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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 위 인문학] 우크라 살던 유대인 대가족… 러시아 추방령에 고향 떠났죠

최만섭 2022. 5. 2. 05:21

[무대 위 인문학] 우크라 살던 유대인 대가족… 러시아 추방령에 고향 떠났죠

입력 : 2022.05.02 03:30

뮤지컬 '지붕 위의 바이올린'
유대인 작가 '테비예와 딸들' 원작
1964년 미국에서 뮤지컬로 제작
영화로도 나와 아카데미상 받았죠

 오는 8일까지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공연하는 서울시뮤지컬단의 뮤지컬 ‘지붕 위의 바이올린’ 무대의 모습이에요. 1905년 우크라이나 작은 유대인 마을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요. 사진은 달이 뜬 무대를 배경으로 바이올리니스트가 연주하는 모습. /세종문화회관 서울시뮤지컬단

"선라이즈, 선셋(Sunrise, Sunset)~."

지금으로부터 120년 전, 우크라이나의 게토(중세 이후 유럽 각 지역의 유대인 강제 격리 지역)였던 아나테프카 마을 사람들이 이렇게 노래합니다. 어떤 날은 기쁘고, 또 어떤 날은 슬프기도 하지만 우리의 삶은 마치 해가 뜨고 지는 것처럼 한 발짝씩 내디뎌 나간다는 의미예요. 마치 위태롭게 흔들리는 지붕 위에서도 끊임없이 연주를 이어가는 바이올리니스트처럼요.

오는 8일까지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공연하는 서울시뮤지컬단의 뮤지컬 '지붕 위의 바이올린(Fiddler on the Roof)'은 이처럼 희망과 고난이 교차하는 우리의 삶을 잘 나타내고 있어요. 1905년 우크라이나 작은 유대인 마을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요.

지금까지 사랑받는 고전 뮤지컬

이 뮤지컬은 1964년 미국 브로드웨이 임페리얼 시어터에서 초연된 후 지금까지도 사랑받는 고전 뮤지컬이에요. 이 작품을 연출한 제롬 로빈스는 뮤지컬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왕과 나'를 비롯해 발레 '목신의 오후' 등 뮤지컬과 발레를 넘나들며 활약한 미국의 전설적인 안무가이자 연출자예요.


실제 유대인이었던 그는 '지붕 위의 바이올린'을 명작의 반열에 올려놓았죠. 초연된 해 공연계의 아카데미상이라 불리는 토니상 10개 부문 후보에 올라 작품상을 비롯해 9개 부문에서 수상하는 기록을 세웠으니까요.

뮤지컬의 인기는 1971년 노먼 주이슨 감독이 제작한 영화로까지 이어졌는데, 영화 역시 아카데미상과 골든글로브상까지 받으며 큰 성공을 거뒀습니다.

고난 속 긍정적인 삶의 태도 꽃피워

작은 유대인 마을에서 벌어지는 이야기가 왜 지금까지도 공감을 얻고 있을까요. 어느 시대에서나 일어날 법한 전통과 변화의 대립, 그리고 고난 속에서도 꽃피우는 긍정적인 삶의 태도가 우리에게 여전히 깊은 의미를 전하기 때문이에요.


주인공 테비예는 우유가공업으로 다섯 딸을 키우는 가난하지만 신앙심 깊은 아버지예요. 넉넉하지는 않지만 성실하게 삶을 꾸려나가죠. 그런데 테비예는 딸들의 갑작스러운 결혼 발표에 당황하고 말아요. 100여 년 전 유대인 마을에서 결혼이란 마을의 중매쟁이나 부모들의 약속으로 이뤄지던 일이었기 때문이에요. 자유롭게 연애하고 결혼을 한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어요.

장녀 차이텔은 가진 것 없는 재봉사와 결혼을 선언하고, 둘째 딸은 수도 키이우에서 온 급진적인 사상을 가진 청년과 사랑에 빠져 결국 그가 수용되는 시베리아로 떠나가요. 셋째 딸은 우크라이나 유대인들을 핍박하는 러시아 군인과 결혼해서 집을 떠납니다. 이런 지점 때문에 이 뮤지컬은 전통적이고 순종적인 여성상을 벗어나 독립적으로 자신의 삶과 사랑을 개척하는 여성들의 이야기라는 평을 받기도 한답니다.

조상 대대로 살아온 삶의 터전과 생활 방식을 지켜온 테비예는 딸들에게 전통을 고수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시대의 급격한 변화를 느껴요. 그리고 결국 세 딸의 사랑을 축복하죠. 어느새 장녀 차이텔의 아기가 태어나고, 그렇게 테비예 가족의 역사는 대를 이어가는 듯 보였어요.

하지만 갑자기 러시아 정부의 유대인 퇴거 명령이 떨어지고, 마을 사람들은 눈물을 머금고 고향 땅을 떠납니다. 테비예는 좌절하지 않고 아내와 함께 미국 땅으로 발걸음을 옮깁니다. 그의 뒷모습 뒤로 또다시 "선라이즈, 선셋~" 음악이 흐르고, 아름다운 석양이 내려앉으며 공연의 막은 내려요. 마치 최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포격 속에서 살 곳을 잃은 우크라이나 국민들의 피란 행렬과 겹쳐지는 듯합니다.

탄압당한 우크라이나 유대인들

유대인들은 강제 이주와 대학살로 이어지는 비극적인 역사를 가진 민족이에요. 19세기 말, 우크라이나에 살던 유대인은 약 200만명이었는데 이들은 지방의 작은 도시에 함께 모여 살았어요. 그러다 1903년 한 러시아 소년이 살해당하는 사건이 일어나는데, 유대인이 범인으로 지목됩니다. 이 사건을 발단으로 유대인 50여 명이 학살되고, 집 700여 채가 약탈됐다고 해요. 당시 전통적으로 유대인을 증오한 러시아 정교의 사제들은 러시아 제국의 황제인 니콜라이 2세의 용인하에 대중을 선도했어요.


1905년 키이우에서 미국으로 망명한 유대인 작가 숄럼 알레이헴(1859~1916)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우크라이나의 유대인 사회를 그린 책 '테비예와 딸들'을 썼어요. 이 책을 원작으로 탄생한 뮤지컬이 바로 '지붕 위의 바이올린'이죠.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어로 '변경(邊境·나라의 경계가 되는 변두리 땅)을 의미해요. 러시아 제국의 중심지였던 상트페테르부르크(레닌그라드)나 모스크바에서 보면 우크라이나 일대는 이민족과 대치하는 변경 지대였기 때문이죠. 당시 러시아 제국은 우크라이나 지배를 더욱 공고히 하고자 '소(小)러시아'라는 이름으로 불렀어요. 우크라이나 민족 시인 타라스 셰우첸코는 소러시아라는 굴욕적이고 식민지적인 이름 대신 '우크라이나'라는 국호를 되찾으려 노력했죠. 1917년 우크라이나 국민 공화국이 수립된 이후에야 공식적으로 우크라이나 국가가 탄생하게 됐어요.

이 뮤지컬에서는 우크라이나에 살던 유대인 전통의 풍습을 발견할 수 있어요. 자유로운 사랑을 했지만 유대인 전통에 따라 혼례를 치른 큰딸 차이텔의 결혼식 장면이 특히 돋보여요. 새 출발을 하는 부부를 위해 마을 사람들은 이렇게 외치죠. "마즐 토브(mazal tov)!" 이 말은 히브리어로 "행운을 빈다"는 뜻이랍니다.

[민족시인 타라스 셰우첸코]

'나 죽거든 부디 그리운 우크라이나 넓은 벌판 위에 나를 묻어 주오.' 우크라이나의 민족 시인인 타라스 셰우첸코(1814~1861)가 31세인 1845년 완성한 시 '유언'의 첫 구절이에요. 그의 서정시와 역사시는 근대 우크라이나어 문학의 토대가 됐죠. 특히 셰우첸코는 우크라이나 독립과 민중의 자유를 위해 앞장선 인물로 국민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고 있어요. 지금도 우크라이나 국가 행사를 비롯해 여러 현장에서 그의 시가 낭송되고 있죠. 수도 키이우에서 가장 많은 사람이 사랑하는 장소 역시 그의 이름을 딴 '셰우첸코 공원'이에요. '타라스 셰우첸코 국립키이우대'는 우크라이나에서 가장 권위 있는 대학이기도 합니다.

 극중 주인공 테비예의 모습. 그는 유대인으로 다섯 딸을 키우는 아버지예요. /세종문화회관 서울시뮤지컬단
 우크라이나 유대인 마을인 아나테프카 처녀들이 춤을 추며 노래하는 모습. /세종문화회관 서울시뮤지컬단
기획·구성=조유미 기자 최여정 '이럴 때 연극'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