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사설]삶의 끝에서 “미안하다”던 그들… 우린 왜 못 들었을까

최만섭 2022. 8. 24. 05:28

[사설]삶의 끝에서 “미안하다”던 그들… 우린 왜 못 들었을까

입력 2022-08-24 00:00업데이트 2022-08-24 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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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모녀가 숨진 채 발견된 경기 수원시 권선구의 한 다세대주택 방을 23일 특수청소업체 직원이 정리하고 있다. 수원=전영한기자 scoopjyh@donga.com
21일 경기 수원의 다세대주택에서 숨진 채 발견된 세 모녀. 60대 어머니는 암 투병 중이었고 40대 두 딸도 난치병을 앓고 있었다. 극심한 생활고를 겪었지만 어디에도 누구에게도 의지할 수 없었다. 빚 때문에 이사를 하고도 전입신고를 하지 않아 복지 사각지대에 방치돼 있었다. 이들이 한 달 전쯤 마지막으로 주인집에 남긴 말은 “병원비 정산하느라 월세가 좀 늦어졌다. 미안하다”였다고 한다.

세 모녀의 비극이 알려진 뒤 정부와 정치권은 극한 상황에 놓인 위기의 취약계층을 추적할 시스템과 인력의 확충, 매뉴얼의 개정 등 다각적 대책 마련을 다짐했다. 윤석열 대통령도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했다. 하지만 이런 다짐들로 또 다른 비극을 막을 수 있을까.

수원 세 모녀의 비극은 8년 전 복지 사각지대에서 생활고에 시달리다가 극단적 선택을 한 송파 세 모녀 사건을 떠올리게 한다. 기초생활수급 대상에서도 배제됐던 송파 세 모녀가 세상과 작별하며 남긴 것은 현금 70만 원과 ‘죄송합니다. 마지막 집세와 공과금입니다’라는 메모였다. 이 사건 이후 복지 사각지대 발굴시스템 같은 공적 복지망 연결제도가 가동됐다. 하지만 등록주소지와 실거주지가 달랐던 수원의 세 모녀에겐 사실상 무용지물이었다.

 
제도와 시스템의 개선은 필요하다. 위기에 처한 이들이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의 도움을 받도록 유도하거나 그런 이들을 먼저 찾아내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것은 현대 복지국가의 기본적인 책무다. 하지만 그것이 정부나 자치단체만의 책임일 수는 없다. 국가나 사회의 책임이라면서 이웃의 잠재적 비극에 무관심한 우리 각자는 그 책임에서 자유로운가.

삶의 끝에 선 이들은 그런 도움이 가능한지도, 어디에 요청할지도 모르는 게 현실이다. 그제 광주에선 방학 중 기숙사에서 홀로 지내던 보육원 출신의 새내기 대학생이 숨진 채 발견됐다. 그가 남긴 쪽지엔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막막하다’고 적혀 있었다. 최근 서울 신림동에서 폭우로 인한 반지하 침수로 숨진 세 가족의 참사는 같은 자연재난도 가난한 사람에겐 너무도 가혹한, 불공평한 현실을 새삼 일깨워준다.

우리 사회에서 이웃이라는 정서적 유대의 공동체는 사라져가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개인적 접촉마저 꺼려지는 게 작금의 현실이다. 하지만 세 모녀의 비극은 뉴스, 영화에서나 보는 현실이 아니다. 바로 지금 우리 가까이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다. 추석이 보름 앞으로 다가왔다. 각자 주변부터 살펴보는 최소한의 사회적 책임감을 발휘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