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뉴스

[에릭 존의 窓] 한국은 세대 차이가 가장 큰 나라

최만섭 2021. 11. 16. 04:45

[에릭 존의 窓] 한국은 세대 차이가 가장 큰 나라

에릭 존 보잉코리아 사장·前 주태국 미국 대사
입력 2021.11.16 03:00
 
 
 
 
 

2000년대 초반 주한 미국 대사관에서 정무 공사 참사관(Minister Counselor for Political Affairs)으로 재직할 당시, 워싱턴DC의 미국 정부 인사들에게 ‘아마도 한국이 세계 역사상 세대 간극이 가장 큰 국가일 것’이라고 소개하곤 했다. 당시 60대였던 한국의 기성세대는 일제 식민 통치와 전쟁의 참상을 몸소 겪었으며, 그 강렬한 기억을 안고 살아가고 있었다. 반면 그 자녀와 손주는 세계적 경제 강국이 된 한국의 국제적 환경에서 자유를 온전히 누리며 살아왔다. 2대나 3대가 완전히 각각 다른 국가에서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일러스트=양진경

요즘 들어 1980년대 중반에 내가 경험한 한국과 현재 살고 있는 한국이 완전히 다른 곳임을 강하게 실감하고 있다. 2021년 지금, 젊은 한국 지인들에게 1985년 서울 모습을 이야기하면 일제히 휴대폰을 꺼내 들고 사실 여부를 확인하곤 한다. 1980년대에 한국에서 해외여행을 떠나는 것은 큰 난제였다는 사실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여권 발급부터가 고난이었다. 당시 정부는 해외여행을 간다는 것은 귀한 미화를 유출하는 것이라 인식했고, 이를 방지할 방안으로 여권 발급을 대부분 보류하곤 했다. 게다가 반체제 인사들이 ‘위험한’ 외국 사상을 접하고, 추후 한국에 돌아와 전파할 위험이 있다고 생각했다. 여권을 발급받았다 한들 미국 등의 비자를 받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여행을 마치고 귀국하지 않을 위험이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미 대사관 외부에는 매일 이른 아침부터 비자 신청자들의 긴 행렬이 이어졌다.

여행을 마치고 귀국하는 것 역시 지금과는 현저히 달랐다. 인천국제공항이 생기기 전, 김포의 영문을 ‘GIMPO’가 아닌 ‘KIMPO’로 표기하던 시절 일이다. 당시 김포공항으로 입국하려면 해외 명품을 한국으로 반입하지 않는지 확인받기 위해 지금보다 훨씬 까다로운 통관 절차를 거쳐야 했다. 세관 당국의 관심은 관세 징수보다는 한국 내 외국의 영향을 최소화하고 해외 명품 반입을 방지하는 데 있는 듯했다. 이윽고 세관을 통과하고 나면 미닫이문 반대편은 귀국을 반기는 가족 등 환영 인파로 가득했다. 이 때문에 김포공항 내 도착 층을 돌아보기란 쉽지 않았다.

 

일상 속에서도 소소하게 놀란 경우가 많았다. 먼저, 흰밥을 주는 식당이 없었다. 대략 10~20% 정도는 콩이 섞여 있는 콩밥을 내주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자동차도 귀했던 시절이라 현대자동차 ‘포니2′ 모델을 주차장에 세워두고 트렁크에서 커다란 먼지떨이를 꺼내 상시 애지중지 광을 내는 모습이 흔했다. 야간 운행 중에는 정차 때마다 헤드라이트를 완전히 끄곤 했다. 차량 배터리를 절약하고 헤드라이트 전구 수명을 늘리려는 것이었다. 또한 당시 경찰차 대수가 넉넉지 않았던 탓에 출동하는 경찰관들이 승객이 타고 있는 택시라도 불러 세우는 관행이 있었다. 실제로 내가 타고 있던 택시에도 경찰관이 동승한 적이 여러 번 있었다. 승객이 타고 있는 택시에 다른 승객을 태우기 위해 차를 세우는 ‘합승’ 문화 역시 새로웠다.

지난 18개월간 코로나 대유행으로 우리 삶은 매우 급진적으로 변화했다. ‘위드 코로나’ 시대로 진입하는 지금이 바라건대 우리 생애에 다시 없을 시대를 반추하기에 가장 적절한 시점이며, 다음 세대가 서로를 인식하는 지표의 하나로 작용하리라 생각한다. 어쩌면 먼 훗날 미래 세대는 각계각층 국민이 힘을 모아 감염을 최소화하고, 전 세계의 방역 표준으로서 선례를 남겼던 아름다운 시절로 이 시간을 기억할지도 모르겠다. 정치적 분석은 차치하더라도 (전직 외교관으로서는 어려운 일이다) 전 국민이 모든 사회 구성원의 건강을 위해 일제히 마스크를 쓰고 백신 접종을 완료하는 모습은 실로 고무적이었다.

향수나 허망한 마음에서가 아니라 한국이 얼마나 빠르게 발전하고 있는지 스스로 상기하기 위해 한국의 이 모든 변화를 떠올려 보곤 한다. 한국인들은 자신의 성취를 냉소적 태도로 묵과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한국인 특유의 성향이 한국의 지속적 발전을 주도해 왔다고도 생각한다. 여전히 한국에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이가 많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지난 수십 년간 한국이 걸어온 길을 되돌아볼 때 앞으로 내대딜 발걸음에 대한 긍정적 기대감이 가득하다. 그리고 그 여정에 동참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