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

후쿠다 전 총리 “日, 을사조약 이후 韓 감정 이해를… 韓, 1965년 한일협정 중시해야”

최만섭 2022. 7. 4. 08:44

 

후쿠다 전 총리 “日, 을사조약 이후 韓 감정 이해를… 韓, 1965년 한일협정 중시해야”

[성호철이 만난 사람] 일본 정치권 원로 후쿠다 야스오 전 총리

입력 2022.07.04 03:00
 
 
 
 
 
지난달 14일 도쿄 아카사카 사무실에서 본지와 만난 후쿠다 야스오 전 일본 총리는 “한국의 정권 교체로 좋은 기회가 생겼다”며 “양국의 국내 정치와 상관없이 양국 관계를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상대방의 입장을 헤아리는 ‘오모이야리’ 정신을 방법론으로 제시하며, “윤석열 대통령에게 희망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이동휘 기자

“정치라는 ‘스모그’ , 이 검은 구름이 한국과 일본 국민 간 교류를 방해합니다. 스모그는 본질적으로 좋지 않기에 날려버릴 필요가 있어요.”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5월 취임하면서 한일 관계 개선 조짐이 일고 있는 가운데 일본의 후쿠다 야스오(福田康夫) 전 총리는 ‘스모그론(論)’을 꺼내 들었다.

지난달 14일 도쿄 아카사카에 있는 사무실에서 만난 후쿠다 전 총리는 한국의 정권 교체는 좋은 기회이고, 양국의 국내 정치와 상관없이 양국 관계를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 방법론으로 상대방의 입장을 헤아리고 배려하는 ‘오모이야리(おもいやり)’를 제시했다. “그동안 한국도 일본도 서로에게 오모이야리가 없었다”며 서로를 이해하는 마음이 필요하다고 했다.

후쿠다 전 총리는 8년 전 아베·시진핑의 일·중 정상회담을 막후에서 중재한 것처럼 “한일 관계서도 그런 역할 할 수 없나”라는 질문에 “복신(福神, 행운의 여신)이 돼 볼까”라며 웃었다. 그는 “한국도 일본도 서로에게 작은 긍정적인 메시지라도 보내는 게 중요하다. 윤 대통령이 어떤지 평가할 순 없지만 (그에게) 희망을 가지고 있다. 일본인에게 나쁜 인상 주는 말을 않고 있다. 그것만으로도 이미 직전의 대통령과는 크게 다르다”고 했다.

이전엔 대화 안 되는 분위기, 지금은 달라

-윤석열 정부 출범으로 한일 관계가 어느 정도 개선될 것으로 보나.

“(한국의 새 정부가) 마음을 터 놓고 이야기할 만한 상대인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만난 적이 없으니까. 느낌으론 일본과 서로 이해해보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이전보다 깊은 이야기가 가능할 것 같다. 이전엔 (한일 관계는) S극과 N극이었다. 대화 자체가 안 된다는 분위기였다. 지금은 다르다. 한국의 정권 변화 덕분이다. 작년엔 일본도 정권이 바뀌었다. 새로운 얼굴과 얼굴이 만나 어떤 이야기를 할 것인가, 얼마나 서로를 배려할 것인가, 그런 자세가 일한 양국에는 필요하다.”

-일본은 ‘한일 관계 개선하자’면서 항상 조건을 단다. 한국이 먼저 위안부·징용공 문제 해법을 제시하라고 주장하는데.

“상호 배려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일본도 한국의 반감(反感)이 어디서 기원했는지는 알고 있다. 1905년(을사조약) 이후 일본이 한국에 지나친 일을 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일본이 상대방의 처지를) 이해했다고는 하지만, 더욱 더 한국인의 입장에서 생각해야 한다. 반대로 한국은 일본이 1965년(한일 협정)을 중시한다는 대목을 알아줬으면 한다. 일본은 1965년을 양국 관계의 베이스라고 본다.

러시아가 일방적으로 국제법을 어기고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 만약이지만 중국도 국제법을 어기고 한국을 공격하는 일이 벌어진다면? 이런 시대이니만큼 우린 더욱 국제법을 중요시해야 한다.”

-양국 관계는 1965년 한일 협정에 기반해야 한다는 뜻인가.

“2차 대전 후 전 세계는 유엔과 세계은행 등을 만들고 서로 협력해 새 질서를 만들자고 했다. 법률을 이전보다 훨씬 중요하게 보는 태도로 바뀐 것이다. 물론 (1905년의) 옛날 일이 덜 중요하다는 건 아니다.”

한국, 일본에 대한 무조건 반대 바꿔야

-윤 대통령과 기시다 총리는 언제 정상회담을 가질까.

“둘은 만나지 않으면 안 된다. 만나지 않으면 스모그는 사라질 수 없다. 만나지 않으면 아무것도 안 된다. 일본은 어찌 보면 반(半)쇄국주의다. 미국과는 열심히 만나면서 중국이나 한국과는 만나지 않는다. 좋지 않다. 기시다 총리는 그런 생각(반쇄국주의)이 아니다.

단언컨대 기시다 총리는 한국과도, 중국과도 우호 관계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윤 대통령과 기시다 총리는 한시라도 빨리 만나야 한다. 정상이 만나지 않는다면 국민 감정은 나아질 수 없다. 정치는 중요하다. 다만 한국에도 책임이 있다. 굳이 말하자면 ‘일본이 말하는 건 뭐든지 반대한다’는 감정이 한국에도 있지 않았나. 나도 일본인의 한 사람으로서 ‘(한국이) 그런 감정을 안 바꾸면 만나고 싶지 않다’는 생각도 들었다.”

-후쿠다 전 총리는 8년 전 아베·시진핑의 중일 정상회담을 막후에서 중재했다. 한일 관계서도 그런 역할 할 수 없나.

“복신(福神, 행운의 여신)이 돼볼까? 하하. 사실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대신 한국도 일본도 서로에게 작은 긍정적인 메시지라도 보내는 게 중요하다. 윤 대통령이 어떤지 평가할 순 없지만 (그에게) 희망을 가지고 있다. 일본인에게 나쁜 인상 주는 말을 않고 있다. 그것만으로도 이미 이전 대통령과는 크게 다르다.”

日·中, 물밑에서 움직이는 중

-여러 명의 한국 전임 대통령과 만나왔는데.

“최근 2~3명의 대통령은 어려웠다. 그 전에는 모두 대화가 통하는 사람들이었다. 예컨대 일본에 지나치게 엄격했던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도 대화가 되는 정치인이었다. 그의 임기 말 국제회의에서 옆자리 앉았는데 평범하게 대화가 통했다. 반일이나 이런 느낌이 아니었다. 이런 사람과 계속 이야기한다면 괜찮겠다고 생각했을 정도였다.

 
2009년 5월 29일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에 참석한 후쿠다 야스오 전 일본 총리가 헌화하기 위해 국화꽃을 받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청와대에서 나카소네 전 총리 등과 함께 만난 적도 있다. 노 전 대통령이 갑자기 ‘야스쿠니 신사에 가보고 싶은데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었다. 대환영한다고 답했다. 재밌는 분이다. 상황에 따라선 갈 수 있다는 말투였다. 아마도 ‘역사 문제나 교과서 문제 등을 일본이 양보한다면’이라는 얘기였는지도 모르겠다. 만약 한국 대통령이 그렇게까지 해준다면 일본에서도 과거의 주장은 그만두자는 말이 나왔을지도 모른다.”

-일본은 중국과 대립 상태다. 미국에선 중국의 대만 침공 우려도 나온다.

“꼭 그렇지는 않다. 양국도 물밑에선 움직이고 있다. 일본과 중국이 대립이라고 단정해선 안 된다. (미국 측 침공 우려 발언은) 말만 해보는 측면이 있다. 미국이 진짜로 중국과 전쟁하겠나. 위험성은 미국이 더 잘 안다. 애드벌룬을 띄워 중국의 반응과 국민 여론을 보려는 것이다. 발언으로 중국의 행동 변화를 촉구하거나 자국 내 지지도를 높이려는 의도가 크다고 본다. 각국 정치 지도자들은 대만 무력 충돌이 누구에게도 도움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중국 시진핑 주석과 친분이 깊다. 곁에서 본 시진핑은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다른가. 침공 가능성은 진짜 없나.

“전혀 그럴 리 없다. 국가 지도자를 평가할 때는 해당국의 내부 사정을 고려해야 한다. 국가 지도자는 국민 여론이나 인기를 의식해 자기 신념과는 다른 행동을 하기도 한다. 시 주석도 마찬가지다. 중국인들은 모두 대만을 자국 일부로 본다. 중국인의 여론이다. 바이든 미 대통령도 중국의 상황을 이해하고 있다. 예컨대 절대 중국이 ‘대만은 중국 일부’라는 대목에선 양보하지 않으리라는 점을 이해한다. 일본도 이 점을 안다. 결국 (하나의 중국은) 따르지 않으면 안 되는, 전후의 질서다.”

-중국이 대만 위협 발언을 계속 하고 있는데.

“독립이란 건, 대만이 혼자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독립을 인정하는) 응원단이 필요하다. 그게 미국이며 일본일지 모른다. 중국의 위협 발언은 그런 응원단에게 (들으라고) 하는 것이다. 시진핑 주석은 (침공을) 선택할 사람이 아니다. 우려하지 않는다.”

북핵·미사일 문제엔 더 주체적으로

-일본은 중국의 위협을 거론하며 방위비 2배 증액을 추진 중인데.

“일본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란 새로운 사정이 생겼다. 북한 문제도 있다. 일본이 그동안 (북한 핵·미사일 문제에) 지나치게 조용했다는 반성도 있다. 방위비 증액을 추진하는 이유다. 다만 정말로 국내총생산(GDP)의 2% 수준으로 늘릴지는 알 수 없다. 개인적으로는 현재 일본 경제력 등을 고려, 타국과 비슷한 2% 수준으로 방위비 증액이 필요하다고 본다.”

-일본의 방위비 증액은 동북아에 군비 증강 경쟁을 부를 수도 있지 않나.

“한국도 중국도 방위비를 연쇄적으로 인상 경쟁할 수 있다. 방위비 증액이 바람직한 결단은 아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론 한국도 지속적으로 방위비를 늘려왔다. 반면 일본은 GDP 1% 수준에 머물렀다. 일본 역시 증액하지 않을 수 없다. 강조하고 싶은 건 일본은 전쟁하지 않는 국가라는 점이다. 헌법이 규정한다. 방위비를 증액한다고 해도 일본이 전쟁을 벌일 일은 없다.”

-북한의 계속되는 도발에 대한 해법은.

“우호적인 관계 개선으로 해결하는 것밖에 없다. 머리 아픈 문제이지만.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가 북한을 방문한 적이 있는데 그런 맥락이다. 비록 좌절했지만. 북한이 평화적인 국가로 바뀌고 자연스럽게 핵을 포기하길 바란다. 남북이 계속 대화해서 문제를 풀어야 한다.”

-남북 대화는 쉽지 않다. 북한에 우호적이던 문재인 전 대통령도 실패했다.

“북한 문제는 미국 문제가 아니라 남북 문제라는 점이 중요하다. 한국이 북한 핵·미사일 문제 해결에 더 주체적으로 움직여야 한다고 본다. 적어도 한·중·일 3국은 우호 관계여야 한다. 동북아의 궁극적인 목표다. 여기에 북한까지 들어와 준다면 더 좋다. 미국·유럽과 같은 다른 지역에선 동북아를 세계의 화약고라고 본다. 북한·대만 문제를 떠안고 있다고 말이다. 다른 나라에 그렇게 비치는 것 자체가 부끄럽다. 그 책임은 일본과 한국 모두에 있다.”

☞후쿠다 야스오

1936년 도쿄에서 태어나 줄곧 군마현에서 자랐다. 와세다대를 졸업했고, 17년간 석유 회사에 근무했다. 40세에 정계 입문해 군마현에서 중의원에 7차례 당선됐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내각에서 3년여 관방장관을 지냈고, 2007년 총리에 취임했다. 일본 총리 가운데 아시아 국가와 외교를 중시했던 인물로, ‘중국과 파이프를 가장 깊이 뚫어 놓은 정치인’으로 통한다. 부친은 고(故) 후쿠다 다케오(1905~1995) 총리이고, 아들은 후쿠다 다쓰오 자민당 총무회장이다.

 
 
조선일보 도쿄특파원, 前 테크취재팀장, "테크놀로지의 곁에서 언제나 사람을 취재합니다" 책 <창업가의 답> <소통하는 문화권력 TW세대> <와!일본, 응집하는 일본인의 의식구조 해부>, 번역서 <손에 잡히는 유비쿼터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