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

[한삼희의 환경칼럼] 3분 진료의 성과로 보는 ‘한국 속도’의 힘

최만섭 2022. 6. 15. 05:17

[한삼희의 환경칼럼] 3분 진료의 성과로 보는 ‘한국 속도’의 힘

‘3분 진료’ 비판 많지만
싼 진료비와 수준 높은 의료의 비결
신한울 환경평가 했는데
또 한번 평가로 3년 허송은
‘한국 속도’에 역행

입력 2022.06.15 00:05
 
 
 
 
 
 
OECD 'Health at a Glance(2019)'에 실린 각국의 진료비 단가 비교. 미국을 100이라고 할 때 OECD 평균은 72, 한국은 48이다.

선진 22국 중 한국이 1인당 최저 의료비를 쓰고도 암 사망률은 가장 낮다는 뉴스가 있었다. 미국 예일대 연구팀이 의학저널에 발표했다. 한국인의 1인당 연간 의료비(2600달러)는 주요 선진국의 절반도 안 됐다. 그런데도 암 사망률(나이 보정)은 최저였다.

왜 그럴까 생각해봤다. 그 결과 한국 의료의 강점은 ‘3분 진료’의 속도에 있다는 나름의 결론에 도달했다. OECD가 코로나 직전인 2019년 발간한 ‘한눈에 보는 건강(Health at a Glance)’이란 통계집을 훑어보고 갖게 된 생각이다. 예일대 논문도 그렇지만 OECD 자료집도 얼핏 보면 모순적이다. 한국의 1인당 진료비 지출은 보잘것없다. OECD 36국 전체 평균의 80%밖에 안된다. 진료 단가부터가 아주 저렴했다. OECD 평균의 3분의 2, 미국의 2분의 1 수준이다. 건강보험 정착을 위해 정부가 수가를 억제해왔기 때문이다.

OECD 'Health at a Glance(2019)'에 실린 각국의 '의사 한 명당 연간 환자 상담 건수' 통계 비교. 한국이 7080명으로 압도적인 1위이다.

인구 1000명당 의사 숫자도 OECD 평균(3.5명)의 3분의 2(2.3명)였다. 진료비 단가가 싸고, 의사 숫자도 적으니 의료 수준은 형편없어야 맞다. 그러나 한국 의료 성과는 괄목할 만하다. 대장암·위암 5년 생존율은 1위, 폐암 생존율은 3위다. ‘치료할 수 있었는데 치료 못 한 사망’은 넷째로 적었다. ‘적은 의료비 지출, 최고 의료 성과’의 수수께끼를 푸는 열쇠는 뭘까. 전문가들은 여러 세밀한 원인들을 열거한다. 그러나 필자 생각엔 의료기관의 낮은 문턱, 의사의 역량이란 두 가지가 핵심이라고 본다. 무엇보다 한국인은 언제든 필요할 때 원하는 의료기관을 찾아가 진료받을 수 있다. 그 결과 국민 1인당 연간 의사 상담 건수가 OECD 1위(평균이 6.8회인데 한국은 16.6회)였다. 의사 숫자는 적은 편인데도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의사 한 사람이 많은 환자를 보기 때문이다. 연간 한 사람의 의사가 상담하는 환자 수가 OECD 평균은 2181명인데, 한국은 무려 7080명나 됐다.

한마디로 박리다매다. OECD 평균과 비교해 3분의 2 규모인 의사가, 3분의 2의 진료비를 받으며, 각자 세 배 넘는 환자를 본다. 그렇게 되면 한국인은 다른 나라보다 진료비는 적게 내면서, 두 배 진료를 받을 수 있고, 의사는 두 배 소득을 번다. 결과적으로 한국 의사는 집중력 있게 많은 환자를 봐 얻은 높은 수익으로 첨단 설비에 충분한 투자를 할 수 있다. 한국의 병상 숫자(인구 1000명당 12.3개)는 OECD 평균(4.7개)의 2.6배나 된다. 병상을 설치하려면 그걸 운영할 설비와 인프라도 있어야 한다. 한국만큼 MRI, CT를 갖춘 나라가 드물다.

 
OECD의 'Health at a Glance 2019' 자료집에 실린 '치료할 수 있었으나 숨진 사망자(인구 10만명당)' 숫자 각국 비교 자료. 한국의 진료 성공률이 상당히 높은 편임을 알 수 있다.

한국의 이런 종합 의료 역량의 바탕에 ‘3분 진료’가 있는 것 아니냐는 생각이다. 3분 진료를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의사가 넉넉한 시간을 배정해 성의 있게 진료해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싼 진료비와 신속 진료’엔 부작용도 있다. 과잉 진료의 위험이 있고, 의사와 환자 사이 신뢰가 부족할 수 있다. 하지만 거기에 더 큰 이익이 있는 건 아닐까.

서울대병원 어느 의사가 미국 체류 중 현지 병원에서 아이를 진료받고는 작년 가을 병원 내부망에 ‘3분 진료의 미학’이란 글을 올렸다. 의사는 “비즈니스 좌석은 이코노미보다 쾌적하긴 하다”면서 “(그러나) 왜 3분 만에 할 수 있는 진료를 30분 하고 10배 진료비를 받는 건가?”라는 의문을 제기했다. 한국 의사는 많은 환자를 봐 단련된 숙련도를 갖고 빠른 속도로 진료를 더 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영국, 이탈리아 같은 공공의료 위주 국가에선 의사를 만나려면 일주일 이상 기다리기 일쑤라고 한다. 동네 의료기관 설비는 양호실 수준이더라는 얘기들도 한다. 사보험 위주인 미국에선 비싼 치료비 때문에 병원에 못 가는 사람이 많다. 한국에선 환자가 기다릴 필요 없이 첨단 장비의 의료기관을 찾아가 신속 진료를 받을 수 있다. 더구나 진료비는 싸고, 의료 수준은 높다.

의료 분야만의 얘기는 아닐 것이다. 겨울밤 보일러가 고장 났을 때 전화 신고를 하면 거의 틀림없이 기사가 찾아와 끙끙 대면서 그날 밤으로 고쳐주고 간다. 그걸 보면서 감동했던 적이 여러 번이다. 한국 사회엔 확실히 ‘시간 압축’의 DNA가 있다. 그것이 한국을 여기까지 끌고 올라온 저력이기도 할 것이다.

맥락은 다른 얘기지만, 시간 압축의 관점에서 볼 때 문재인 정부가 중단시킨 신한울 원전 3, 4호기의 건설을 재개하려면 이미 5년에 걸쳐 한 번 했던 환경영향평가를 다시 한번 해야 한다는 얘기는 정말 어이가 없다. 문 정부가 탈원전으로 5년을 허송하는 바람에 벌어진 일인데, ‘속도의 나라’ 한국에서 이런 문제로 발목이 잡혀 3년을 더 허비해야 한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