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鮮칼럼 The Column] 반일 구호 외치다 ‘초격차’ 잃어버린 5년
“다시는 지지 않겠다” 공허한 구호 외치는 사이 반도체 산업 우위 잃어
일본 과자 먹으며 워크숍하던 정의연처럼 엉터리 반일주의는 그만
“모든 창작은 (저작권을 주장하기 어려운) 기존 예술의 영향을 받습니다. 그 위에 자신의 독창성을 5~10% 정도 가미할 수만 있어도 대단하고 칭찬받을 일입니다. 저는 오래전부터 그렇게 생각해 왔습니다.” 일본의 음악가 사카모토 류이치가 가수 겸 작곡가인 유희열에게 보낸 이메일 중 일부다.
유희열이 발매하기로 예정했던 새 음반의 수록곡과 사카모토 류이치의 ‘aqua’를 둘러싼 표절 논란 이야기다. 일각에서는 이 메일로 논란이 종식되었다고 주장하지만, 그렇지 않다. 음악적으로 분석해볼 때 ‘표절’이라 할 수는 없어도 문제의 두 곡 사이에 ‘유사성’이 있다고 명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카모토 류이치는 표절 피해를 주장하며 법정 싸움으로 끌고 가는 대신, 대가의 여유를 과시하며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논의를 마무리 짓는 쪽을 택한 셈이다.
논란의 여파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있다. 우리에게 익숙한 온갖 ‘추억의 가요’들이 표절한, 혹은 ‘영향을 받은’ 일본 노래들을 정리한 동영상들이 지금도 유튜브에 업로드되고 있는 중이다. 불과 몇 년, 아니 몇 달 전만 해도 자랑스러운 K팝이 온 세계를 점령할 것이라는 세계관 속에 살고 있었던 20대 이하의 젊은 세대들이 특히 큰 충격을 받는 듯싶다.
하지만 일본의 영향은 그뿐만이 아니다. ‘XX깡’, ‘XX칩’ 등 어린 시절의 추억이 담긴 온갖 과자들. 그중 상당수는 일본 과자와 동일하거나 유사한 제품이다. 만화영화와 주제가들은 또 어떤가. 국가대표 축구팀을 응원할 때 붉은악마가 ‘마징가 Z’ 주제가를 부르자, 반대편에 있던 일본팀 응원단 울트라니폰 측이 ‘왜 저들은 일본 노래를 부를까’라며 의아해했던 일화가 남아 있을 정도다.
대한민국의 유년기. 우리는 경제성장의 궤도에 올라 있었다. 아이들에게 용돈을 쥐여주기 시작했다. 구매력 있는 아동 소비자가 등장한 것이다. 그 수요를 따라잡을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은 우리보다 앞서 고도 성장의 길을 걷고 있던 일본을 ‘참고’하는 것이었다. 신일본제철과 일본강관의 기술 제휴를 통해 세워진 포항제철이 잘 보여주고 있듯 이는 사실상 거의 모든 분야에 해당하는 일이었다.
문제는 일본을 향한 이중적 태도다. 한국이 일본 대중문화를 공식적으로 개방하기 시작한 건 1998년의 일. 그 전까지 한국은 모두가 모든 분야에서 일본을 모방하지만 그 누구도 그 사실을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는 나라였다. 오히려 반공주의만큼이나 거칠고 투박한 반일주의가 사회 전체를 휘감고 있었다. 철학자 슬라보예 지젝의 용어를 빌리자면, 일본의 문화를 향유하면서도 그 사실을 의식적·무의식적으로 부정하는, ‘외설적(obscene)’ 상태에 놓여 있었던 것이다.
2020년 정의기억연대 회원들이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 쉼터인 ‘평화와 치유가 만나는 집’에서 일본 과자를 먹으며 워크숍 뒤풀이를 즐겼던 장면을 떠올려 보자. 지젝이 말한 ‘외설’은 바로 그런 뜻이다. 미국 브랜드의 옷을 입고 아이폰과 아이패드로 무장한 채 반미 운동을 하는 시민단체들 역시 마찬가지다. 외설적인 태도로 반일주의와 반미주의 선동을 해나가는 것이다. 그들은 국민들이 현실 속 일본을 바라보는 것을 원치 않는다. 상상 속 ‘일제’와 ‘외세’를 향한 영원한 독립운동이 지속되기를 바란다. 그래야 외설적 반일주의를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김대중 정권의 일본 대중문화 개방 이후 이러한 모순은 서서히 치유되어 왔다. 일본을 모방하던 시대가 막을 내렸다. 문화예술인과 기업가들은 그간 쌓은 실력을 바탕으로 창의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K팝이 J팝보다 세계적으로 인기를 누리고, 삼성이 소니보다 인지도 높은 브랜드가 된 것이다. 일본을 욕하면서 베끼는 ‘패스트 팔로’ 모델은 이제 더는 통하지 않는다. 세계 10위권 경제 대국으로서 스스로의 길을 개척해야 할 단계에 도달했다는 뜻이다.
문제는 문재인 정권이었다. ‘다시는 일본에 지지 않겠다’며 공허한 구호를 외치던 5년간 한국 반도체 산업은 ‘초격차’를 잃고 말았다. 외설적 반일주의를 공론의 장에서 완전히 추방해야 하는 이유다. 일본의 식민 지배를 받았다는 것, 해방 이후에도 일본을 ‘습작’해왔다는 것은, 자랑스러운 일이 아니지만 억지로 부정할 수도 없는 우리의 역사다. 진정한 ‘창작’은 그러한 과거를 인정할 때 비로소 가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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