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

[한삼희의 환경칼럼] 중국산 건고추가 왜 한국에서 활개치게 됐나

최만섭 2022. 7. 27. 05:20

[한삼희의 환경칼럼] 중국산 건고추가 왜 한국에서 활개치게 됐나

한국의 저렴한 전기로
건조시켜 파는 장사
외국 데이터센터들도
몰려오는 중
‘에너지 위기’ 겪는 지금이
전력 시장 개조 적기

입력 2022.07.27 00:00
 
 
 
 
 
 
어느 시장의 건고추 판매 모습. 국내 유통되는 건고추 물량의 40% 이상이 중국산이다. 고관세를 피해 냉동고추로 들여온 후 고추건조기로 말려 팔고 있다. /연합뉴스

국내 건고추 유통량 가운데 40% 이상이 중국산이다. 중국산이 20년 사이 40배 늘었다. 가격은 국산의 절반을 좀 넘는 수준이다. 원래 건고추는 국내로 수입되기 힘들다. 270% 고(高)관세를 물어야 한다. 그 고관세를 피하는 방법이 있다. 고추를 냉동 상태로 들여와 해동시킨 후, 전기로 작동하는 고추건조기로 말려 건고추를 만드는 것이다. 냉동고추 관세는 27%밖에 안 된다.

고추건조기는 뜨거운 바람을 내는 열풍 히터다. 이걸로 고추를 말릴 수 있는 것은 ‘농사용 전기 요금’이 워낙 싸기 때문이다. 지난달 기준 주택용 전기는 ㎾h당 115원, 산업용은 122원인데 농사용은 55원이 안 된다. 영세 농가를 보호하자는 취지일 것이다. 그러나 전체 농민의 0.6%밖에 안되는 대량 전력(100㎾ 이상) 수용가들이 농사용 전기의 45%를 쓴다. 일반 농민인지 의심스럽다. 요즘엔 암호화폐 채굴에도 농사용 전기가 동원된다.

우리 전기 요금 체계의 또 하나 문제는 산업용, 주택용 전기 요금이 뒤집혀 있다는 점이다. EU 경우 산업용 전기 요금이 주택용의 60% 수준이다. 공장 전기는 고압으로 공급돼 배전 비용이 덜 들고 전력 손실도 적다. 원가가 싸게 먹힌다. 그런데도 한국에선 산업용이 주택용보다 비싸게 책정돼 있다.

결정적으로 비정상인 것은 연료 가격 변화가 전기 요금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는 점이다. LNG 수입 단가가 작년 1월부터 1년 새 2.6배가 됐다. 유연탄 가격은 작년의 3배로 폭등했다. 그랬어도 6월 기준 주택용 전기는 1년 전보다 11.8%, 산업용은 6.1% 올랐을 뿐이다. EU는 우크라이나 전쟁의 영향이 충분히 반영되기 전인 올 1분기에 이미 작년보다 32%(가정용)~37%(산업용) 올랐다. 지금은 훨씬 더 뛰었을 것이다.

한전 사장은 “문재인 정부 5년 동안 전기 요금을 올려야 한다고 10번 요청했지만 단 한 번 승인받았다”고 했다. 전기 요금을 올리면 탈원전 정책이 공격받는다는 우려가 앞섰기 때문이다. 전기 요금을 눌러 놓는 바람에 한국의 주택용 전기 요금은 EU의 3분의 1, 산업용은 2분의 1 수준이다. 며칠 전 글로벌 데이터센터 기업들이 한국으로 몰려온다는 뉴스가 전해졌다. 데이터센터는 수만대 서버를 돌리는 전력 블랙홀이다. 외국 데이터센터가 들어오는 것은 투자 유치가 아니다. 중국 건고추처럼 싼 전기 요금을 따라 들어오는 것일 뿐이다. 그러는 사이 한국전력 부채는 150조가 넘었다.14 초 후 SKIP

 

강원도 춘천시에 있는 네이버의 첫 번째 데이터센터 ‘각 춘천’의 내부 모습. 수만대의 서버가 가동되고 있다. 최근 싼 전기 요금을 겨냥해 외국 데이터센터들이 국내로 몰려오고 있다. /네이버

전기 요금이 왜곡되는 건 그것이 ‘정치 요금’이기 때문이다. 산업부 인가(전기사업법)를 받아야 하고 기재부 협의(물가안정에 관한 법률)를 거쳐야 한다. 원가 반영은커녕 복지와 물가관리 수단으로 활용돼왔다. 선거를 앞두고 내리고 선거 후 찔끔 올리는 패턴이 되풀이됐다. 전력거래소 이사장을 지낸 조영탁 교수(한밭대)는 “한국 전기 요금은 정치적 인계철선을 달고 있다”고 했다. 요금을 조정하면 곧바로 정부 책임으로 돌아간다는 뜻이다. 전국 주유소 휘발유 가격은 작년 6월 L당 1577원에서 올 6월 2084원으로 올랐다. 연비 10㎞ 승용차로 연간 1만2000㎞를 몰면 기름값을 작년보다 61만원 더 부담하게 됐다. 그렇더라도 소비자들의 심각한 불만 제기는 없다. 가격이 시장에서 결정된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반면 한 달 350㎾h를 쓰는 가정의 연간 전기 요금 부담은 1년 새 5만원 늘었다. 이 정도의 가격 조정도 정부로선 큰 결심을 해야 한다.

에너지 위기가 가속화돼도 우리 국민과 기업은 위기를 실감하지 못한다. 원가 인상 요인들이 가격에 반영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포퓰리즘 전기 요금 아래선 에너지의 효율화, 관련 신기술·신산업의 등장을 기대할 수 없다. 시장 왜곡을 지금 바로잡지 못하면 기득권 구조와 비효율은 누적된다. 점점 더 손대기 힘들어질 것이다. 150조 부채의 한전을 방치하면 건실한 송·배전망 투자가 어려워진다. 송·배전망이 부실해지면 전력 공급의 안정성이 위협받는다. 탄소중립을 위해 태양광·풍력 전기 비중을 높이려면 변동성을 관리할 수 있도록 전력 시장을 정교하게 재(再)설계해야 한다. 하지만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는 사람이 없다. 그럭저럭 굴러왔는데 굳이 리스크를 떠안을 필요가 있겠냐는 것이다. 전력 시장 개혁 얘기만 나오면 민영화 프레임을 걸어 공격하는 세력도 있다.

전력 시장을 개조하는 것은 고난도 작업이다. 그러나 모순 구조가 부각된 지금이 시스템 개조의 적기일 수 있다. 제도 자체를 손댈 수 있는 기회는 자주 찾아오지 않는다. 정부로부터 독립된 규제위원회에서 합리적 전기 요금을 정하도록 해 전기 요금에 달려 있는 정치 인계철선부터 철거하는 것이 개혁의 첫 단추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