 뛰어올랐다. 김 대통령은 취임 다음 달인 1993년 3월 신경제 관련 특별 담화문을 발표, “모두 고통을 분담해 달라. 정부가 앞장서겠다”고 호소했다. 그는 청와대 예산을 먼저 줄이겠다며 각종 행사는 물론 청와대의 식탁까지도 낭비 요소를 철저히 없애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나아가 작고 생산적인 정부가 되겠다며, 그해에는 공무원 봉급을 올리지 않고 정원도 늘리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김 대통령은 전두환 대통령 이후의 건전 재정 기조를 이어갔다. 그 노력 덕택에 GDP 대비 국가 채무 비율은 1982년 21.1%에서 1995년 8.3%까지 하락했다. 김 대통령 임기 말에 외환 위기가 발생했지만, 후임 김대중 대통령은 전임자들이 만든 튼튼한 정부 곳간을 써서 위기를 극복했다.

방향 맞지만 강도 약한 윤석열

윤석열 대통령은 물가 위기 이후 유류세를 인하하고 저소득층 생계 지원을 강화하는 대책을 발표했다. 또 지난 7월 7일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는 전임 문재인 정부 5년간 이어진 확장 재정 기조를 철회하고 건전 재정 기조로 전환하겠다고 선언했다. 공무원의 정원과 보수를 엄격하게 통제하고, 내년 정부 지출을 올해보다 줄일 방침이다. 장차관급 고위 공무원의 보수도 10% 반납할 예정이다.

전문가들은 윤 대통령이 방향은 잘 잡았으나 강도가 약하다고 평가한다. 전두환 대통령처럼 ‘예산 혁명’을 한 것도 아니고, 김영삼 대통령처럼 직접 나서서 청와대 식단부터 줄인 상징성도 부족하다는 의미이다.

한 경제 전문가는 “오일쇼크처럼 물자가 부족한 시기에는 대통령이 직접 정부의 절약 메시지를 전달하면서 국민들에게 고통 분담을 호소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른 전문가는 “대통령 월급과 예산 담당 부처인 기획재정부 예산부터 확 줄여야 다른 정부 부처, 근로자, 농어민의 저항을 줄일 수 있다”고 했다. 실제로 전두환 대통령 시절인 1982년 초 조경식 경제기획원 예산실장은 다른 부처가 예산 삭감에 반발하면 경제기획원 예산의 삭감 비율을 보여주며 반발을 억눌렀다.

[품질 개선으로 생산성 올린 뒤 성과급 지급 필요]

‘물가·임금 악순환' 대책

물가 위기 때 가장 풀기 어려운 정책 난제 중 하나는 물가와 임금의 악순환이다. 물가가 오르면 노조는 임금을 올려달라고 요구하고, 정부는 임금 인상이 물가를 또 끌어올려 물가와 임금의 악순환이 벌어진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기업들이 품질 개선으로 생산성을 올린 뒤 발생한 이익을 근로자들에게 성과급으로 지급하는 것이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기업이 원자재 가격 상승에도 불구하고 자원 절약과 품질 개선으로 전년보다 이익을 더 낼 경우에는 그 이익 증가분을 이익 증대에 기여한 업무팀이나 근로자 개인에게 지급하는 방식이다.

이러한 해결책은 1970년대에 두 차례 오일쇼크(석유 파동)를 겪으면서 소비자 물가가 폭등할 때 활용됐다. 당시 근로자들이 임금 인상을 요구하자 기업들이 세계적 불황과 고임금을 우려해 투자를 꺼리면서 일자리 창출이 어려워졌다. 박정희 대통령은 정부가 먼저 재정 긴축에 나서고, 뒤이어 경영자와 근로자가 합심해 품질 개선과 원가 절감을 하도록 유도했다. 기업들의 동참이 이어졌다.

생산성 향상이 가능했던 이유는 생산성 향상에서 생긴 이익을 근로자들에게 성과급으로 지급하기로 노사가 사전에 합의했기 때문이다. 기업들은 업무팀별로 생산성 향상 실적을 숫자로 산출해 근로자 개개인에게 성과급을 지급했다. 연공서열이 아니라 개인별, 직무별, 직능별 보상 형태로 이뤄졌다. 정부는 이 과정을 모니터링하면서 생산성을 높이고 근로자에게 성과급을 정확히 지급하는 기업에 세제와 금융 지원을 해주고, 규제도 완화해 신규 산업 진출의 길도 터줬다. 이러한 전략은 전두환 대통령 시절에도 이어졌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이익 공유 제도 덕택에 오일쇼크에도 불구하고 이익을 내는 기업들이 나왔으며, 한국 경제가 일자리 위축과 경기 침체를 피하고 성장세를 유지할 수 있었다고 분석한다. 따라서 고물가 위기 때에는 노사정이 품질 개선과 생산성 향상에 기반한 임금 인상에 합의할 필요가 있다고 권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