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철학

[산모퉁이 돌고 나니] 봄날의 참회와 기적

최만섭 2021. 4. 16. 05:29

[산모퉁이 돌고 나니] 봄날의 참회와 기적

이주연 산마루교회 목사

입력 2021.04.16 03:00 | 수정 2021.04.16 03:00

 

 

 

 

 

/일러스트=김하경

봄이 찬란하다. 꽃이 져가니 녹음이 꽃보다 더 아름답기만 하다. 깊은 골짜기에선 새들이 날아오르고 노래한다. 이 우주 안에 이런 행성이 또 있을까? 생명 현상 자체가 축복이다. 이미 받은 이 존재함의 축복보다 더 큰 축복이 있을까! 그러나 이 봄날, 지난날을 돌이켜볼 일이 생기니, 가을 같은 서늘한 고독과 상념이 깃든다.

어느덧 나는 지난 3월로 목회한 지 40년이 지났다. 지난 주일엔 산마루교회 창립 20주년을 맞았다. 혼인한 지도 40년이 된다. 절대자 앞에 선 인간에겐 회고록이 아니라 참회록만 남을 뿐이라는 말이 비수처럼 꽂힌다. 실로 인생 돌이켜보니 참회할 일뿐이다. 떠나버리지 않은 아내가 기적이고, 아직도 남은 교인이 기적이고, 여전히 목회하고 있다는 것이 기적이다. 지난 2월 근 30년 가르치다 명예교수로 은퇴한 아내에게 예비된 것은 전셋값이 뛰어 이 달 말 이사할 일이다. 2년 만의 이사다.

 

나는 얼마 전 서류가 필요해서 주민등록초본을 떼니 두툼하다. 나그네 인생이다. 하지만 진정 나그네로 살아야 하는데, 그것도 못 되었다. 그래서 목사라 하면서도 이 욕심 저 욕심에 휘둘리는 나 자신 때문에, 15년 전엔 아예 아파트도 팔아버렸다. 내가 마련한 것도 아니면서 무소유 선언을 해버린 것이다. 땅 한 평도 나를 위해서는 갖지 않겠다고 했다! 자녀들에게도 유산을 물려주지 않고, 살다가 내게 남는 것이 있다면 주께 바치고 떠나겠다고 했다. 사실 이렇게 한다고 사람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이 일로 나는 한동안 자기 의(義)에 빠져 물질과 권력을 탐하는 목사들을 정죄하느라 고독과 죄를 더했다. 새사람 되는 일은 속이 뒤집어지고, 자기가 죽는 은혜를 입어야 한다. 그리고 죽을 때까지 회개의 열매를 맺고 살다 가야 거듭난 인생이다.

 

지난 주일 창립 20주년 기념일엔, 교회 그 어디에도 축하 포스터 한 장 붙어있지 않았다. 장로 취임식도 했지만, 마찬가지였다. 축하 파티도 없었다. 예배 중에 취임 장로의 헌신 문답과 고백과 기도가 전부였다. 내 스스로도 참으로 무성의한 교회가 아닌가 물었다. 하지만 예수와 베드로 사이에서도 그러지 않았나! 우리는 취임 장로에겐 무거운 나무 십자가를 선물하고, 내가 사용하던 스톨을 선물한다. 스톨은 종의 멍에를 상징한다. 멍에를 나누어 메자는 것이다. 십자가 뒤에는 내가 조각 칼로 “거룩한 산 제물”이라고 새긴다. 이번엔 미리 새기질 못한 채 전했다. 공동체에 농사와 공사가 많아서 도리가 없었다. 트랙터마저 고장 나고, 포클레인까지 자빠졌다. 이번 취임 장로는 20년을 함께 해 온, 대학에서 학·처장을 지낸 분이다. 오직 겸손히 교우들 앞에서 눈물 어린 취임 고백으로 예식을 마쳤다. 점심엔 장로로 취임한 분이 길 건너 김밥 집에서 김밥을 냈다. 목회와 성도의 삶은 행사나 형식이 아니라 십자가다. 십자가를 진 목사, 십자가를 진 성도, 십자가를 진 교회여야 한다. 거기에서 영원한 생명이 피어난다. 그래서 창립 첫 예배 때부터 지금까지 창립 주일엔 “거룩한 산 제물” 혹은 “거룩한 산 제사”(로마서 12장)라는 주제로 설교를 해 왔다.

 

우리 교회는 찾아온 교인만 붙잡았어도 천 명은 훨씬 넘었을 것이라고 한다. 목회를 잘 못해서 지금 남은 교인은 일반 교인 100명, 나그네 교인(노숙인) 100명이다. 공동체를 세우는 데 드린 억대 헌금도 이미 공동체를 세우느라 함께 지출했는데, 돌려 달라 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래서 남은 것 다 털고, 교인들이 보태서 돌려 드렸다. 나의 부족으로 인함이라. 하지만 공동체에선 변화하는 이들로 기적이 계속된다.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지난주엔 창립 기념일을 맞아 한 교우가 쌀 30킬로를 봉헌했다. 노숙인을 위해서 떡을 하자는 것이다. 본인이 지난날 교회를 찾아와 떡을 먹어야 했던 노숙인이었다. 2012년 그는 서울역 노숙 7년 만에 8가지 중병으로 죽게 되었다. 혈압도 200이 넘었고, 위장 간장 신장 폐 무릎 등등 모두 망가져 제대로 걷지도 못하고 숨마저 쉬기 어렵게 되었다. 진료소에서는 수면제와 진통제만 주었다. 그는 행려병자로 매주일 예배를 인생 마지막 예배로 드리러 와서는 가진 것 다 바치고 갔던 이다. 나는 그분을 농장으로 초대하여 안수기도를 했다. 우리는 일할 수 있는 사람만 일하고, 하고 싶은 만큼만 일한다. 한 달여 만에 정상이 되어, 다른 노숙인 형제들처럼 농사를 지었다. 그는 그 이듬해부터 책임자가 되어 지금까지 노숙인을 섬기고 있다. 오늘 아침엔 공동체에서 한 노숙인 형제가 큰 접시에 산처럼 밥을 쌓고 먹는다. 내가 식후 기도를 부탁했다. “제일 맛있게 많이 드셨으니, 기도해야겠어요!” “하나님 아버지, 이렇게 맛있게 먹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오늘도 십자가를 메고 이 하루 잘 살게 해 주세요! 아멘” 내가 즉각 웃으며 물었다. “십자가를 질 수 있어요?” “그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