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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감독·주연 모두 한국계… 첫 공개 ‘파친코’ 전세계 호평

최만섭 2022. 3. 28. 05:30

제작·감독·주연 모두 한국계… 첫 공개 ‘파친코’ 전세계 호평

1000억 들인 애플TV+ 8부작… 한인 4代, 한미일 이민 서사시
신선도 98%… 작품·대중성 격찬… 1화 무료공개, 한국서만 540만뷰
美 주류 한국계 창작자가 주도, ‘인종·언어·자막’ 통념에 도전
“할리우드 문법 뒤집고 있다”

입력 2022.03.28 03:00
 
 
 
 
 
25일 처음 공개된 드라마 ‘파친코’에서 일제강점기 부산 영도 선창가의 젊은 실력자로 등장하는 ‘고한수’(이민호)는 부와 성공을 좇는 그 시절 조선인의 모습을 응축한 듯한 인물이다. /애플tv+

애플TV+ 8부작 드라마 ‘파친코’의 기세가 심상치 않다. 애플TV+는 25일 이 드라마를 전 세계 동시 공개하면서, 한국에선 유튜브 공식 계정을 통해 1화를 무료로 서비스하는 강수를 뒀다. 27일 오후 4시 현재 조회 수가 벌써 438만회를 넘었다. 드라마 공개 뒤 외신 반응도 뜨겁다. 비평 사이트 로튼토마토에선 43곳 매체 평론가들의 ‘신선지수’가 98%를, 관객 ‘팝콘지수’가 92%를 기록 중이다.<그래픽> “원작과 영상의 완벽한 결합”(롤링스톤), “쉽게 볼 수 없는 보석”(포브스), “아무것도 영원할 순 없지만 파친코만큼은 영원히 보고 싶다”(뉴욕매거진) 등 근래 보기 드문 찬사가 이어진다.

숫자로 본 '파친코'

‘파친코’는 2017년 전미도서상 최종후보작이었던 재미교포 이민진 작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다국적 프로젝트. 일제강점기 부산 영도 갯마을에서 태어난 여성 백선자를 중심으로 한국⋅일본⋅미국을 가로지르는 4대에 걸친 가족사를 담는다. 강인한 여성 중심의 가족 서사라는 점에서 박경리의 ‘토지’를 연상시킨다는 평도 나온다.

◇”할리우드 통념, 스토리텔링 관습 재정의”

흥행 평가는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파친코’는 여러 면에서 할리우드의 오랜 관습과 통념을 깨뜨린 의미가 크다. HBO 수석부사장 출신 마이클 엘런버그의 제작사 ‘스튜디오 레스’가 오스카의 주인공 윤여정, 아시아 톱스타 이민호와 다양한 국적·배경의 배우들을 데리고 한·미·일 3개 언어로 완성했다. 할리우드 주류 스튜디오는 백인 주인공이 아닌 드라마에 큰돈을 투자하는 일이 극히 드물다. 흥행이 불투명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시청자들이 자막에 거부감이 크다는 통념도 강했다. 하지만 외신은 이 드라마의 예산이 넷플릭스의 영국 왕실 이야기 ‘더 크라운’이나 최근 시상식을 휩쓰는 HBO맥스 드라마 ‘석세션’ 등 대작과 동급이라고 전한다.

‘파친코’가 ‘나르코스’(스페인어), ‘뤼팽’(불어), ‘오징어게임’(한국어) 등 흥행작의 뒤를 잇는다면, 이제 세계 시청자들은 비영어권 주인공의 다국적 이야기를 자막으로 기꺼이 소비할 준비가 돼 있다는 점을 증명하게 된다. 시사주간지 타임은 “한·미·일 삼중언어의 고예산 시리즈가 수퍼 영웅, 섹스, 극적인 액션 없이도 성공한다면 비슷한 시리즈에 청신호를 줘 연쇄 파장(ripple effect)을 일으킬 것”이라고 내다봤다.

 

◇”1·2세대 고생 뒤 이민 3세대는 예술가”

드라마 ‘파친코’는 지난 17일(현지시각) 미국 로스앤젤레스 아카데미 박물관에서 첫 상영회를 겸한 레드카펫 행사를 열었다. 이 작품의 목표는 아시아 시장 너머에 있다는 점을 선언하는 자리였다. 이튿날 제작진은 한국 기자들과 온라인 인터뷰를 가졌다. 각본가·제작자 수 휴(Hugh)는 말했다. “이민 첫 세대가 고생한 바탕 위에 2세대는 자리를 잡으려 노력하고, 3세대는 예술가가 된다는 얘기가 있어요. 정말 그런 것 같아요. 제작진뿐 아니라 리뷰에도 ‘부모와 조부모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는 감상평이 많았어요.”

각본가·총괄제작자 수 휴, 배우 진 하, 총괄제작자 마이클 엘런버그, 감독 코고나다(왼쪽부터). 엘런버그를 뺀 세 사람은 한국계 미국인이다. ‘파친코’는 일제강점기부터 20세기 말까지 한·미·일 3국을 가로지르며 4세대에 걸친 가족사를 다룬다. /애플TV+

할리우드 주류에 진입 중인 한국계 미국인 창작자들은 이 드라마의 ‘1등 공신’이었다. 수 휴를 비롯, 총괄제작자 테리사 강-로, 연출자 코고나다 감독과 저스틴 전 감독, 배우 진 하 등이 모두 부모님이 한국 사람인 한국계 미국인이다.

강-로는 연예·스포츠·출판 종합미디어그룹 엔데버의 전신 WME의 첫 아시아계 파트너였던 할리우드 유력 인사. ‘테러’ ‘킬링’ 등 미 TV 드라마로 각광받던 수 휴를 설득해 소설 파친코의 드라마화를 맡겼다. “당신이 지금 이걸 하지 않는다면 당신 정도 높은 수준의 아시아계 미국인 창작자를 만나는 데 10년은 더 걸릴 거라고 했죠. 우린 지금 당장 이 이야기를 해야 한다고.”

연출자 두 사람은 한국에서 태어났다. 코고나다는 존 조 주연의 ‘콜럼버스’(2017)로 주목받았고, 저스틴 전 감독은 ‘국’(2017)으로 선댄스 영화제 관객상을 받고 ‘푸른 호수’(2021)로 칸영화제 주목할만한 시선 부문에 초청받은 신예다. 극중 백선자의 손자 ‘솔로몬’을 맡은 배우 진 하는 ‘데브스’(훌루), ‘러브 라이프’(HBO맥스) 등에 출연했고, 뮤지컬 ‘해밀턴’의 ‘애런 버’ 역할로 무대에 오르기도 했다.

‘파친코’는 25일 1~3화가 공개됐으며, 이후 매주 금요일 한 편씩 추가 공개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