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릭 존의 窓] 북한과의 협상서 배운 교훈
1997년 제네바서 北과 협상 교착… 분위기 바꾸려 치즈 공장 초대
강한 발효 냄새에 익숙하지 않은 北 대표단, 속 뒤집혀 역효과
정보뿐 아니라 문화적 요인도 협상에 얼마나 중요한지 절감해
미 국무부에서 마지막으로 맡았던 보직은 안보 협상 대사였다. 당시 호주, 필리핀과의 주요 방위 협정과 한국의 2014년 방위비 분담금에 관한 5년 특별협정 체결을 이끌었다. 합의에 이르지는 못했지만, 키르기스스탄, 카자흐스탄, 사우디아라비아와의 회담도 총괄했다. 모든 협상에는 각기 다른 어려움이 있었다. 비단 내용뿐 아니라 문화적 요인이 외교적 대화의 흐름에 크게 작용했기 때문이다.
수많은 협상을 통해 여러 교훈을 얻었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북한과의 협상 과정에서 문화에 대한 이해가 협상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깨닫게 되었다. 1996년부터 1998년까지 국무부 한국과에서 북한 담당 수석으로 재직했었다. 이때 북한과 수백 시간에 걸쳐 공식∙비공식 대화를 나누었다. 1996년 강릉 무장공비 침투 사건 당시에는 팀원 4명과 협상한 끝에 사상 최초로 북한으로부터 사과를 받아냈고, 빌 리처드슨 의원과 평양을 방문해 북한에 억류된 한국계 미국인 에번 헌지커(Evan Hunziker)를 석방하도록 설득하는 데 성공하기도 했다.
미국 대표단 일원으로서 남∙북∙미 3자 대화와 중국을 포함한 후속 4자 대화에 참여했으며, 워싱턴 DC, 제네바, 뉴욕, 베를린, 평양, 버지니아 등 세계 각지에서 북한과 공식적∙비공식적인 만남을 가졌다. 외교 공관, 영빈관, 공항 라운지, 호텔(5성급부터 낡은 모텔까지), 커피숍, 레스토랑, 바, 박물관, 고성, 심지어 도심의 산책길에서도 외교 임무를 수행했다.
북한과의 협상 경험을 통해 발견한 한 가지 ‘일반적인 오해’가 있다. 지난 몇 년간 북한 대표단이 협상에 뛰어나다는 평가를 접했지만, 개인적으로는 그들이 일상적인 대화에는 전술적으로 능할지 몰라도 성공을 담보하는 전략적 체계를 갖추지는 못했다는 인상을 받았다. 어쩌면 미국과 북한 사이에 문화적 간극이 크고 그로 인한 불신이 존재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1997년, 한국전쟁의 종전과 평화협정 체결을 위해 제네바에서 일주일간 긴장감 넘치는 4자 대화가 열렸던 순간이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 교착 상태로 어두워진 분위기를 전환해보고자, 회의를 주최한 스위스 측은 토요일에 스위스 근교의 그뤼에르로 대표단 모두를 초대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그뤼에르 성을 먼저 둘러본 뒤 그뤼에르 치즈 공장을 방문하는 일정이었다.
우리는 치즈로 가득 찬 거대한 스테인리스 통을 내려다보며 발코니에서 치즈 생산 공정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장인(匠人)이 서서히 치즈를 틀에 붓자 특유의 강한 발효 냄새가 외교관 30여 명의 코끝을 자극했다. 곧 북한 사람들이 한 명씩 자리를 뜨기 시작했고, 그 누구도 돌아오지 않았다. 치즈 제조 시연이 끝나고 점심 장소로 이동하는 버스에 오를 때에도 북한 대표단은 누구도 찾아볼 수 없었다. 약속 시간이 몇 분 지나서야 스위스 측 인사가 다급하게 버스에 올라 북한 대표단이 탑승을 거부한다고 말했다.
알고 보니 치즈 냄새에 익숙지 않았던 북한 측 대표단은 속이 완전히 뒤집히고 만 것이었다. 대표단 간의 친목을 도모하겠다는 스위스의 의도와는 달리 북한 대표단으로서는 국제적인 무대에서 모욕감을 느낄 만한 불쾌한 상황을 맞은 것이었다. 이어진 점심 자리는 친목은커녕 매우 어색하고 비생산적이기 그지없었다. 북한 대표단은 침묵을 지키며 본인 앞에 놓인 음식만 먹었고, 나머지 대표단은 어색한 침묵을 깨고 무겁고 진중한 대화를 나누었다. 결국, 당일치기 그뤼에르 출장을 통해 가까워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 일화로 알게 된 문화적 차이에 대한 교훈은 아직도 강렬하게 남아있다. 충분한 정보를 가지고 협상에 임한다 할지라도 상대방에 대한 신뢰와 문화적 이해를 기반으로 하지 않는다면 선의라도 와전될 위험이 있다. 해외 언론은 치즈 공장 내부로는 출입이 불허됐지만, 그뤼에르 성을 나설 때 4국 대표단의 사진을 찍는 것은 허용되었다. 우리는 기분이 좋았던 찰나(물론 치즈 공장 파국 이전의 일이다) 성벽 외곽에 자리한 거대한 청동 방패 앞에서 다정하게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협상 장소에 이르자 이 사진이 게재된 조간신문이 놓여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청동 방패에 전쟁의 신 마르스(Mars)가 조각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뤼에르 출장을 통해 언제나 상대방의 문화를 충분히 숙지하라는 심오한 교훈을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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