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

[朝鮮칼럼 The Column] 외교의 바다에서 한국이 ‘고래’가 되는 법

최만섭 2021. 3. 23. 05:10

[朝鮮칼럼 The Column] 외교의 바다에서 한국이 ‘고래’가 되는 법

송재윤 캐나다 맥매스터대 교수·역사학

입력 2021.03.23 03:20 | 수정 2021.03.23 03:20

 

 

 

 

 

/뉴시스

멀리서 외교의 격랑에 휩싸이는 대한민국호를 볼 때마다 고래 싸움에 끼인 새우를 떠올리게 된다. 물론 한국은 새우에 비유될 작은 나라가 아니다. 세계 12위 경제 대국이며 10위 군사 강국이다. 그럼에도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한국은 아슬아슬 외교적 스턴트를 벌이고 있다.

대한민국 대통령이 왜 베이징에 가선 “중국은 높은 산맥의 나라”라 칭송하고, 워싱턴에 가선 미 대통령을 높이 치켜세워야만 했을까? 대통령의 외교적 과공(過恭)은 의전상의 비례(非禮)가 아니라 국가의 근간을 흔드는 ‘이념적 방황’이다.

최근 열린 미국·일본·인도·호주 4국의 안보 협의체 ‘쿼드(Quad) 동맹’ 정상회담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공동성명에 천명된 ‘쿼드 정신’의 키워드는 법의 지배(rule of law), 자유, 개방, 포용, 민주적 가치 등이다. ‘쿼드 정신’은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 헌법 정신과 조화롭게 공명한다. 한국은 70년 한미 동맹 역사 속에서 경제 번영과 민주 발전을 이뤄온 자유 벨트의 수혜국이다. 헌정사의 정도(正道)에 따라 한국은 마땅히 네 나라와 더불어 ‘펜타(Penta) 동맹’을 이뤄야 한다. 나아가 베트남, 뉴질랜드가 참여하는 7국의 ‘헵타(Hepta) 동맹’을 견인해야 한다.

이유는 자명하다. 경제 강국으로 급성장한 중국이 여전히 인류의 보편 가치를 부정하는 공산당 일당 지배의 사회주의 ‘인민민주독재’의 나라이기 때문이다. 전 세계에서 일당독재 국가는 중국·북한·쿠바를 포함해 8국 정도에 불과하다. 주요 유엔 회원국 대다수는 입헌민주주의(constitutional democracy)를 표방한다.

조 바이든(왼쪽) 미국 대통령이 3월 12일(현지시간) 워싱턴DC 백악관의 스테이트 다이닝 롬에서 화상으로 진행된 첫 쿼드(Quad) 정상회의에 참여하고 있다. 스크린 왼쪽부터 오른쪽으로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 스콧 모리슨 호주 총리. /AFP 연합뉴스

그럼에도 2019년 4월 시진핑 주석은 공식적으로 헌정(憲政·입헌주의), 삼권분립, 사법 독립의 길을 부정했다. 2021년 1월 10일, 중국 정부가 발표한 ‘법치중국 건설 계획’에 따르면, 중국의 ‘법치’는 “당의 집중적·통일적인 영도” 아래 인민을 감시하고 통제하는 고대 법가적 대민 지배에 불과하다. 국가 권력을 제한하는 입헌주의적 ‘법의 지배'가 아니라 법을 수단 삼아 독재를 정당화하는 ‘법에 의한 지배'(rule by law)다.

실제로 중국은 신체·표현·사상·집회·결사·언론·출판의 자유를 제한한다. 위구르족 100만명을 감금해 사상 개조를 시도한다. 2020년 5월 28일 전국인민대표대회는 99.7%의 찬성으로 ‘홍콩 국가안전법’을 통과시키더니 2021년 3월 11일엔 99.97%의 찬성으로 홍콩 선거 후보자의 ‘공산당 충성도’를 심사하는 반민주적 법안을 승인했다. 현재 중국엔 정부의 독재를 견제할 수 있는 공화 시민의 저항권도, 정부 내의 권력 분립도, 다원화된 정당 정치도, 권력 남용을 막을 헌법적 안전 장치도 없다. 그 결과 오늘날 중국은 인류의 보편 가치를 공격하고 국제 질서를 위협하고 있다.

 

국제 정치의 현실이 이토록 냉혹함에도 문재인 대통령은 “중국몽에 동참하겠다”는 발언을 했다. 외교부 장관은 동맹국의 임무를 망각하는 이른바 ‘3불 정책’에 동의했다. 굴종적인 저자세 외교로 일관했지만, 중국은 한국을 더 무시하고, 미국은 한국을 의심한다. 어쩌다 이 지경이 됐나. 미·중 사이에서 등거리 외교를 펼친다는 중간자의 환상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시대착오적 친중 사대주의에 사로잡혀 인류 보편의 가치를 외면하기 때문이다. 최근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경고한 그대로 “헌법 정신과 법치 시스템이 파괴”됐기 때문이다. 현 정권이 헌법 수호의 의지가 없기 때문이다. 그 결과 한국은 중국에 눌리고 동맹국에 외면당하는 끈 떨어진 연의 신세가 돼버렸다.

어설프게 대(對)중국 경제 의존도를 핑계 삼을 순 없다. 중국은 현재 미국·일본·인도·호주 쿼드 4국 모두의 제1 교역국이다. 쿼드는 결국 중국의 주요 교역국들이 맺은 자유민주주의적 연대다. 중국과의 경제적 공생 관계야말로 이 국가들이 중국의 긍정적 변화를 유도할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이다.

머뭇머뭇 전략적으로 모호하게 말할 때가 아니다. 인류의 보편 가치에 맞게, 대한민국의 헌법 정신에 따라 ‘쿼드’를 ‘펜타’로 확대하는 자유의 동맹에 동참해야 한다. 그래야만 비로소 한국은 스스로 고래가 되어 대중국 외교의 우위를 점할 수 있다. 물론 ‘헌법 정신과 법치의 시스템’을 되살리는 낡은 리더십의 전면 교체가 급선무다. 무익한 ‘이념적 방황’을 멈춰야만 외교의 바다에서 대한민국호가 순항할 수 있기 때문이다.