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중동천일야화] 사우디·이란 패권 다툼에 튀르키예 가세… ‘중동판 삼국지’ 시대 열렸다
美, 中 견제하려 아시아로 중심 옮기면서 사우디·이란 다툼 치열
튀르키예, 카타르에 군 기지 두고 동지중해·리비아로 영향력 확대
언어·민족 다른 세 나라, 각각 이슬람 정통 내세우며 패권 노려
국제정치에서 힘의 공백은 곧 불안정을 암시한다. 빈 공간은 반드시 다른 힘으로 채워지기 마련이며 이 과정에서 갈등이 초래되곤 하기 때문이다. 미국의 이탈과 맞물린 지금 중동의 모습이 그렇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지난 70여 년간 중동을 좌우했던 힘의 중심은 미국이었다. 미국이 중국 견제를 위해 아시아로 무게 중심을 옮기기 시작하자 중동 내 패권 다툼이 치열해졌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 간 쟁투가 대표적이다.
두 나라는 언어도, 민족도 다르다. 이슬람을 믿지만 종파는 갈린다. 사우디는 아랍 수니파의 전통적 교리인 살라피즘을 근간으로 한다. 완고하며 보수적이다. 부족주의 문화와 결합된 절대왕정 통치체제의 배경이다. 반면 이란은 시아파 혁명 사상에 기반한 이슬람 성직자 통치체제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공화제를 채택, 선거를 시행하지만 최고지도자는 거의 절대권력을 행사한다.
국제정치 무대에서 이들의 입장은 확연히 갈린다. 사우디는 전통적인 친미(親美) 국가다. 미국의 힘에 기대어 지금껏 편하게 살아왔다. 석유를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대신 안전을 보장받아온 터다. 1950년대 중반 이후 중동에서 군사 정변이 유행처럼 이어졌지만, 산유국 사우디만큼은 안전했다. 미국 덕분이었다. 그러므로 미국의 부재는 사우디의 위기다. 어떻게 해서든 미국을 중동에 눌러앉히든가, 아니면 다른 살길을 모색해야 하는 순간이 도래하고 있다. ‘현상 유지(status quo)’를 목표로 하는 사우디의 고민이 깊어지는 지점이다.
이란은 사우디와 반대의 길을 걸었다. 1979년 이슬람 혁명 이후 반미(反美) 국가로 자리매김했다. 52명의 미 대사관 인질들을 444일간 억류한 사건은 여전히 생생하다. 이란은 자국의 혁명을 중동 곳곳에 수출하는 것을 국시로 삼았다. 판을 뒤집으려 하는 ‘현상 변경(revisionist)’ 세력의 대표 격이다. 이런 이란이 국제사회와 핵 관련 협상을 전개하고 있다.
사우디는 이란이 부담스럽다. 이란의 이슬람 혁명은 자국 왕정의 안정성을 뒤흔들기 때문이다. 이란이 인근 국가들에 침투, 시아파 연대를 통해 사우디를 압박하자 사우디는 수니파 국가들을 중심으로 대응 전선을 만들었다. 이라크, 시리아, 레바논(헤즈볼라), 예멘(후티반군) 등이 친이란 시아벨트를 형성하자, 사우디는 아랍에미리트(UAE), 바레인, 요르단, 이집트, 수단 등 수니파 축으로 맞서왔다. 종파 간 대결 양상이었다. 친미와 반미의 대표 격인 사우디-이란 간 진영 구도는 지금까지 중동을 파악하는 오랜 독법(讀法)이었다.
여기에 또다른 경쟁자가 주목받고 있다. 튀르키예(터키)다. 세속주의 공화정을 추구해 온 튀르키예는 오랫동안 스스로 유럽이라 내세웠었다.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동맹국으로 최전선에서 반세기 동안 소련과 마주했다. 권력 구조, 법률 체계, 정부 조직 등의 형태도 유럽에 맞추려 노력했다. 그러나 유럽연합 가입이 지체되며 실망감이 높아졌다. 결국 9·11 테러 이후 유럽 내 반이슬람 정서가 확산되는 상황에서 이슬람을 기치로 내건 에르도안 정부가 2002년 들어선다. 이후 튀르키예는 방향을 전환해 중동에서의 존재감을 높이기 시작했다.
중동에서 사우디는 수니파의 중심 국가를, 이란은 시아파의 선도 국가를 자임하며 각각 자국의 대리 세력들을 역내에 깔아놓았다. 반면 20여 년 전 에르도안 정부의 등장과 함께 뒤늦게 중동에 뛰어 든 튀르키예는 각국의 대중을 파고들었다. 완고한 종교이념에 사로잡힌 사우디나, 과격한 혁명의 그림자가 여전히 짙은 이란보다는 유럽과 비슷하면서도 이슬람 전통을 지켜내는 터키에 매료되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특히 ‘아랍의 봄’ 직후 튀르키예의 위상은 대단했다. 자스민 혁명을 경험한 국가의 국민들은 당시 에르도안이 자신들의 지도자였으면 하는 바람을 공공연히 피력하곤 했다.
그러나 튀르키예의 이슬람 행보가 점차 심화되고 에르도안의 권위주의 성향이 강화되면서 부정적 변화가 나타났다. 특히 카타르와 함께 이슬람 급진주의 정치 단체인 ‘무슬림 형제단’의 후견인 노릇을 하자 역내 국가의 불만을 샀다. 정부 전복을 꾀하는 위험한 집단을 배후에서 조종하며 역내 영향력을 키운다고 인식되고 있기 때문이다. 튀르키예의 공세적 행보는 거침없었다. 카타르에 군 기지를 설치하며 걸프 해역으로 진출했다. 그뿐만 아니라 아라비아해, 소말리아 해역은 물론 동지중해와 북아프리카 리비아까지 영향력을 넓히고 있다. 혹자는 에르도안이 100년 전 패망한 오스만 제국의 재건을 꿈꾸며 스스로 술탄을 자임하는 것 아닌가 하는 의혹의 눈길을 거두지 않고 있다. 이렇듯 에르도안의 튀르키예는 진영을 넘나들며 영향력을 키우는 중이다. 사우디와 이란이 걸프에서 직접 다투는 사이, 튀르키예는 안팎으로 광범위하게 세력을 펼치며 중동판 삼국지의 시대를 여는 느낌이다. 각기 다른 민족으로 다른 언어를 쓰는 이 세 나라들 중 누가 중동의 패권을 차지하게 될까?
현재 구도상 중동에서 특정 국가가 패권을 독점하기는 힘들어 보인다. 압도하며 주변을 평정할 만한 힘을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패권 안정이 힘들다면 세력 균형이 최선이다. 미국 등 국제사회의 바람이기도 하다. 사우디가 현대적 가치와 규범을 수용하고, 이란은 핵 합의를 통해 역내 도발을 자제하며, 터키는 나토 회원국으로서의 국제 공조를 유지하는 그림이다. 모든 상황들이 딱 맞아떨어지는 경우다. 그러나 쉽지 않다. 모두 이슬람의 정통 후계를 자처하며 과거 영화로운 역사의 시대를 자기 정체성의 핵심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사우디는 메카와 메디나의 수호자를, 이란은 이슬람의 혁명정신 수호와 전파를, 튀르키예는 지중해 일대를 아우르던 오스만 제국의 영화를 복원하려고 하고 있다. 힘의 균형은 철저한 이익 계산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현실주의의 절정이다. 종교와 역사 정체성이 과도하게 동원될 경우 합리적 셈법을 기대하기란 어렵다. 흡사 ‘군주’(사우디)와 ‘신의 대리자’(이란)와 ‘술탄’(튀르키예)이 통치하는 중세로의 회귀 같다. 아! 여기에 이스라엘 네타냐후까지 다시 등판할 각이다. 바야흐로 스트롱맨의 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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