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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왕이 부장의 ‘5개 요구’...한국 협박 도를 넘었다 [송의달 LIVE][차이나 프리즘]

최만섭 2022. 8. 11. 04:57

中 왕이 부장의 ‘5개 요구’...한국 협박 도를 넘었다 [송의달 LIVE]

[차이나 프리즘]

입력 2022.08.10 17:10
 
 
 
 
 

한중 수교 30주년 기념일(8월24일)을 정확히 보름 앞두고 이달 9일 열린 양국 외교 장관 회담에서 중국이 5개항의 요구를 했다. 중국의 요구는 한국의 주권(主權)과 독립을 침해하는 내용 일색이어서 한국 협박이 도(度)를 넘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박진 한국 외교부 장관과 왕이 중국 외교부장은 이달 9일 오후 4시(현지시간) 중국 산둥(山東)성 칭다오(靑島)의 지모구청쥔란(卽墨古城君蘭) 호텔에서 윤석열 정부 출범후 첫 양국 외교장관 회담을 가졌다.

박진 외교부 장관이 2022년 8월 9일 중국 칭다오시 지모구 지모고성군란호텔에서 왕이 중국 외교부장과 회담을 하고 있다./외교부 제공

◇韓中 외교장관 300분 간 만나

두차례 회담과 100분에 걸친 만찬(晩餐)을 포함해 양측은 300분 동안 대화를 했다. 하지만 양측은 한 줄의 공동 성명도 내지 못한 채 회담 내용을 각각 보도자료로 발표했다.

보도자료는 한국 외교부가 먼저 게시하는 게 관례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중국이 8월 9일 밤 9시 30분 넘어 외교부 홈페이지에 올렸고, 한국은 10일 새벽 A4용지 4쪽의 보도자료를 공개했다.

양측 발표 내용을 종합해 보면, 공급망·사드(THAAD)·북핵 같은 주요 현안 마다 입장 차이가 컸다. 특히 중국은 대한민국 주권을 일방적으로 무시하는 요구를 했다. 발표문 제목부터 ‘5개 응당<마땅히 해야할 것>을 견지하라(堅持五个 ‘应当')이다. 왕이는 이날 “’5개 응당’은 “(한중) 양국민이 바라는 최대 공약수이자 시대 흐름에 따른 필연적 요구”라고도 했다.

칭다오 한·중 외교장관회담 중국 외교부 발표문/중국 외교부 사이트 캡처

◇한국 겁박 일색...‘5개 응당’

5개 응당’은 얼핏 당연한 얘기처럼 들린다. 그러나 외교 언어의 본질은 ‘입으로 달콤한 말을 하면서 배에는 칼을 품고 있는’[口蜜腹劍·구밀복검] 것이다. 중국은 이번 회담에서 그럴싸한 단어로 한국에 대한 ‘속내’를 비수(匕首·날이 예리하고 짧은 칼)처럼 드러냈다. 부드럽게 포장한 ‘5개 응당’을 하나씩 뜯어보면 이렇다.

1. 마땅히 독립자주 노선을 견지해 외부 간섭을 배제해야 한다(应当坚持独立自主,不受外界干扰)’

이는 한국이 독립국·자주국도 아니라고 시사(示唆)하는 표현이다. 동시에 외부 간섭 배제라는 말을 통해 한국 외교의 근간인 한미(韓美)동맹 파기를 요구하고 있다. 한국을 상대로 미국의 요구와 영향력을 거부하고 미국 편향 외교에서 벗어나라는 내정 간섭적 요구이다.

2. 마땅히 근린 우호를 견지해 서로의 중대 관심사항을 배려해야 한다(应当坚持睦邻友好, 照顾彼此重大关切)

중국이 말하는 ‘중대 관심사항’은 자국 안보를 위협한다고 주장하는 한국 내 사드(THAAD) 배치를 지칭한다. 문재인 정부때 한국 정부가 얘기한 ‘사드3불’을 윤석열 정부도 준수하라는 요구이다. ‘사드 3불(不)’은 ▶한국에 사드를 추가 배치하지 않고, ▶한국이 미국의 미사일방어(MD) 체계에 편입되지 않으며, ▶한미일 군사동맹도 결성하지 않는다는 3개항이다.

군 수송헬기가 2017년 8월13일 오전 경북 성주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기지에 물자를 실어 나르고 있다./뉴스1

3. 마땅히 개방과 협력을 견지해 공급망 안정을 수호해야 한다(应当坚持开放共赢,维护产供链稳定畅通)

이는 반도체와 전기차 배터리·우주위성·희토류 분야에서 탈(脫)중국을 겨냥한 바이든 행정부 주도의 공급망 동맹에 한국이 가입하지 말라는 주장으로 풀이된다. 올해 5월 미국 주도의 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IPEF)에 창립멤버로 가입한 한국 정부는 ‘반도체 공급망 협력 대화’, 이른바 ‘칩4′ 참여를 긍정적으로 검토 중이다.

4. 마땅히 평등과 존중을 견지해 상호 내정에 간섭하지 말아야 한다(应当坚持平等尊重,互不干涉内政).

 

상호 내정은, 중국이 자국 영토라고 일방적으로 주장하는 대만 문제를 지칭한다. 낸시 펠로시 미국 연방하원의장의 최근 대만 방문을 계기로 다시 불거진 대만 문제와 관련, 한국이 중국측의 입장을 무조건 따르거나 최소한 언급하지 말고 가만 있으라는 강요이다.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사진 왼쪽)이 2022년 8월 3일 대만 타이베이에서 차이잉원 대만 총통을 만나 손을 흔들고 있다. /대만 총통실

5. 마땅히 다자주의를 견지해 유엔 헌장의 원칙을 준수한다(应当坚持多边主义,遵守联合国宪章宗旨原则)

미국 주도의 일극(一極) 체제가 끝나고 다자(多者)주의 체제로 가고 있는 세계 흐름을 적시하고 한국이 미국을 비롯한 서방국가들의 각종 대중(對中) 제재에 동참하지 말 것을 촉구한 것이다. ‘다자주의’는 중국이 국제무대에서 미국을 비판할 때 활용하는 논리 중 하나이다.

‘5개 응당’을 요약하자면, 미·중 경쟁이 치열해지는 와중에, ‘한국은 미국 편에 서지 말라’는 협박이다. 한미(韓美)동맹 강화를 제1 외교 노선으로 내건 윤석열 정부의 기세(氣勢)를 꺾고 ‘5개 응당’을 한국 상대 원칙으로 삼겠다고 밝힌 것이다. 갓 출범한 한국의 새 정부에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이를 지키지 않으면 응징하겠다는 ‘겁박’이기도 하다.

◇한국에 ‘외교 무례’ 자행하는 중국

더욱이 왕이가 말한 ‘양국 국민의 최대 공약수’라는 표현은 한국 국민들의 의사는 묻지도 않고 일방적으로 중국이 갖다 부친 오만(傲慢)의 극치에 가깝다. 중국은 대한민국 외교 수장(首長)과 주중대사에게 ‘외교적 무례(無禮)’도 서슴지 않고 있다.

이번 외교 장관회담을 수도 베이징이 아닌 칭다오에서 연 것부터 그렇다. 중국은 이를 ‘코로나 방역 때문’이라고 했다. 하지만 지난달 26일 조코 위도도 인도네시아 대통령은 베이징에서 시진핑 총서기와 회담했다.

지난달 19일 중국에 도착한 정재호 신임 주중한국대사는 코로나 확진자가 아니었다. 그런데도 그는 베이징 대사관으로 가지 못하고 톈진(天津) 시내 호텔에서 10일 동안 격리해야 했다. 중국이 한국 정부를 하대(下待)하고 경멸(輕蔑)하기에 벌어진 모습들이다.

박진 한국 외교부 장관(왼쪽)이 2022년 8월 9일 중국 산둥성 칭다오에서 왕이 중국 외교부장과 팔을 대며 악수하고 있다./외교부 제공
정재호 제14대 주중 대사가 2022년 8월 1일 베이징 주중 대한민국 대사관에서 취임식에서 인사하고 있다./조선일보DB

아쉬운 것은 중국의 도를 넘은 오만방자한 언행에 대한 한국 정부의 대응이다. 박진 장관은 이달 9일 회담 모두(冒頭) 발언에서 “한국은 국익과 원칙에 따라 화이부동(和而不同·공동의 이익을 찾되 차이점은 인정한다)의 정신으로 중국과의 협력을 모색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尹 정부, 중국에 말과 행동으로 당당함 보여야”

중국의 강경함과 한국의 신중함이 돋보이는 대목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중국 전문가는 이렇게 말했다.

“한국이 중국 배제가 아니라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가치에 따라 움직인다는 걸 강조한 발언이지만, 윤석열 정부도 문재인 정부처럼 중국에 저자세(低姿勢)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최근 미·중 전략 경쟁 격화 속에 한국이 갖는 지정학(地政學)·지경학(地經學)적 가치는 갈수록 상승하고 있다. 두 나라 가운데 한국을 자기 편으로 끌어들이는 쪽이 승리할 가능성이 훨씬 높아지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 정부가 강력한 대중(對中) 외교 원칙을 중국에 천명하고 당당하게 대응할수록, 한국이 중국으로부터 무시당하지 않고 존중받을 수 있다는 지적이 많다.

주재우 경희대 교수는 “중국의 ‘5개 요구’가 일고의 가치도 없다는 것을 윤석열 정부가 말과 행동으로 분명하게 보여줘야 한다”며 “한국 국민의 80%가 중국을 싫어하고 있는 현실을 윤 정부가 명심하고 지혜롭게 활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선일보에서 홍콩특파원, 디지털뉴스부장, 산업1부장, 오피니언 에디터, 선임기자로 일했고 조선비즈에서 대표이사(CEO)로 근무했습니다. 저서 : <뉴욕타임스의 디지털 혁명>(2021), <세상을 바꾼 7인의 자기혁신 노트>(2020), <세계를 움직이는 미국의회>(2000)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