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십

[朝鮮칼럼 The Column] 김연경의 마지막 올림픽

최만섭 2021. 8. 14. 11:43

[朝鮮칼럼 The Column] 김연경의 마지막 올림픽

“모든 걸 쏟았으니 후회 없다” 목메어 눈물 흘린 ‘식빵 언니’
한 개인이 고통 참고 견디며 국가대표를 하는 이유는 뭔가
배구협회는 대표팀의 명예를 돈과 권력으로 분칠하려 했다

김영수 영남대 교수·정치학

입력 2021.08.14 03:20

 

 

식빵 언니’ 김연경은 그라운드에서 사자처럼 포효한다. 도무지 울 것 같지 않다. 하지만 목 놓아 운 적이 있다. 2012년 런던올림픽 한일전에서 졌을 때이다. 라커룸에 들어서자, 두 눈에서 끝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어린 시절부터 간절히 소망한 꿈의 무대였다. 가슴이 찢어졌다. 그런데 나는 코트 위에서 모든 것을 불태웠는가! 그녀는 다짐했다. 그래, 일어나자. 우리는 세계 최강이 될 수 있다. 다시는 후회하지 말자.

지난 8일 오전 일본 도쿄 아리아케 아레나에서 열린 도쿄올림픽 여자배구 동메달 결정전 대한민국과 세르비아의 경기, 김연경이 득점 후 기뻐하고 있다./뉴시스

하지만 꿈은 또 꺾였다. 지난 8일, 도쿄올림픽 동메달 결정전에서 한국은 세르비아에 완패했다. 그날 아침, 김연경은 신발 끈을 묶으며 올림픽은 이번이 “마지막이 될 수 있겠구나”라고 생각했다. 경기 후 담담했던 그녀는, 이 말을 하며 비로소 얼굴을 감싸고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제 모든 걸 다 쏟았다고 생각하고 후회는 없다” “여기까지 온 것만 해도 행복했던 순간”이라며 목이 메었다.

이 뜨거운 여름, 국민도 모처럼 행복했다. 뜨겁기에 아름다웠다. 승리를 갈구하는 집념의 불길이 선수들의 눈에 이글이글 타올랐다. 코트는 열기로 터져나갈 듯했다. 손에 땀이 났고, 가슴은 고동쳤다. 선수들이 환호하면 함께 환호하고, 한숨을 쉬면 함께 탄식했다. 일본전 마지막 세트에서, 일본은 2점 차로 먼저 매치포인트에 도달했다. 모든 것이 끝난 것처럼 보였을 때조차 한국은 끝까지 싸웠다. 이제 끝났다는 절망스러운 순간 선물처럼 일어나는 일, 그게 역전이었다.

그 용기와 에너지는 대체 어디에서 오는 걸까? 김연경의 훈련 기준은 ‘처음’이다. 열두 살에 처음 배구를 시작했을 때의 간절함, 늘 벤치에 앉아서 기회에 목말라하던 때의 절실함이 ‘처음’이다. 고1까지 키가 작았던 김연경의 고정 포지션은 벤치였다. 사각형 코트에 들어가는 게 유일한 바람이었다. 그때를 잊을 수 없었다. 그래서 “숨이 턱밑까지 차오를 때까지 최선을 다해서 이 정도면 후회하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이 들 때야 훈련을 마쳤다.

그녀의 시합 기준은 ‘마지막’이다. 시합에 내일은 없다. 올림픽 무대는 종이 한 장 차이다. 죽기 살기로 싸우면 진다. 죽자고 싸워야 이긴다. 그래서 아무리 생각해도 이길 수 없을 것 같은 순간에 비논리적인 믿음과 열망은 더 강렬하게 끓어오른다. “매 경기 저희가 이기고자 하는 마음이 엄청나게 크다는 것이 12명이 한마음으로 다 똑같은 것 같아요. 지고 있더라도 계속 이길 수 있다고 저희끼리 계속 격려를 해줍니다.” 양효진 선수의 인터뷰다.

 

호메로스의 그리스 영웅들은 아레테(arete)를 사랑했다. 그리스인의 삶을 관통하는 이 말은 탁월함을 뜻한다. 전장은 그 훌륭한 무대였다. ‘일리아드’의 영웅들은 가장 가치 있는 것을 얻고자 삶 자체를 걸었다. 하지만 그리스인은 올림픽이라는 평화의 아레나(arena)도 창안했다. 올림픽 우승은 한 인간의 아레테를 입증한다. 고된 훈련, 패배와 치욕의 위험, 심지어 목숨까지도 걸어야 하는 인내와 용기 없이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김연경과 한국 선수들도 그 길을 피하지 않았다. 나를 죽이지 못한 모든 고통은 결국 나를 성장시킨다.

국가대표는 무엇인가? 김연경은 2004년 16세 때 국가대표로 처음 선발되었다. “난생처음 가슴에 태극 마크를 다는 것도 자랑스러웠지만, 무엇보다 엄마와의 약속을 지킬 수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부풀어 올랐다.” 나라 사랑과 엄마 사랑, 그게 국가대표의 의미였다. 터키에서 활약할 때도 시상식에서 태극기를 몸에 두르곤 했다. 무릎 수술을 세 번이나 받으면서도 국가대표를 회피하지 않았다. “제 인생에 있어서 너무나 의미 있고 행복한 시간이었다.” 국가대표를 떠나며 남긴 감회다.

고대 올림픽 역시 한 개인뿐 아니라 도시국가의 아레테를 다투는 경연장이었다. 제우스 신전 앞에 모인 우승자의 대관식에서는 승리자, 아버지, 그리고 도시의 이름이 큰 소리로 호명되었다. 명예는 개인의 것이자 가족, 그리고 도시국가의 것이었다. 올림픽은 한 개인이 도시국가를 위해 헌신할 수 있는 최고의 무대였다. 시민들은 축시와 노래, 조각으로 우승자의 아레테를 찬양했다. 우승자도 언젠가는 죽었다. 하지만 그 기억은 세대를 거듭하며 도시에 영속했고, 도시의 영혼이 되었다.

도쿄올림픽 여자 배구팀과 야구팀은 한국의 오늘을 대표하는 대조적인 두 표상처럼 보인다. 야구팀은 올림픽과 국가의 명예가 얼마나 소중한지 모르는 것처럼 보였다. 미래의 한국은 어떤 영혼을 원하나. 뜨겁지 않은 한국, 도전하지 않는 한국은 한국이 아니다. 그것이 김연경과 선수들의 큰 외침일 것이다. 배구협회는 그걸 돈과 권력으로 분칠하려 했다. 그것은 전설이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