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형 총장 “카이스트가 ‘노잼’? 나 같은 괴짜들 위한 놀이터로 만들고 싶다”
[아무튼, 주말] [최인준 기자의 줌인]
첫 융합학과 이어 첫 ‘AI인문대’ 출범
새 도전 나선 이광형 카이스트 총장
명함엔 ‘카이스트 총장’이라고 적혀 있지만, 그의 정체는 종잡을 수 없다. 랩을 흥얼거리며 강연장에 등장하는가 하면, 드넓은 캠퍼스가 허전해 보인다는 이유로 오리와 거위를 학교 연못에 풀어 20년 동안 기른 대책 없는 동심(童心)이다. 위아래 구분 자체가 고정관념이라며 올림픽 경기도 ‘거꾸로 세운 TV’로 봐야 직성이 풀리는 4차원. 누구도 범접 못할 기행(奇行) 탓에 유명 드라마에서 ‘괴짜 교수’ 모델이 된 이광형(68) 카이스트(KAIST) 총장 이야기다.
이광형의 행보는 유별나지만 소통의 힘을 갖고 있다. 그래서 ‘라떼’(꼰대)라면 일단 피하고 보는 MZ세대들의 경계심도 단번에 허문다. 그가 지난해 3월 총장 취임 후 정례화한 카이스트 학생과의 간담회 ‘첫화사’(매달 첫째 화요일 오후 4시의 줄인 말)에서 ‘휴학 가능 기간을 늘려달라’는 요청에 “뭘 늘리나. 아예 제한 자체를 없애버리자”고 즉석에서 답하자 환호성이 터졌다. MBTI가 극단적인 내향형(I)이면서도 “미래 먹거리 찾아야 한다”며 일주일의 절반 이상을 기부금 모금에 쓰고, 학생을 섬기겠다며 총장이 최정점에 있는 학교 직제도를 집무실 벽에 거꾸로 걸어놨다.
이런 예측불허 언행은 동료 교수들에게 시기와 질투의 대상이었다. 어느 날 느닷없이 2개 학과를 합쳐 새 전공을 만들겠다 선언하고, 국내에 없던 학위 과정을 연달아 도입해 스포트라이트를 독차지한다. 거액의 외부 기부금이 ‘스타 교수’ 이광형에게 몰리자 따돌림이 시작됐다. 총장이 된 이후엔 학교 운영에 대한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주말에도 담당자에게 이메일을 보낸다. 교수들은 그야말로 환장할 노릇.
꽃길보다 가시밭길이 많았던 평교수를 거쳐 지난해 총장까지 됐지만, 그는 여전히 멈추는 법을 모른다. 오히려 더 ‘액셀’을 힘차게 밟고 있다. 이달 초 ‘세계 첫 디지털인문사회과학부(이하 디지털인문대) 출범’을 선언하며 새로운 학문적 실험에 나선 것이 대표적. 인문학 전공 학생을 상대로 AI(인공지능), 컴퓨터 등 공학 기술을 가르쳐 인문학 위기를 극복하고 세계 최고 수준 ‘인문융합공학자’를 양성한다는 목표다. 디지털인문대 설립 발표를 앞둔 지난달 말 대전 카이스트 캠퍼스에서 취임 1년을 맞은 이 총장을 만났다.
일 벌이기 좋아하는 ‘아싸’
-또 일을 벌였다.
“나는 원래 엉덩이가 무겁고, 아싸(아웃사이더) 기질이다. 새로운 일을 안 하면 나 스스로는 편하겠지만, 나 아니면 할 사람이 없다는 생각이 들면 가만히 있을 수 없다. 디지털인문대는 부총장 시절부터 3년간 인문대 교수들과 매달 한 차례 아침 8시에 워크숍을 열고 설득하며 준비했다. 교수들은 처음에 ‘저 사람이 저러다 말겠지’ 했겠지만, 난 인문학을 살려야 한다는 목표가 있었기에 포기할 수 없었다.”
-카이스트가 왜 인문학 위기를 걱정하나.
“우리 사회엔 분명 인문학이 필요하다. 앞으론 문·이과 융합 인재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날 거다. 스스로 새 사상을 창조하는 사람이 리더가 된다. 대표적인 분야가 ‘AI와 협력’이다. 지난 2017년 바둑기사가 AI와 한 조를 이뤄 대결하는 복식경기에서 중국 롄샤오 8단이 커제 9단을 상대로 예상 밖 불계승을 거뒀다. 일대일로 붙으면 8단 기사가 지겠지만, AI와 협력을 더 잘한 롄샤오가 커제를 이겼다. 바둑뿐 아니라 앞으로 모든 영역에서 AI와 협력을 잘하는 방법을 연구하는 인문학이 필요할 것이다. 인문학도 4차 산업혁명 시대엔 연구 툴(방식)을 바꿔야 한다. 지금의 인문계 교육으론 ‘문송(문과라서 죄송)’은 사라지지 않는다.”
-AI와 인문학, 서로 다른 학문을 누가 가르치나.
“새로운 학문을 개척하면 분명 가르칠 사람이 부족하다. 하지만 이런 문제가 해결되길 기다리기만 하면 아무것도 못 한다. 기존 인문학 전공 교수에게 컴퓨터 전공 학자들을 더해 학생들에게 융합된 학문을 가르칠 예정이다. 시행착오가 있겠지만 4~5년 지나면 융합 과목으로 자리 잡을 것이다. 기존 인문학 교수(20명)에 더해 4년 전부터 공대 교수를 겸임할 수 있는 공학계열 교수 7명을 뽑았다.”
-인문학과 공학을 합치는 시도가 이전엔 없었나.
“세계 상위 랭킹 대학 가운데 정규 대학원 과정을 시작하는 것은 처음이다. 올 하반기 디지털 인문대 대학원 신입생을 뽑아 내년부터 학사일정을 시작한다. 카이스트는 컴퓨터 공학 분야 연구 저변이 탄탄해 빠르게 발전할 것으로 기대한다.”
-학내 반대가 만만치 않았다고 들었다.
“그동안 학교에서 새로운 사업을 할 때마다 박수를 받기는커녕 왜 쓸데없는 일을 벌이냐는 말을 더 자주 들었다. 지난 2001년 국내 최초로 바이오와 IT(정보기술)를 함께 연구하는 융합전공 바이오및뇌공학과를 설립할 당시엔 학교 안팎에선 ‘학생들 데리고 무모한 실험하지 말라’는 비난을 들었다. 첫 카이스트 외국인 총장 로버트 러플린은 융합전공에 회의적이었던 나머지 2004년 부임하자마자 아예 바이오뇌공학과를 폐지하려 했다. 교수들 사이에서 따돌림도 겪었다.”
-명문대 교수도 왕따를 당하나.
“옆방 교수가 점심 먹으러 가자고 안 하고, 다른 교수들도 저녁 술자리에 부르지 않더라. 전산학과에서 바이오및뇌공학과로 소속을 바꾸는 과정에선 학과 신설을 위해 받은 기부금 일부를 내놓고 가라는 압박도 있었다.”
-어떻게 극복했나.
“그저 시간의 힘으로 버텼다. 시간이 지나보니 어느 날부터 나를 지지해주는 이가 하나둘 생겼다. 나중엔 다들 ‘이광형이 맞았다’고 했다. 디지털인문대 설립에 반대한 인문대 교수들에겐 ‘연구비 내가 따온다. 조교도 더 붙여주겠다’고 약속해 마음을 돌렸다.”
“하루 1억씩 모금” 선언
학내 대형 프로젝트 성공의 성패는 돈이다. 이 총장은 카이스트 개교 이래 가장 기부금을 많이 유치하는 교수라는 평가를 받는다. 정문술 전 미래산업 회장이 이광형과 인연으로 2001년과 2014년, 두 차례에 걸쳐 총 515억원을 카이스트에 기부한 것은 유명한 일화. 기업뿐 아니라 개인 돈 10억원도 카이스트에 기부된 적 없던 시절이었다. 정문술 회장의 기부는 이후 이수영 광원산업 회장(766억원), 김재철 동원그룹 명예회장(500억원) 등 자산가들의 기부 행렬로 이어졌다. 이 총장은 지난해 3월 취임식에선 “앞으로 하루 1억원씩 모금하겠다”고 선언했다.
-정말 하루 1억원씩 벌었나.
“지난해 800억원 넘는 기부금을 유치하며 목표를 초과 달성했다. 무식하게 선언하니 이뤄지더라.”(카이스트에 따르면 이 총장 취임 이후 이달 25일까지 학교 발전재단에 총 1076억원이 모였다.)
-돈을 잘 벌어오는 비결이 뭔가.
“중요한 건 비전이다. 기부금을 어느 분야에 써서 어떤 효과를 거두겠다는 청사진을 보여준다. 돈 주시는 분들은 나의 비전을 보고 기부를 약속한다. 기부자 중엔 개인적 인연이 있는 분도 있지만 친분 있다고 거금을 턱턱 내주는 게 아니다. 발품도 중요하다. 총장실엔 주 3일만 출근한다. 여기 있어 봤자 돈 하나도 안 벌린다. 외근하면서 하루 수십명씩 만난다.”
-대학 총장이 너무 돈만 밝히는 것 아닌가.
“대학이 글로벌화하려면 돈이 필요하다. 모금은 총장 명함이 없으면 할 수 없는 일이다. 난 총장이 해야 할 업무를 NFT로 요약한다. 대체 불가능 토큰(Non Fungible Token)이 아니라 대체 불가능 업무(Task)다. 부총장이나 다른 교수가 할 수 있는 건 안 한다. 그 첫 번째가 비즈니스, 돈을 벌어오는 일이다.”
-다른 대체 불가능 업무는 뭔가.
“두 번째는 새로운 일을 벌이는 것. 기초 의과학자 양성을 위해 의학전문대학원 설립을 추진하고 있고, 캠퍼스 내 미술관 설립, 뉴욕 캠퍼스 조성처럼 굵직한 사업은 총장이 해야 한다. 세 번째는 학교 구성원을 격려하는 포상이다. 취임 직후 성적순으로 주는 상을 없애고 헌혈왕·봉사왕·질문왕을 뽑아 개교기념일에 시상하고 있다.”
-정문술 회장은 두 차례 기부에서 ‘이광형이 기부금을 집행한다’는 조건을 달았다.
“정 회장은 처음 300억원을 기부하면서 ‘아무도 하지 않은 연구를 할 것, 학교에서 골고루 나눠 쓰지 말 것’을 요구했다. 정 회장과는 1990년대 중반부터 산학 협력을 통해 알고 지내면서 교류했고, 10~20년 뒤에 바이오와 IT 융합 분야가 미래 먹거리가 된다는 공감대가 있었다.”
총장 취임 이후에도 카이스트에 대한 기부는 계속됐다. 지난해 12월 이 총장은 미국 뉴욕으로 날아가 재미 교포 사업가 배희남 글로벌리더십파운데이션 회장과 기자회견을 열고 카이스트 뉴욕캠퍼스 설립 계획을 발표했다. 배 회장은 뉴욕 롱아일랜드에 있는 1000억원 가치의 부지를 기부하기로 했다.
자세히 보기
-왜 해외 캠퍼스를 추진하나?
“내가 생각하는 교육의 최고 목적은 학생에게 큰 세상을 보여주는 것이다. 큰 걸 보면 동료와 경쟁이 아니라 협력할 생각을 한다. 1995년 미국 스탠퍼드대에서 지낼 기회가 있었는데 한국의 제자들을 데리고 가 창업의 본고장인 실리콘밸리의 벤처기업에서 일하게 했다. 미국 기업을 온몸으로 경험한 학생들이 귀국한 뒤 논문 쓸 생각은 안 하고 어떤 기업을 세울까 궁리만 하더라. 당시 미국에 다녀온 학생이 만든 기업이 세계 3대 CCTV 영상 처리 업체 아이디스(김영달)와 글로벌 게임 기업 넥슨(김정주)이다.”
“내 컴퓨터를 해킹하라”
카이스트 학생과 교수의 좌충우돌 스토리를 담은 드라마 ‘카이스트’(1999~2000년 방영)는 이광형을 대중에게 ‘괴짜 교수’로 알리는 계기가 됐다. ’모래시계’로 유명한 송지나 작가가 대학을 배경으로 한 드라마를 구상하던 중 이광형의 괴이한 행적을 접하고 그를 주인공 교수의 모델로 삼았다. 이광형은 평교수 시절 학생들에게 ‘내 컴퓨터를 해킹하라’는 과제를 주는가 하면, 정장을 거부해 티셔츠 차림으로 학교에 출근했다. 대형 세단을 자랑으로 삼던 교수들 사이에서 검은색 티뷰론 스포츠카를 타던 이광형은 확실히 튀는 존재였다.
-총장이 되고 교내 랩 동아리에 가입했던데.
“학생들과 소통해야 하는데 35년 넘는 나이 차를 극복하려면 학생들이 좋아하는 걸 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해 랩을 하기로 했다. 내가 먼저 동아리를 찾아갔는데 해보니 어렵지 않더라.”
-학생들에겐 민폐 아닌가.
“좋아하던데?(웃음) 동아리 신입 회원 모집 포스터에 내 사진을 넣고 홍보하더라.”
-성격이 활달한 편인가.
“알려진 것과 달리 사교적이진 않다. MBTI 성향이 나 혼자 있을 때 제일 편한 내향형(I)이다. IQ도 117 정도로 높지 않은 수준이다. 노력으로 내 한계를 모두 넘어섰다. 지능은 평균을 조금 밑돌지 모르겠지만 노력만큼은 상위 0.1%다.”
-주요 교무 보직을 거친 카이스트 총장이 아웃사이더라 할 수 있나.
“내 인생의 3분의 2는 외로운 시간이었다. 교수 생활 중반까지 ‘사람들은 날 반기지 않는구나’라고 생각하며 살았다. 골프도 안 하고, 술도 못해서 회식 자리에선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있었다.”
-학생들에겐 ‘거위 아빠’로 통한다.
“2001년부터 캠퍼스 연못에서 오리, 거위를 10여 마리 기르고 있다. 어린 시절 고향인 정읍에서 거위를 키웠는데, 공부에 지친 학생들이 연못에 나와서 거위에게 먹이를 주면서 머리를 식히라는 뜻에서 재래시장에서 사다 길렀다. 학교에 거위가 건너는 전용 횡단보도가 있고, 엄마 거위가 새끼들과 차도를 건너면 모든 차량이 멈춰 서 기다린다. 거위가 카이스트 내 서열 1위다.”
-TV를 거꾸로 보는 걸로 유명하다.
“거꾸로 본 지 15년 됐는데 지금도 안경 안 쓸 정도로 시력이 좋다. 뇌가 점점 굳어지고 있다는 위기감을 느끼던 때 좌우가 뒤바뀐 거울 속 모습을 너무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뒤집힌 세상을 계속 보면 뇌도 유연해질 거라 생각해 ‘거꾸로 시청’을 시작했다. 빠르게 지나가는 영화 자막을 한 글자도 놓치지 않고 보고, 작년 올림픽 경기도 모두 거꾸로 봤다. 탁구공이 천장이 아니고 바닥을 향해 포물선 그리는 모습을 보는 재미는 나만 알 거다.”
-주변에선 기행(奇行)이라고 하는데.
“사람들이 태어날 때부터 위로 향하도록 사물을 봐야 하는 법칙이 있나. 과학뿐이 아니다. 일상에서도 고정관념은 위험하다. 그래도 집에는 TV가 똑바로 있다. 아내가 리모컨을 쥐니까, 하하!”
-‘괴짜’라는 표현은 불편하지 않나.
“처음에는 안 좋게 나를 따돌리는 것처럼 들렸지만 지금은 유니크(unique·'특별하다’는 뜻)의 또 다른 표현이라고 받아들인다. 사람들도 ‘괴짜가 총장이 되는 걸 보니 카이스트도 이제 변화하려고 하는구나’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가장 아픈 손가락, 김정주
이 총장은 평소 고(故) 김정주 NXC 회장을 가리켜 “나를 닮은 괴짜 제자”라고 했다. 수업 시간에 제대로 나타나지 않고, 머리도 신호등처럼 빨간색, 노란색으로 물들이고 다녔다. 남학생으론 흔하지 않게 귀걸이까지 했는데 짝을 맞추지 않았다. 속은 내향 그 자체였다. 당시 학업에 전념하지 못해 지도 교수로부터 박사 과정을 그만두라는 통보를 받은 김정주를 받아준 사람이 이광형이었다. 김정주는 작년 총장 취임식에서 축사를 하면서 “이 교수님은 무엇 하나 제대로 하지 못한 나를 유일하게 받아준 분”이라고 했다. 축사하는 동안 서너 차례 울먹이기도 했다.
-김정주를 마지막으로 본 게 언제였나.
“작년 취임식이 마지막이었고, 올해 초엔 문자로 새해 인사를 나눴다. 최근엔 나와 카이스트에 기여하기 위한 계획도 논의했었다. 나와 성격이나 성향이 비슷해서 늘 연민이 갔고, 그래서 사망 소식이 더 안타까웠다. 더 큰 일을 할 사람인데.”
-김정주는 어떤 학생이었나.
“전통적인 관점에서 모범생은 아니었다. 그래서 더 빛이 났다. 2004년쯤 (김)정주가 ‘교수님 저 회사를 일본으로 옮겨야겠다. 아무래도 크게 놀아야겠다’고 했다. 넥슨은 일본으로 본사를 옮겼고 현재 매출 대부분이 해외에서 나온다. 나도 제자로부터 영감을 받아 글로벌 캠퍼스를 추진하게 됐다.”
-제자인 해커스랩 창업자 김창범 대표도 제적 위기를 겪었다.
“김창범 대표가 총 4차례 학사 경고를 받았는데, 그때 내가 탄원서를 써서 겨우 제적을 막았다. 뛰어난 인재가 학위를 못 받는 일을 막기 위해 학교를 나간 이후 재입학할 수 있는 기간 제한을 없앴다. 지난해엔 창업을 장려하기 위해 휴학 제한 기간도 없앴다. 창업 경력을 학점으로 인정해달라는 학생 요구를 받고 이를 위한 규정도 만들고 있다. 나는 카이스트를 (나처럼) 괴짜들을 위한 놀이터로 만들고 싶다.”
“카이스트 학생 너무 공부만 한다”
-취임식 때 ‘학생들 공부 너무 많이 한다’고 했는데.
“책만 보고 수학 문제만 풀면 나중에 본인이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른다. 카이스트 학생에 대한 내 인상이 그렇다. 학생들의 꿈이 너무 작아서 큰 꿈을 키우길 바랐다. (우리 학생들이) 졸업하고 대기업 가는 게 꿈이라고 할 정도니, 참.”
-노력을 강조한다. 하지만 요즘 젊은 세대는 노력의 가치를 잘 믿지 않는다.
“뇌과학을 알면 생각이 달라진다. 인간의 모든 행동과 의사결정은 뇌의 회로에서 일어나는데, 뇌 회로는 어떤 행동이든 반복하면 그것이 습관이 돼 나중엔 저절로 이뤄진다. 조금이라도 노력하면 습관이 바뀌고 생각이 바뀌어서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나를 만들 수 있다. 습관이 바뀌면 인생이 바뀐다.”
-총장 임기가 2025년 2월까지인데, 집무실 책상에 2031년 달력이 있다.
“장기적 비전으로 10년 후를 염두에 두고 모든 업무를 결정하기 위해 2031년 달력을 100부가량 찍어 보직 교수들에게 나눠줬다. 현재 국제 대학 평가에서 카이스트가 40위권에 있는데 10년 뒤엔 글로벌 톱10에 진입하는 게 목표다. 쉽지 않지만 충분히 노려볼 만하다. (카이스트가) 안 되는 이유는 애초에 안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총장이 취임과 동시에 많은 장기 사업을 벌이자 과학계 안팎에선 “총장 연임을 노린다”는 말이 벌써부터 나온다. 총장 연임은 4년이고, 학교 정관상 연임은 가능하다. 본인 생각은 어떨까.
“주변 사람들이 나보고 (연임에 대한 질문이 나오면) 답변하지 말라고 하더라. 사람은 바뀌어도 사상이 같으면 같은 방향으로 간다고 생각한다. 내가 가진 비전을 교수진과 공유하기 위해 차기, 차차기 총장이 될 보직 교수들과 공부하는 모임을 만들었다. 조선시대 왕세자 교육 프로그램을 따서 ‘서연’이라 이름 지었다. 이걸 하려고 하니 ‘자기가 무슨 왕이라고’란 비아냥도 있었다.
-총장이 누가 될 줄 알고.
“보직 교수 중에서 차세대 리더가 나올 테니 같은 비전을 나누고, 리더십 공부를 한다. 신문사는 편집국장이 어디서 나오나, 부장 중에서 나오지 않는가.”
마지막 이 말을 하며 이광형은 기자를 빤히 쳐다봤다. 그리고 자신의 손가락으로 집무실 벽에 걸린 액자의 붓글씨를 가리켰다. ‘뜻을 세우면 이루지 못할 게 없다.’ 학교에 대한 자신의 비전은 결코 ‘괴짜’가 아님을 보여주려는 듯.
'교육제도' 카테고리의 다른 글
[무대 위 인문학] 우크라 살던 유대인 대가족… 러시아 추방령에 고향 떠났죠 (0) | 2022.05.02 |
---|---|
[아무튼, 주말] ‘복지 천국’ 스웨덴 3년 살아보니… “완벽한 지상낙원은 없더라” (0) | 2022.04.30 |
[양상훈 칼럼] 19년 만에 한국 재추월한다는 대만을 보며 (0) | 2022.04.28 |
[뉴스 속의 한국사] 영국인 소장 명품 고려청자, 기와집 400채 값 내고 되찾았죠 (0) | 2022.04.28 |
[수학 산책] 모두가 불만 없이 자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0) | 2022.04.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