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

[명화 돋보기] 모란은 부귀영화, 연꽃은 '군자의 덕' 상징했어요

최만섭 2022. 6. 6. 06:48

[명화 돋보기] 모란은 부귀영화, 연꽃은 '군자의 덕' 상징했어요

입력 : 2022.06.06 03:30

우리나라의 여름꽃

 ①19세기 민화, ‘모란도’, 8첩 병풍 중 일부. ②강세황, ‘향기는 멀수록 맑다’. ③김홍도, ‘연꽃과 고추잠자리’. ④신사임당, ‘수박과 들쥐’. /개인소장·간송미술관·국립중앙박물관
그림 속의 꽃은 향기는 없지만 시들지 않아 언제든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요. 꽃은 전 세계 화가들이 즐겨 그린 소재입니다. 네덜란드 출신의 화가 빈센트 반 고흐가 그린 '해바라기'라든가, 프랑스의 화가 클로드 모네가 그린 '수련'이 대표적이지요.

우리나라 옛 그림에도 꽃이 자주 등장하는데요. 봄이면 매화, 여름이면 모란과 연꽃, 가을이면 국화 등의 꽃을 주로 그렸어요. 꽃과 풀을 그린 그림을 '화훼도'(花卉圖)라고 부릅니다. 새가 등장하면 '화조도'(花鳥圖), 풀벌레가 함께 그려지면 '초충도'(草蟲圖)라고 하지요. 다가온 여름을 맞아 여름의 꽃을 그림으로 살펴볼게요.

풍요롭게 누리라는 의미의 모란

모란꽃으로 가득한 〈작품 1〉은 19세기 민화로, 8폭 병풍의 그림 중 2폭의 그림입니다. 세로로 길쭉한 그림들을 연결해 아코디언처럼 접을 수도, 펼 수도 있도록 만든 것이 병풍인데요. 이 병풍은 폭마다 4개의 붉은 모란꽃이 중심부에 있는 분홍색 모란을 에워싸고 있는 형식이 반복돼 있어요. 이 때문에 병풍을 펼쳤을 때 모란이 활짝 핀 정원 속에 있는 황홀한 기분을 느낄 수 있습니다. 독특하게도 폭의 하단부를 사선으로 처리해서, 그림만 봐도 병풍을 보고 있는 것과 같은 입체적인 효과를 냅니다.

모란 그림에는 풍요롭게 누리고 귀하게 대우받으며 잘 산다는 부귀영화(富貴榮華)의 뜻이 깃들어 있어요. 우리나라의 경우 모란 그림으로 병풍을 만드는 전통은 고려 말에서 조선 초까지 거슬러 올라가요. 19세기에는 서민이 즐기는 민화에서도 모란꽃을 흔히 볼 수 있지만, 모란이 그려진 그림은 원래 왕실이나 사찰, 또는 상류층 가정에서 특별한 날의 행사 때 사용되는 귀하고 값비싼 그림이었다고 해요. 혼례 때 모란 병풍을 세우는 것은 신랑과 신부가 부자로 행복하게 살라는 덕담과도 같은 의미였습니다.

요즘엔 장례식을 상징하는 꽃이 국화로 여겨지지만, 과거에는 장례에도 모란 병풍을 둘렀어요. 아마도 죽은 이가 저승까지 건너가며 귀하게 대우받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었을 겁니다.

남녀의 사랑과 그리움 뜻하는 연꽃

〈작품 2〉
는 연꽃 그림입니다. 18세기 조선의 화가 강세황이 그린 것으로, 제목은 '향기는 멀수록 맑다(香遠益淸)'이지요. 그림의 윗부분에는 '연꽃의 향기는 멀수록 맑으므로 멀리서 보는 것이 좋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는데요. 11세기 중국 당나라의 학자인 주돈이(周敦頤)의 말이라고 해요. 주돈이는 학식과 덕망이 높은 군자(君子)를 연꽃에 비유했습니다. 탁한 흙탕물에서 나왔지만 더럽혀지지 않고, 맑은 향을 품은 깨끗하고 고귀한 꽃이라는 점을 높이 평가해 이를 군자의 덕으로 여긴 것이지요.

이 그림에서 강세황은 주돈이의 글에 이어 '그림 속의 연꽃 또한 멀리서 보는 것이 좋다'라고 자신의 생각을 덧붙였습니다. 그림의 하단부에는 개구리 한 마리가 연못 위의 조그만 이파리를 타고 앉아 있는데요. 마치 그림 상단부의 커다란 연꽃 잎사귀에 앉아 있는 곤충을 먹잇감으로 노리는 것처럼 보입니다. 멀리서 보면 우아한 연꽃만 보이는데, 가까이 들여다보니 개구리와 곤충처럼 먹고 먹히는 비정한 현실이 드러나는군요.

연꽃은 남녀의 사랑이나 그리움을 뜻하는 꽃이기도 합니다. 〈작품 3〉은 강세황의 제자였던 김홍도가 그린 연꽃이에요. 분홍색 연꽃 한 송이가 탐스럽게 활짝 피어났는데, 그 위 공중에서 한 쌍의 고추잠자리가 춤을 추고 있어요. 곧 짝짓기를 하려나 봅니다. 연꽃은 잠자리 연인의 사랑이 부러워서인지 꽃잎을 활짝 열었어요.

왼쪽으로 샤워용 수도꼭지처럼 생긴 연밥이 보입니다. 씨앗 주머니인 연밥은 구멍마다 씨앗을 잔뜩 품고 있어요. 그래서 예로부터 여인들은 자손을 많이 낳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연꽃과 연밥 무늬를 옷이나 방석에 수놓곤 했답니다.

한여름 활짝 핀 패랭이꽃

〈작품 4〉
에는 한여름 뜨거운 날에 피는 패랭이꽃이 수박과 함께 그려져 있습니다. 16세기 조선의 화가 신사임당이 그린 '수박과 들쥐'라는 그림이에요. 나비 두 마리가 공중에서 날고 있고, 오른쪽 구석에는 패랭이꽃이 활짝 피어 있어요. 꽃과 나비가 같이 있는 모습은 남녀의 사랑과 관련돼 있어요. 꽃의 향기가 좋아서 나비가 꽃 주변을 어른거리는 것이니까요.

사람들은 예나 지금이나 나이 드는 것을 사계절에 빗대어 말하곤 하죠. 그중 여름은 한창 일하고 사랑할 젊은 시기를 의미하기도 하는데요. 이 그림은 인생의 여름을 보여주고 있어요. 꽃과 나비가 부부의 사랑을 의미한다면, 열매는 주로 자손을 뜻해요. 수박이 무럭무럭 자라나는 모습은 자손이 무럭무럭 자라나는 행복한 가정을 의미한답니다.

그런데 들쥐 두 마리가 얄밉게도 수박의 속을 파먹고 있군요. 그림만으로는 지금 그 수박이 얼마나 빨갛고 싱싱한지 말해 줄 방법이 없어서, 수박을 맛있게 먹는 들쥐를 그려 넣었을 거예요. 그러니까 들쥐는 그림의 수박이 아주 달고 속이 알차다는 것을 보는 사람에게 알려주는 역할을 하는 거죠. 자녀들이 건강하고 남들이 탐낼 만큼 잘 크고 있다는 뜻이랍니다.
이주은 건국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기획·구성=조유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