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

[강천석 칼럼] ‘외교는 대수로울 게 없다(外交無大事)’

최만섭 2022. 8. 13. 20:27

[강천석 칼럼] ‘외교는 대수로울 게 없다(外交無大事)’

세계에서 한국을 가장 無禮하게 대하는 중국
中國夢 이빨 드러낼 때 한국이 제일 먼저 위험

입력 2022.08.13 03:20
 
 
 
 
 

한국과 외교 관계를 맺고 있는 국가 가운데 한국을 가장 무례(無禮)하게 대하는 나라가 중국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베이징에서 몇 끼니를 혼밥으로 때웠다.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 말대로 중국은 식사 환대(歡待)를 중요한 외교술(外交術)로 삼고 있는 나라다. 웬만한 나라 국가 원수나 정부 수반(首班)이 방문하면 총서기·총리·정치국 상무위원들이 돌아가며 만찬·오찬을 베풀어 접대받는 측이 지쳐 나가떨어지는 경우도 흔하다.

그런 중국이 한국 대통령 특사의 시진핑 면담 자리 테이블 높이를 낮춰 예사로 창피를 준다. 중국 현대 외교의 틀을 만든 저우언라이(周恩來) 전 총리는 ‘외교무소사(外交無小事)’라 했다. ‘외교에는 사소한 일이 없다’는 뜻이다. 외교 도리에 어긋난 중국 처사에는 다 무슨 계산과 꿍꿍이가 있다.

박진 외교부 장관(왼쪽)이 9일 중국 산둥성 칭다오에서 열린 한중외교장관회담에서 왕이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외교부

지난 9일 중국 산둥성 칭다오(靑島)에서 한중 외교장관 회담이 열렸다. 한국 외교부는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첫 장관 회담 장소가 베이징이 아니라 칭다오가 된 데 대해 ‘코로나 때문’이라는 중국 설명을 보도진에게 전했다. 인도네시아 대통령은 지난 달 26일 ‘코로나 위협에도 불구하고’ 베이징에서 시진핑 총서기와 회담했다.

한중 외교장관은 두 차례 회담과 만찬 등 5시간을 함께하며 서로 할 말은 한 듯했으나 공동성명은 내지 못했다. 회담 후 중국 외교부는 홈페이지에 ‘5가지 ‘마땅히’ 해야할 것(堅持五個應當·견지오개응당)’이란 제목의 중국 측 발표문을 올렸다. 왕이(王毅) 중국 장관은 ‘이 다섯 가지는 한중 국민이 바라는 최대공약수이자 시대 흐름에 따른 필연적 요구’라고 했다.

‘마땅히’라는 단어로 시작하는 5개 사항에 담긴 중국 속뜻은 ‘한미동맹은 독립 자주 포기이며’ ‘문재인 정권의 3불(不) 정책을 이어받고’ ‘미국 주도 반도체 공급망 협력 대화에 참여하지 말고’ ‘대만 문제는 중국 내정(內政)이라는 중국 입장을 따르며’ ‘미국 중심 국제 질서는 부당(不當)하다’는 ‘중국의 소리 방송(VOC)’이나 다름없다. ‘상호 내정에 간섭해선 안 된다’는 명분으로 한국 내정에 노골적으로 간섭하는 내용이다.

중국의 ‘주먹 외교’를 상대해야 하는 아시아 모든 나라가 지혜를 짜고 힘을 모으고 있다. 자주와 독립을 지키려면 정부의 대중(對中) 정책에 대한 국민 이해와 고통을 인내(忍耐)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동맹국의 도움도 있어야 한다. 중국은 상대국의 대응 방식을 보고 반발·위협·보복의 수위(水位)를 조절한다.

 

미국은 일본 내(內) 미군 기지에 한국보다 앞서 사드를 배치했다. 중국은 말 폭탄을 퍼부었으나 일회성(一回性)으로 끝났다. 센카쿠(尖閣)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釣魚島) 영토 분쟁 때는 희귀 금속 원료의 일본 수출 금지령을 내렸으나 일본이 다른 나라에서 직접 광산을 개발하고 그 바람에 희귀 금속 원료 가격이 폭락하자 보복을 접었다. 중국은 미일동맹이 흔들리던 기간에 집중 공세(攻勢)를 폈다.

베트남은 석유 자원이 풍부한 남중국해 파라셀군도(群島)에 대해 중국이 영유권을 기정사실화(旣定事實化)하려는 움직임을 보일 때마다 해군 함정을 파견해 맞섰다. 그러면서도 대외적으론 공표하지 않는다. 국민을 지나치게 흥분시키거나 중국을 불필요하게 자극하지 않기 위해서다. ‘뜨겁고 냉철한 대응’이다. 왕이 중국 외교장관은 작년 베트남 방문 때 “남중국해 양국 해상 문제를 ‘적당한 위치’에 두어 정세를 복잡하게 만들거나 분쟁을 확대하는 일방적 조치를 취하지 말자”며 너그러운 척 물러섰다.

서울-베이징 거리는 952㎞로 베이징-도쿄(2093㎞), 베이징-하노이(2328㎞)보다 훨씬 가깝다. 한국보다 8배나 큰 경제력과 세계 제2위 군사력 압박은 한국에 훨씬 강하게 작용한다. 동맹국이자 세계 1위 경제력과 군사력을 지닌 미국 워싱턴과 서울 거리는 1만1157㎞다. 국가 영향력은 태풍과 달리 먼바다를 건너면서 약해진다. 한국은 중국과는 너무 가깝고 미국과는 너무 멀다. 중국의 대국몽(大國夢)이 이빨을 드러내는 순간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나라가 된다.

미국 내 의전(儀典) 서열 3위인 낸시 펠로시 미 하원의장 한국 도착 때 한국 측에선 아무도 공항에 나가지 않았다. 펠로시 방문국 중 한국만 그랬다. ‘외교는 대수로울 게 없다(外交無大事, 외교무대사)’는 것이다. 혀를 차야 하나 야단을 쳐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