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

[한삼희의 환경칼럼] “석기시대가 돌이 떨어져 끝난 게 아니다”

최만섭 2022. 7. 6. 05:22

[한삼희의 환경칼럼] “석기시대가 돌이 떨어져 끝난 게 아니다”

高유가 고통 클수록 대안 에너지 찾게 돼
화석연료 시대는 결국 지나갈 것
G7 ‘기후 클럽’ 합의로 탄소 무역전쟁 성큼
한국엔 기회일 수

입력 2022.07.06 00:00
 
 
 
 
 
 
G7 정상들이 지난달 28일 독일 바바리아주 엘마우에서 열린 정상회의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G7 정상들은 회의에서 올 연말까지 '기후 클럽'을 결성하기로 합의했다. /로이터 연합

세계적으로 ‘에너지 안보’가 부각되면서 기후에 대한 관심은 후퇴하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독일·네덜란드·오스트리아 등은 석탄발전소를 재가동하거나 가동률을 높이는 조치를 취했다. 독일은 미국·중동의 액화천연가스(LNG)를 공급받기 위한 LNG 터미널도 건설하기로 했다. ‘2045년 탄소 중립’이라는 독일의 목표가 실현 가능하겠느냐는 우려가 나온다.

미국 바이든 대통령은 임기 첫날 파리 기후협정 복귀에 서명했을 만큼 기후 친화적 대통령이었다. 그가 휘발유 값 상승으로 국민 불만이 솟구치자 석유회사들에 “왜 더 빨리 석유 생산을 늘리지 않는가”고 따졌다. “엑손(모빌)은 지난해 하느님보다 더 많은 돈을 벌지 않았느냐”며 노골적으로 독촉했다. 바이든의 내주 사우디아라비아 방문도 석유 증산을 요청하러 가는 것이다. 이 와중에 미국 대법원은 행정부의 석탄발전소 규제 권한에 제동을 걸었다. 기후 대응을 강조하는 ESG 경영에 대한 회의적 시각들도 세계 곳곳에서 나오기 시작했다. 국내에선 2030년 온실가스 40% 감축, 2050년 탄소 중립 목표에 대해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등장하고 있다.

이런 수면 위쪽 물결도 봐야겠지만, 수면 아래 큰 흐름은 어떻게 움직일지도 유의해야 한다. 25년간 사우디아라비아 석유장관을 했던 야마니가 했다는 유명한 말이 있다. “돌이 다 떨어져 석기시대가 끝난 것은 아니다”. 1973년 1차 오일 쇼크 때 유가를 너무 높게, 너무 빨리 올려선 안 된다면서 이 말을 했다. 석유 수입국들은 고유가 고통이 견딜 수 없게 되면 대안(代案)을 찾게 된다. 태양광, 수소 에너지 연구가 시작된 게 그즈음이었다. 프랑스는 1974년 모든 전기를 원자력으로 생산하겠다는 메스머 플랜을 꺼내들었다. 야마니는 고유가 반작용으로 에너지 기술 혁신이 일어나면 석유 매장량이 많이 남아 있더라도 석유를 더 채굴할 필요가 없게 되는 탈석유 시대가 올 수 있다는 것을 경고한 것이다.

세계 각국이 당면한 과제는 탄소 중립과 에너지 안보 두 가지다. 탄소 중립은 미래가 걸린 장기 이해이고 에너지 안보는 지금 절박하다. 우선 순위는 에너지 안보일 수밖에 없다. 당장의 화석연료 확보가 절박하다. 전 세계가 이렇게 움직이고 있어 탄소 중립을 비관하게 되는 것도 당연하다. 실제로 2030·2050 목표는 이루기 힘들다고 본다. 하지만 30년 내 탄소 중립이 어렵다고 해서 탄소 중립 목표 자체를 포기해야 한다는 건 아니다. 이산화탄소는 축적성을 갖는다. 경제가 화석연료로 돌아가는 한 농도는 매년 올라간다. 시점이 불확실할 뿐, 이대로면 파국을 피할 수 없다. 세계가 협동으로 꾸준히 청정 에너지의 길로 가야 한다.

 

지난주 나토 정상회의 직전 독일서 열린 G7 회담에서 눈에 띄는 기후 분야 합의가 있었다. 금년 말까지 ‘기후 클럽(climate club)’을 결성하겠다는 것이다. 온실가스 감축에 선도적인 나라들을 회원국으로 묶어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겠다는 것이다. 기후 클럽은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윌리엄 노드하우스 교수가 2015년 논문에서 제안한 아이디어다. 지금까지의 기후협약(교토의정서, 파리협정)은 동조하지 않는 나라들에 대한 벌칙 조항이 없었다. 안 지켜도 제재가 없으니 실천은 지지부진했다. 이제부터는 기후 클럽 회원국들이 비(非)회원국 수출품에 대해 관세를 물리는 방법으로 제재를 가하자는 것이다.

기후 클럽은 중국, 러시아를 겨냥하고 있다. 한 단위의 GDP를 생산할 때 중국과 러시아는 EU에 비해 2.6배, 2.8배 온실가스를 배출한다. 배출량 격차만큼 상계관세를 부담시키면 중국·러시아 제품은 교역 장벽을 넘기 힘들게 된다. EU가 2026년부터 실행하겠다는 ‘탄소 국경세’도 비슷한 개념이다. 기후 클럽은 회원 국가 범위를 EU를 넘어 북미, 아시아 등으로 넓히겠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러시아·중국 그룹과 유럽·북미·아시아 선진국 그룹의 거대 경제 블록 간 탄소 무역전쟁이 벌어지게 된다. 나토가 중국·러시아를 ‘중대 위협’ ‘구조적 도전’으로 규정하기 이전, G7 정상들이 먼저 탄소 경제전쟁의 막을 여는 개념을 내놨다.

우리의 상반기 무역수지가 103억달러 적자였다. 수출은 사상 최대였는데 에너지 수입액이 작년의 두 배인 879억달러를 기록했다. 화석연료 시대엔 자원이 없으면 이런 처지가 된다. 탄소 중립은 그 굴레에서 탈출하자는 것이다. 우리에겐 기회일 수 있다. 단기적으로 필요한 화석연료는 충분히 확보해야 한다. 그러나 미래에 다가올 탄소 중립 시대엔 땅 속 자원이 아니라 인적 자원으로 경쟁한다. 배터리, 전기차, 수소경제, 원자력 등은 두뇌가 실력을 결정한다. 큰 흐름을 도전적으로 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