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

“한국영화 전성시대… 어떤 임계점 뚫고 날아오르는 중”

최만섭 2022. 5. 30. 06:35

 

“한국영화 전성시대… 어떤 임계점 뚫고 날아오르는 중”

K무비, 왜 이렇게 강한가

입력 2022.05.30 03:00
 
 
 
 
 
영화 ‘브로커’에서 송강호는 베이비 박스에 버려진 아기를 훔쳐 아이가 필요한 부부에게 판매하는 브로커 상현을 연기했다. 고레에다 감독은 “악인인지 선인인지 헷갈리는 인물을 깊고 탁월하게 연기했다”고 말했다. /CJ ENM

한국영화는 더 이상 아시아의 변방이 아니다. 제75회 칸 국제영화제는 ‘브로커’의 송강호를 남우주연상에, ‘헤어질 결심’의 박찬욱을 감독상에 호명했다.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은 지난 2019년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과 2020년 미국 아카데미 4관왕을 차지하며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지난해엔 윤여정이 ‘미나리’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받으며 한국 배우의 힘을 증명했다. 이번 송강호·박찬욱의 낭보가 그다지 놀랍지 않은 이유다.

한국영화는 어떤 임계점을 뚫고 날아오르는 중이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영화평론가 김형석씨는 “우리가 환호하고 사랑한 배우 송강호를 세계가 인정했다. ‘기생충’과 ‘미나리’도 보여줬듯이 언어 장벽이 무너지면서 한국영화의 글로벌 경쟁력이 높아졌다”며 “로컬과 글로벌 사이에서, 즉 우리의 특수성과 세계인이 원하는 보편성 사이에서, 공감 가는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한국 영화인들의 스토리텔링 능력이야말로 가장 값진 무기”라고 말했다.

송강호는 이번 칸 영화제 개막 전부터 강력한 남우주연상 후보로 전망됐다. 영화 ‘괴물’ ‘밀양’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박쥐’ ‘기생충’ ‘비상선언’에 이어 일곱 번째 밟은 무대였다. 그는 2020년 미국 뉴욕타임스의 ‘21세기 최고 배우 25인’에 선정되기도 했다. 이번에 ‘브로커’를 연출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물론 ‘쿵푸 팬더’의 존 스티븐슨 감독, 할리우드 배우 브래드 피트 등도 송강호의 팬을 자처한다.

그동안 한국이 수확한 연기상은 강수연, 전도연, 윤여정 등 여자 배우에 치우쳐 있었다. 올해 오영수가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게임’으로 골든글로브 남우조연상을 받기는 했지만 세계 최정상 영화제가 한국 남자 배우에게 주연상을 안기기는 처음이다. 영화평론가 정지욱씨는 “이정재나 마동석처럼 외국 관객이 좋아한 연기는 있었지만, 송강호의 경우는 세계 최고 영화상인 칸 영화제를 통해 뛰어난 연기력을 인정받은 쾌거”라고 했다.

박찬욱 감독의 영화 ‘헤어질 결심’은 진심을 숨기는 용의자(탕웨이)와 그녀에게 의심과 관심을 동시에 느끼는 형사(박해일)의 이야기다. 중국 배우 탕웨이는 “한국에서 일어나는 일을 겪는 중국 여인을 연기하는 게 무척 흥미로웠다”고 했다. /CJ ENM

박찬욱의 ‘헤어질 결심’은 영국 가디언이 만점(별 다섯 개)을 줄 정도로 완성도를 인정받았다. 뉴욕타임스의 카일 뷰캐넌은 “박찬욱 감독이 걸작을 만들 수 있다는 건 알았지만, 그가 조금 더 작고 누아르적인 로맨스에서도 충분히 화려하고 재미있다는 걸 확인했다”고 평했다. 정지욱씨는 “일본 영화인들이 ‘에네르기(에너지)가 넘친다’고 부러워할 만큼 한국영화는 다양하고 역동적”이라며 “박찬욱 감독이 ‘헤어질 결심’에서 흔한 섹스 장면도 없이 매혹적인 멜로를 이끌어간 것도 세계 관객에게는 큰 충격으로 다가올 것”이라고 했다.

감독은 상상하고 배우는 구현한다. 칸 영화제 심사위원단은 3분의 2가 배우 또는 감독이다. 영화평론가 윤성은씨는 “작가주의로 무장한 영화들이 경쟁하는 칸에서 박찬욱과 송강호가 받은 기립박수는 자신만의 스타일로 연출하고 연기하는 창조적 능력을 공인받았다는 의미”라고 평했다. 한국영화의 경쟁력이 강해진 배경으론 세 가지를 꼽았다. “국공립기관들이 영화 인력을 전문적으로 양성하고 지원하며, 그들이 신작을 선보일 수 있는 영화제 등 인프라가 탄탄해졌다. 디지털 강국으로서 다양한 플랫폼을 통해 이야기를 기획하고 영상화하고 있다는 점도 중요하다.”

 

한국영화의 달라진 위상은 외형적으로도 증명된다. 송강호가 출연한 ‘브로커’는 ‘어느 가족’으로 2018년 칸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은 일본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각본과 연출을 맡았다. 박찬욱의 ‘헤어질 결심’에서 여주인공은 중국 배우 탕웨이인데 대사의 90%를 한국어로 소화했다. 해외 유명 영화인들이 한국 배우 또는 감독의 능력을 믿고 뛰어든 셈이다. 한국영화의 전성시대를 세계가 목격하고 있다.

헤어질 결심’

살인 미스터리로 포장한 눈부신 사랑이야기

파격적인 노출이나 정사 장면도, 핏빛으로 얼룩진 폭력도 없다. 박찬욱 감독은 올해 칸 영화제 감독상 수상작인 ‘헤어질 결심’에서 전작들과는 다른 영화적 스타일을 선보인다. 영화는 산 정상에서 추락한 중년 남성의 변사 사건을 수사하던 형사 ‘해준’(박해일)이 사망자의 중국인 아내 ‘서래’(탕웨이)를 의심하는 미스터리 형사물의 구조를 지니고 있다. 하지만 잠복 수사와 신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둘은 가까워진다. 전반부는 어두운 누아르, 후반부는 로맨스적 색채가 강하다. ‘헤어질 결심’은 칸 현지 상영 직후부터 찬사를 받았다. 칸 영화제 소식지 스크린 데일리는 경쟁 부문 진출작 21편 중 최고점을 부여했다. 미국 연예 매체 버라이어티는 “살인 미스터리로 포장된 눈부신 사랑 이야기가 마법에 가깝다”고 했다.

‘브로커’

日 고레에다 감독이 연출한 첫 한국 영화

송강호에게 칸 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안긴 ‘브로커’는 일본 거장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첫 한국 영화다. 송강호를 비롯해 강동원·이지은(아이유)·배두나·이주영 등 화려한 캐스팅으로 제작 당시부터 화제를 모았다.

키울 수 없는 아이를 맡기고 가는 베이비 박스(baby box)를 통해서 다양한 사람이 서로 연결되는 과정을 담았다. “24시간 내내 악하거나 선한 사람은 없다는 게 내 철학”이라는 고레에다 감독의 말을 압축적으로 표현하는 극중 인물이 송강호가 맡은 브로커 ‘상현’ 역이다. 낳는 것과 기르는 것의 관계에 대한 고찰에서는 고레에다 감독의 2013년작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핏줄로 연결되지 않은 사람들이 ‘유사 가족’의 관계를 이루는 설정에서는 2018년 황금종려상 수상작 ‘어느 가족’이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