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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상훈 칼럼] 19년 만에 한국 재추월한다는 대만을 보며

최만섭 2022. 4. 28. 05:17

[양상훈 칼럼] 19년 만에 한국 재추월한다는 대만을 보며

5년 정권 지날 때마다
장기성장률 1% 씩 하락
‘한국의 법칙’ 될 판
입에 쓴 약 거부하고
설탕물만 찾은 우리
경제 빙하기 막을 수 있나

입력 2022.04.28 00:00
 
 
 
 
 
 
대만 타이베이시 야경./게티이미지 코리아

6년 전 경향신문의 기획 기사는 대만 사람들이 자기 나라를 구이다오(鬼島·귀도)라고 부른다고 했다. ‘귀신 섬’ 이라는 뜻인데 ‘저주 받은 섬’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는 것이다. 당시 대졸 초임이 80만원 정도인 낮은 임금, 비합리적 직장 문화, 집값 폭등, 구태 정치 등이 그 원인으로 꼽혔다.

한때 대만은 일본을 따라가는 아시아의 선진권 국가였다. 1971년까지는 유엔 상임이사국으로서 한국의 형님뻘 국가로 인식되기도 했다. 1980년대 개발도상국 중 가장 먼저 선진국으로 분류됐고 유럽 그리스의 1인당 국민소득을 추월했다. 이때 대만의 국가 전체 GDP는 인구 50배인 중국의 40%에 이를 정도였다. 국민소득 1만달러도 한국보다 2년 앞선 1992년에 달성했다. 컬러 TV와 자가용도 한국보다 먼저였다.

그런 대만이 어느새 우리에게 잊힌 나라가 됐다. 2000년대 들어 대만의 주력 산업인 IT 버블이 붕괴되고 2008년 국제 금융 위기까지 겪으며 큰 피해를 입었다. 한국 정치에서 거의 사라진 육탄전 국회가 대만에서 자주 벌어진 것도 이 시기다. 한 수 아래로 보았던 한국이 국가 전체 규모로는 크게 앞서가고 1인당 소득조차 2003년 추월당하게 되자 자존심이 상한 대만 사람들에게 기이한 혐한 감정이 생기기도 했다.

대만을 다시 보게 된 것은 며칠 전 대만 1인당 소득이 19년 만에 한국을 다시 앞설지도 모른다는 기사 때문이었다. GDP는 환율에 영향을 받기 때문에 두 나라의 경제를 정확히 반영한다고 할 수는 없다. 실제 연말엔 다른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 하지만 한국과 대만의 정치 경제 상황을 보면 ‘대만의 한국 재추월’이 실제 벌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다. 그만큼 최근 대만은 활기가 있었고 한국은 그 반대였다.

경향신문의 ‘귀신 섬’ 기사가 나왔던 때에 대만은 민진당 차이잉원 총통으로 정권 교체가 이뤄졌다. 그다음 해에 한국에선 문재인 정권이 등장했다. 두 나라 정권 아래에서 경제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두 기업이 TSMC와 삼성전자다. TSMC는 훨훨 날아갔지만 삼성전자는 총수가 감옥에 있었고 지금도 재판받는 게 ‘주 업무’다. TSMC는 시가총액 기준 세계 반도체 회사 1위가 됐고 삼성전자는 연일 신저가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한국이 대만을 제칠 때 정권은 노태우·김영삼·김대중 정부였다. 이때까지 한국 정부에는 그래도 국가적 의제가 있었다. 박정희 한강의 기적, 전두환 물가 안정에 이어 노태우 중·러 시장 진출, 김영삼 세계화, 김대중 IT 산업 육성 등이었다. 노무현 때부터 한국 국가 의제의 중심이 경제에서 국내 정치로 바뀌었다. 1980년대 운동권들이 정치에 본격 진출한 때와 일치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한국은 무엇을 향해 가는 나라인지 그 방향을 알 수 없게 됐다. ‘버는 사람이 아니라 쓰는 사람이 먼저’가 된 문재인 정부가 대표적이다. 엄청난 빚을 내 선심용으로 뿌리고도 그것을 업적이라고 하는 나라가 됐다. 민주당 출신 정치 원로 한 분은 “지난 10년간 정치는 정치질만 했다”고 했다. 틀린 말인가.

 

21세기는 기업의 세기다. 과학기술과 기업이 국민을 먹여 살리고 국방까지 한다. ‘기업이 먼저’인 나라가 이기고, ‘쓰는 사람이 아니라 버는 사람이 먼저’인 나라의 국민이 결국 더 행복해진다. 세계는 자국 산업에 파격적 지원을 하고 있다. 우리는 지난 5년간 연구 개발자들이 연구실에 머물지 못하게 하는 경직된 주 52시간, 세계에서 가장 엄격한 환경·안전 규제 등을 도입했다. 필요한 제도들이라고 해도 꼬리가 몸통을 흔들지 않을까 걱정이다. SK하이닉스의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는 환경 영향 평가 지연에다 보상 문제 등으로 3년이 지나도록 착공조차 못했고, 삼성전자 평택 반도체 공장은 주민 반발에 5년간 송전선을 설치 못하는 일까지 있었다. 기업 총수들의 최대 관심은 여전히 정치 사법적 리스크다. 거대 노조들은 괴물이 됐다. 이제 기업은 웬만하면 공장을 해외에 짓는다. 이런 일들이 다 모인 결과가 ‘대만의 한국 재추월’ 전망일 것이다.

서울대 경제학부 김세직 교수는 조선일보 인터뷰에서 한국의 장기 성장률이 5년 정권 때마다 규칙적으로 1%포인트씩 떨어지고 있다고 했다. 장기 성장률은 기준 시점 이전 5년과 이후 5년 도합 10년간 성장률을 평균 낸 것으로 진정한 ‘경제 실력’이라고 한다. 김영삼 정부 때 6%였는데 문재인 정부에서 1%로 추정되고 윤석열 정부에선 0%가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는 0% 장기 성장률을 ‘경제 빙하기’라고 불렀다. 민주화 이후 한국은 몸에는 좋지만 입에는 쓴 약 대신 설탕물만 먹어왔다. 이것도 ‘5년마다 마이너스 1% 법칙’에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한다. 윤 당선인도 이 인터뷰를 한번 읽어 보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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