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

[김철중의 생로병사] 붙여야 산다, 패치 의료 시대

최만섭 2022. 6. 7. 05:23

[김철중의 생로병사] 붙여야 산다, 패치 의료 시대

입력 2022.06.07 03:00
 
 
 
 
 

50대 후반 기업 임원인 권모씨는 왼쪽 팔뚝에 24시간 혈당 측정기를 붙이고 다닌다. 당뇨병이라는 말에 혈당 관리를 철저히 하기 위해서다. 연속 혈당 측정기로 불리는 이 장치는 동전 크기로 피부에 붙여 사용한다. 피부 안으로 들어간 센서가 당 수치를 실시간으로 잰다. 장치에 스마트폰을 갖다 대면 현재의 당 수치가 액정에 표시된다. 기존에는 혈당이 궁금할 때마다 손가락 끝을 미세 바늘로 찔러, 거기서 나온 핏방울을 검사지에 묻혀 쟀다. 사실상 실시간 혈당 변화를 알기가 어려웠다. 이제는 측정기를 몸에 붙이면 음식 먹을 때마다 바로 혈당 변화를 알 수 있다.

한 제약회사의 연속혈당측정기를 붙이고 수영을 하는 모습.

혈당이 가파르게 오르면 이를 대사하는 인슐린 수요가 갑자기 늘어나 인슐린을 만드는 췌장이 지친다. 당뇨병이 악화될 수 있다. 고혈당 상태는 마치 가시 달린 구슬(고혈당)이 혈관 속을 돌아다니며 내피를 갉아먹는 것과 같다. 당뇨병 환자에게 심혈관질환이 잘 생기는 이유다. 식사를 하고 나서 혈당이 정상 범위 내에서 천천히 올랐다가 천천히 내려오는 게 가장 좋다.

무엇을 어떻게 먹을 때 혈당이 가파르게 오르는지, 반대로 저혈당에 빠지는지를 패치형 혈당 측정기 덕에 즉각적으로 파악할 수 있게 되자, 사람마다 놀라운 현상이 생긴다. 권씨는 혈당 측정기를 붙이고 평소 즐겨 찾던 콩국수 집을 찾았다. 당뇨병에 좋다고 해서 콩 음식점을 간 건데, 아뿔싸! 콩국수 먹고 혈당이 크게 올랐다. 어인 일인가 해서 식당 주인에게 물으니, 콩국수에 설탕을 넣는다는 답이 나왔다. 그렇지 않으면 비려서 맛이 없다는 것이다. 당뇨에 좋다는 건강식품 OO가루도 붙인 김에 측정해본 결과 혈당을 올리기는 마찬가지였다. 자장면을 먹으면 혈당이 많이 올라갈 줄 알았는데, 크게 오르지 않아 안도했다고 한다. 커피 믹스는 이제 사양한다.

내분비내과 전문의들은 몸에 붙이는 24시간 연속 혈당 측정으로, 같은 음식을 먹어도 사람마다, 시간마다 혈당 올라가는 게 다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말한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혈당 빨리 올리는 탄수화물인 밥을 안 먹고 고기 스테이크를 먹었는데, 되레 혈당이 크게 올랐다. 그 사람에게 고기 대신 탄수화물과 채소를 섞은 음식을 주니 되레 혈당이 떨어졌다. 같은 고기를 먹더라도 채소 먼저 먹고 고기를 먹으면 혈당이 천천히 올라가는 경우도 꽤 있다. 이제 무슨 음식은 뭐에 좋다는 공식형 식단은 치워야 한다. 개인 혈당 변화별 탄력 식단이 필요하다.

 
그림=이철원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60대 초반 최모씨는 부정맥 진단을 ‘겨우’ 받았다. 갑자기 불안하고 심장이 불규칙하게 뛰는 증세가 있었지만, 병원에 가면 심장 박동이 진정돼 심전도를 찍으면 정상으로 나왔다. 공황장애가 아닐까 하는 오해도 받았다. 부정맥은 발생 당시 심전도를 봐야 정확한 진단이 가능하다.

이에 최씨는 몸에 붙이고 다니는 패치형 심전도 측정 장치를 가슴에 붙였다. 일상 생활 속에서 24시간 심전도 체크가 이뤄진다. 심전도는 와이파이로 스마트폰으로 전송돼 기록된다. 이는 병원 진단 센터로도 전송될 수 있다. 최씨는 이 과정을 통해 부정맥 진단을 받았고, 현재는 약물 치료를 받아 관리하고 있다.

요즘은 파스처럼 몸에 붙여 생체 지표를 측정하는 ‘패치(patch) 의료’ 시대다. 치료 약물도 먹거나 주사하지 않고 붙여서 주입한다. 치매 환자들은 제 시간에 약 먹는 것조차 잊을 수 있다. 치매 약물을 마이크로 바늘 수십 개에 담아 패치로 붙이면, 피부를 통해 약물이 들어간다. 하루에 한 번 등이나 배에 붙여서 24시간 동안 일정 약물 농도가 지속적으로 들어가게 한다.

조현병 환자도 증상이 심할 경우 규칙적으로 약물 복용하기가 힘들 수 있다. 여기에도 하루 한 번 붙이는 패치 약을 쓴다.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증후군(ADHD), 전립선 비대증 등에도 붙임 치료가 나온다. 극심한 통증을 겪는 환자들은 마약성 진통제 펜타닐 패치를 붙인다. 모르핀 등과 같은 약물로 장시간 통증 완화를 위해 피부에 부착해 사용하는 강력한 진통제다. 약효를 맛본 사람들은 붙이는 것만 고집한다.

24시간 실시간으로 각종 생체 건강 지표를 스스로 확인해 볼 수 있게 되다 보니, 새로운 ‘건강 염려증’이 등장하고 있다. 너무 자주 자기 혈당 수치를 들여다 본다. 이들은 고당에 울고, 저당에 웃는, 당희당비(糖喜糖悲) 증상을 보인다. 크지 않은 혈압 변화에도 진료실을 두드리고, 조그만 심전도 이상 현상에도 깜짝 놀라서 응급실을 찾는다. 모르는 게 약일 법한 것인데, 아는 게 병이 된 셈이다. 뭐든 처음이면 불안하다. 더 많이 알게 되고, 경험이 쌓이면, 패치 유발형 염려증은 줄어들지 싶다. 앞으로 붙여야 살고, 차고 다녀야 건강해지는 시대가 된다. 붙임성 있는 사람이 잘 사는 법이다.

 
 
움직이는 고령사회, 어울리는 한국사회를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