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TV뉴스에 中·베트남어 자막… 초등학교서 캄보디아어 수업
소멸위기 마을들… 다문화가 전면에
입력 2021.11.01 03:00
매주 토요일 아침 전북 지역에 방송되는 주간 주요 뉴스 화면에 중국어와 베트남어 자막이 나오고 있다. 전북도청 관계자는 “다문화 인구가 늘어나 2019년부터 시작한 서비스”라며 “결혼 이민자 출신국의 70%가 중국과 베트남”이라고 말했다./전북도청
전북 남원시에 살고 있는 베트남 출신 결혼 이주 여성 이다혜(33)씨는 매주 토요일 아침이면 TV 앞에 앉아 꼭 뉴스를 챙겨본다. 지역 지상파 방송국에서 한 주간 주요 뉴스를 정리해 모국어인 베트남어 자막으로 제공해주기 때문이다. 이씨는 “14년간 한국어를 열심히 배워 어느 정도 소통이 되지만 뉴스에는 시사, 정치 용어가 많이 나와 이해하기 힘들다”며 “1주일에 한 번이라도 모국어로 한국 뉴스를 챙겨볼 수 있으니 이해가 잘되고, 이주민도 존중받는 느낌이 들어 좋다”고 했다.
전라북도는 2019년부터 지역 방송사와 함께 매주 토요일 베트남어, 중국어 뉴스 자막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전북도청 김문강 다문화지원팀장은 “다문화 인구가 점차 늘어나고 있어 시작한 서비스”라며 “결혼 이민자 출신국의 70%가 중국·베트남이라 두 언어를 쓴 것”이라고 했다.
강원도 양구군 해안면은 지난해부터 쓰레기 배출 안내를 영어·일본어·중국어·태국어·베트남어·필리핀어 등 6개 국어로 안내하고 있다. 쓰레기 배출 요령과 함께 종량제 봉투를 사용하지 않고 불법 투기를 하면 과태료가 부과된다는 내용이다. 해안면사무소의 이자연 계장은 “면내에 결혼 이주 여성과 외국인 근로자들이 많은데 한국어가 서툴어 분리 배출 등 안내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었다”며 “이들 인구가 점차 늘다 보니 결국 우리가 입장을 바꿔 그들의 모국어로 안내를 하기 시작한 것”이라고 했다. 전북 무주군 무주읍 등 다른 지자체들도 점점 이런 다국어 안내에 동참하고 있다.
최근 지방 군청에선 ‘통·번역기’가 필수품처럼 통한다. 전남 장성군은 올 4월 군청 민원실에 65개 국어 서비스가 가능한 음성 인식 통·번역기를 비치했다. 외국인이 모국어로 말하면 한국어로 통역해주는 기계다. 장성군에는 외국인 근로자와 다문화 이주 여성 1000여 명이 살고 있다. 장성군 관계자는 “언어 소통이 안 되다 보니 정확한 민원 대응이 안 되고, 다른 민원 처리도 지연되더라”며 “기계값이 60만원쯤 되는데 외국인 주민들의 반응이 좋다”고 했다. 경남 고성군도 올 초 통·번역기를 들였다. 베트남·스리랑카·인도네시아 등에서 온 외국인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어서다. 고성군·장성군은 최근 5년 새 인구가 각각 4000명, 2000명가량 줄어든 ‘소멸 위기 지역’이다.
지방 초등학교에선 ‘한국어’ 수업이 생겨나고 있다. 전남 영암 대불국가산업단지 인근의 삼호서초등학교에서는 한국어가 서툰 외국인 학생들을 위해 한국어 학급을 따로 운영하고 있다. 부모가 러시아, 이집트, 우즈베키스탄, 예멘에서 온 학생들이 수업을 듣는다. 이 학교 전교생 340명 중 다문화가정 학생이 50명이다. 한국에서 태어난 다문화가정 학생들에겐 거꾸로 결혼 이주 여성인 어머니의 ‘모국어’를 가르치기도 한다. 부모의 출신 국적에 따라 베트남어, 캄보디아어 수업을 진행하는 식이다. 경북도교육청 한익희 장학사는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아이들이지만 엄마 쪽 뿌리를 배우고, 어릴 때부터 2개 국어를 할 수 있는 글로벌 인재로 키우자는 취지”라고 했다.
행정안전부가 지난달 인구 감소 지역으로 지정한 전국 89곳의 지자체 인구는 2015년 531만9165명에서 지난해 498만8175명으로 5년 새 6.2% 감소했다. 같은 기간 다문화 인구는 10.6%(12만7355명→14만821명) 증가했다. 전북도청 관계자는 “젊은이들이 떠나고, 인구마저 줄어 사실상 소멸 위기를 맞은 지방에서 필수 인력을 채워주는 건 외국인 근로자와 결혼 이주 여성들뿐”이라고 했다.
이해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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