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

탄자니아 출신 망명 작가… 평생 식민주의와 싸웠다

최만섭 2021. 10. 8. 04:49

탄자니아 출신 망명 작가… 평생 식민주의와 싸웠다

노벨문학상 수상자 압둘라자크 구르나
20세에 난민 신분으로 영국 이주, 대표작 ‘파라다이스’ 등 총 10권
단호하고 공감 어린 시선으로 식민주의 극복하는 새 문학 열어
“난민도 사회에 기여할 수 있어… 인간이 극복 못할 장벽은 없다”

이기문 기자

입력 2021.10.08 03:00

 

 

 

 

 

스웨덴 한림원은 7일 탄자니아 난민 출신 영국 소설가 압둘라자크 구르나를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했다. 사진은 2017년 구르나가 스코틀랜드 에든버러 도서전에 참석했을 당시 모습. /게티이미지코리아

올해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압둘라자크 구르나(73)는 탄자니아 소설가. 동아프리카 해안의 잔지바르섬에서 태어나 탄자니아 현대사의 격동기에 청소년 시절을 보냈다. 탄자니아는 19세기 독일의 지배를 받았고 1차 세계대전 이후론 영국의 식민지였다. 1961년 탕가니카가 영국 지배에서 독립하고 1963년에는 잔지바르가 독립하지만, 1964년 무장 반군이 친(親)이슬람 잔지바르 정권을 무력으로 전복하고 잔지바르 인민공화국을 세운다. 먼저 독립한 탕가니카와 통합해 탄자니아 연합공화국이 출범했다. 구르나는 이슬람에 대한 종교적 억압을 피해 난민 자격으로 1968년 영국으로 건너간다. 이후 2004년부터 켄트대학교에서 영문학 교수로 강의했다. 모국어는 스와힐리어였지만, 영어를 문학의 도구로 삼았다. 국내에 번역된 책이 없을 정도로 국내 독자에게도 생소한 작가다. 대표작으로 ‘파라다이스’(1994), ‘바닷가’(2001), ‘탈주’(2005) 등이 있다.

구르나는 수상 발표 10분 전에 한림원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고 했다. 첫 마디는 “장난 전화인 줄 알았다.” “누가 받을까를 궁금해하고 있었는데 믿을 수 없다”는 게 두 번째 대답이었다.

10편의 장편 대부분이 이민자와 난민을 다룬다. 초기 소설인 ‘출발의 기억’(1987), ‘순례자의 길’(1988), ‘도티’(1990)는 영국에서 벌어지는 이민자들의 생활을 다뤘다. 주인공들은 문화와 대륙, 과거의 삶과 새로운 삶 사이에서 불안해하며 갈등한다. 청년 시절 겪은 이주 경험이 창작의 토대가 됐다. 한림원은 “구르나의 진실에 대한 헌신과 단순함에 대한 혐오가 인상적”이라며 “그의 소설들은 틀에 박힌 묘사를 피하면서 세계의 많은 사람들에게 동아프리카의 문화적 다양성에 대한 시선을 열어준다”고 평가했다. 한림원은 새롭게 대두하는 지구촌 난민 문제를 다룬 작가로 구르나를 호명했다. “원주민과 난민 간에 벌어지는 ‘문화 장벽’ 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구르나는 “문화 장벽은 영속적이지 않으며, 인간이 극복하지 못할 것은 아니다”라고 답했다고 한림원은 전했다. 구르나는 “사람이 세계에서 세계로 움직이는 현상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난민은 빈손으로 오지 않는다. 재능 있고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들은 (사회에) 뭔가 줄 것이 있다”고 했다.

 

압둘자라크 구르나의 소설 표지.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사후’ ‘탈주’ ‘파라다이스’ ‘존경할 만한 침묵’ . 대표작 ‘파라다이스’는 1994년 부커상 최종 후보에 올랐다. /AFP 연합뉴스

그가 영국으로 떠날 무렵 탄자니아는 ‘아프리카식 마르크스 주의’를 도입했지만, 집단농장제의 실패로 경제는 파탄하고 식량 부족에 시달리게 된다. 하지만 낙원으로 생각했던 영국 사회도 작가에게 또 하나의 지옥이었다. ‘존경할 만한 침묵’(1996)에서 이민자의 아이를 임신한 영국 여성의 부모는 딸의 남자 친구를 증오한다. 소설은 이민자의 자식을 일종의 ‘오염’으로 그리고, 이민자의 아이를 임신한 여성은 평범한 영국 여성이 될 수 없는 사회 현실을 고발한다.

아프리카에서 유럽으로, 혹은 아프리카 내로 이주하는 상황은 구르나 소설의 주요 골격이다. ‘출발의 기억’은 아프리카 해안 마을을 떠나기로 결심한 주인공을 그렸고, ‘파라다이스’는 가난한 집에서 아버지의 빚을 갚기 위해 삼촌의 부잣집 저택으로 가는 여정을 묘사한다. 구르나는 “나는 단순히 자전적인 경험을 기록하지 않는다. 우리 시대의 이야기를 쓴다”고 말했다. 국적과 인종, 종교 등 여러 다른 배경 때문에 정체성의 혼란을 겪고 있는 현대인들 역시 우리 시대의 난민이라는 것이다.

아프리카 문학 전문가인 전북대 영문과 왕은철 교수는 종교를 포함하는 ‘문화적 혼종성’을 구르나 문학의 주요 키워드로 꼽았다. 왕 교수는 “식민 지배와 난민의 문제를 흑백의 (인종적) 구도로만 보기 쉽지만 종교에 따른 차별도 심각한 문제”라면서 “구르나는 정체성 문제로 몸부림치는 캐릭터를 통해 이슬람과 다른 문화가 섞이며 겪는 문제를 다루는 작가”라고 말했다.

 

 

이기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