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논설실의 뉴스 읽기] 코로나 치명률 0.002%는 비현실적… 가짜 통계·오판 겹치면 재앙 폭발

최만섭 2022. 6. 3. 04:57

[논설실의 뉴스 읽기] 코로나 치명률 0.002%는 비현실적… 가짜 통계·오판 겹치면 재앙 폭발

북한 코로나 미스터리

입력 2022.06.03 03:00
 
 
 
 
 
코로나 방역 위기를 극복하자고 촉구하는 북한 포스터.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2일 북한이 발표한 코로나 관련 유열자(발열자) 누적 통계는 383만여 명이다. 그런데 사망자는 70명이라고 한다. 치명률이 0.002%에 불과하다. 한국의 백신 미접종자 치명률도 0.6%다. 세계 평균이 1.2%쯤이니, 백신도 치료제도 없는 북한 치명률이 2%는 될 것으로 보는 전문가가 많다. 북 발표는 비현실적이다. 전 세계 코로나 감염자 중 발열자가 25% 수준인 만큼 북한의 실제 감염자는 1000만명이 넘을 것이란 추산도 나온다. 그러나 최근 북은 “코로나 안정세가 경이적”이라며 봉쇄 완화 움직임까지 보이고 있다. 무슨 일인가.

북한은 5월 12일 코로나 발생을 처음 인정했다. 김정은이 새벽에 정치국 회의를 열어 “건국 이래 대동란” “최중대 비상 사건”이라고 난리를 쳤다. 그러나 북한의 코로나 의심 환자는 이전에도 있었다. 지역별로 격리 시설을 만들어 놓고 열·기침 증세를 보이면 바로 수용해왔다. 정보 당국자는 “2년 넘게 국경을 완전 봉쇄하고 주민 이동까지 틀어막은 극단적 방역 덕분에 폭발적 확산은 없었던 것 같다”고 했다. 지방 도시나 농촌에서 ‘열병’이 돌았다는 첩보는 있다.

주민 ‘심리 방역’에는 성과

문제는 올 초 국경을 다시 열면서 터졌다. 지난 4월 김일성 출생 110년, 북한군 창군 90년, 김정은 집권 10년 등이 겹쳤다. 북이 대규모 행사를 하려면 중국에서 물자를 들여올 수밖에 없다. 2년 봉쇄로 경제도 엉망이었다. 지난 1월 북·중 간 화물 열차 운행을 재개했다. 그런데 중국 동북에선 오미크론 코로나가 돌고 있었고, 중국발 열차의 종착역은 평양이다. 물자와 함께 코로나도 유입됐을 것이다.

김정은은 평양에서 김일성과 북한군 생일잔치를 성대하게 열었다. 4월 말 열병식 참가자 등과 단체 사진 57장을 찍어 공개했다. 한 번에 수백 명씩 ‘노(No) 마스크’로 모았다. 북한이 발표한 코로나 확산 시기가 그때다. 새 발열자가 가장 많이 나온 날이 5월 15일인데 39만여 명을 찍었다. 그중 절반이 평양에서 나왔다. ‘혁명의 심장부’ 평양이 코로나에 뚫린 것이다.

북이 보도한 새 발열자

평양 인구(300만명)는 북한 전체의 12%이지만 비중은 100%에 가깝다. 김정은과 그 일족을 중심으로 북한 정권을 지탱하는 세력 전부가 거주하기 때문이다. 지금껏 북은 전염병 확산을 공개한 적이 한 번도 없다. 홍역·장티푸스 같은 수인성(水因性) 전염병이 매년 유행하지만 보도하지 않는다. 최고 지도자에게 흠이 되는 건 숨기고 본다. 그러나 평양 전염병은 다르다. 숨기기도 어렵고, 효과적인 주민 통제를 위해서도 공개가 불가피했을 것이다.

평양 뚫리자 코로나 첫 인정

북은 2년간 코로나 방역을 김정은의 최대 치적으로 선전해왔다. 한국·중국 등의 코로나 피해 상황을 거의 매일 보도했다. 이것만 접하는 주민들은 북한 빼고 전 세계가 망해가는 것처럼 느꼈을 것이다. 그런데 다른 곳도 아닌 평양에서 발열자가 급증하자, 지도부뿐 아니라 일반 주민도 공황에 빠졌을 것이다. 북은 “초기 사망자 중 47%가 약물 부작용”이라고 했다. 국가안보전략연구원 김인태 박사는 “공포심으로 항생제 등을 과다 복용했을 것”이라고 했다. 이후 북한 선전 기관은 ‘코로나 걸려도 죽지 않는다’ ‘버드나무 잎 우려 먹으라’고 했다.

김정은은 ‘평양 방역’에 총력을 쏟았다. 평양 시내 약품 공급에 북한군 병력을 동원했고, 중국 의약품을 여객기에 실어 평양으로 긴급 운송하기도 했다. 핵심 계층이 사는 평양만 지키면 정권 유지에는 별문제가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지방은 관심 밖이다. 북한 소식통은 “발열자에는 코로나와 수인성 전염병 환자가 섞여 있을 것”이라며 “수인성은 약과 식량을 배급받으면 호전된다”고 했다. ‘T세포 교차 면역’ 덕분에 사망률이 낮은 것 아니냐는 견해도 있다. 과거 일반 감기에 걸려 만들어진 T세포가 코로나에도 면역을 가진다는 것인데, 빈곤국에서 이런 현상이 더 관측되고 있다.

 

국가정보원은 “북한 코로나가 최악 상황은 벗어났다”고 했다. 공개 안 된 희생을 치르고 ‘자연 면역’에 근접한 것인지, 북한식 봉쇄가 효과를 낸 것인지는 불분명하다. 그러나 며칠 앓다가 열이 내리는 경우를 자주 보면서 평양 주민의 ‘코로나 포비아(공포증)’도 줄고 있다고 한다. 일단 ‘심리 방역’ 성공이다. 북 매체는 이미 ‘김정은 승리’를 선전하고 있다. 정부 고위 당국자는 “코로나 통제가 가능하다는 판단이 섰기 때문에 발병 사실도 공개했을 것”이라고 했다. ‘무오류’인 김정은의 실패는 있을 수가 없다. ‘정치 방역’은 성공해야 한다.

CIA “북 식량 부족 86만t”

여기서 북한 코로나 위기가 재점화할 수 있다. 김정은은 코로나가 퍼지자 ‘간부 책임’을 거론했다. 확산세를 잡지 못하면 숙청하겠다는 협박이다. 정치국 간부들을 지방으로 보내기도 했다. 살고 싶으면 발열자 숫자를 줄이라는 것이다. 이후 사망자는 거의 없고 발열자도 하루 10만명 아래에 머물고 있다. 코로나로 사망해도 기존의 심장·폐 질환 때문인 것으로 꾸밀 수 있다. 통계 조작이 북에선 다반사다. 북은 대규모 아사자가 발생하던 90년대 후반에도 피해 통계를 축소해 재앙을 키웠다.

김정은은 “중국 방역 성공을 배우라”고 했다. 중국은 인구 2500만 도시를 봉쇄해도 약과 식량을 배급할 능력이 있다. 그러나 북은 없다. 지난 29일 평양 봉쇄가 풀렸다는 보도가 나오는데, 지금 북의 경제 체력으론 평양 배급도 감당하기 어렵다는 의미다. 상당수 평양 주민이 장마당으로 먹고산다. 미국 중앙정보국(CIA)은 북한의 올해 식량 부족분을 86만t으로 추산했다. 북 인구가 3개월 먹을 양이다. 지난 4~5월 북 전역에서 ‘가뭄 심각’ 보고가 올라오고 있다. 발열자라도 심하지 않으면 농사에 동원될 수밖에 없다.

최근 중국 동북에선 오미크론 코로나 변종이 발생했다. 중국의 대약진 운동과 북한의 고난의 행군은 ‘허위 통계’와 지도자 오판, 자연재해가 겹치면서 대재앙을 낳았다. 북한 코로나가 그럴 수 있다.

WHO “北 코로나 악화 추정”

세계보건기구(WHO) 마이크 라이언 긴급대응팀장이 1일 AFP통신에 북한 코로나와 관련, “상황이 나아지지 않고 나빠지는 것으로 추정한다”고 했다. 북한 정보가 제한돼 적절한 평가가 어렵다고 했지만 코로나 확산세가 잡혔다는 북한 통계와는 다른 것이다. 북은 새로운 발열자가 일주일 전부터 하루 10만명 이하를 유지하고 있고, 사망자도 거의 없다고 보도하고 있다. WHO 측은 북한 코로나 상황이 개선됐다는 징후가 뚜렷하지 않다고 판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라이언 팀장은 북한의 2500만 주민이 백신을 맞지 않았기 때문에 발병을 억제하는 것이 현재 중요하다고도 했다. 통일부는 2일 “북한 내 백신 반입과 접종이 공식 확인된 바 없다”고 했다. 전 세계에서 코로나 백신 접종을 시작도 안 한 나라는 북한과 아프리카 에리트레아 두 곳뿐이다. 북한 주재 러시아 대사관은 1일 “북측에 러시아 백신과 진단 장비 등을 제공하겠다고 제안했지만 북한 반응이 아직 없다”고 했다.

북한은 한국 정부의 백신·의약품 제공 의사에도 답이 없는 상태다. 대신 주민들에게 코로나 증상이 보이면 “금은화(花) 우려 먹기” “청심환 복용” 등을 권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